철학사의 전환 동아시아적 사유의 전개와 그 터닝포인트
- 저자
- 신정근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2-01-30
- 사양
- 736쪽 | 신국판 | 양장
- ISBN
- 978-89-93905-86-1
- 분야
- 철학/심리/종교
- 정가
- 35,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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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은 두 가지 전제, 즉 "중국"이라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유구한 역사"와 "자족적 문화"라는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국철학사를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의 여정"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타자는 중국적인 것과 이질적 존재를 가리킨다. 인종으로는 삼대의 삼묘三苗, 서주의 융족戎族, 동주의 동이東夷, 한 제국의 흉노匈奴, 남북시대의 오호五胡, 송의 탕구트족, 거란족과 여진족, 원의 몽골족, 청의 만주족, 근대의 양이洋夷 등을 가리킨다. 제도와 가치로는 이질적인 결혼과 풍속 그리고 복식, 국가와 관직 그리고 물질적 가치 등의 외물, 과학과 민주주의 등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유배)는 중국인이 문화의 발생지라는 중원에서 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던 경험을 말한다. 삼대에는 이민족과 잡거雜居했고, 서주가 동주로 바뀌면서 주족은 호경을 떠나서 낙양으로 옮겨가야 했고, 세력의 강약에 따라 한 제국과 흉노족은 땅과 사람을 내주었고, 위진 이후 한족漢族은 중원을 내주고 강남으로 옮겨 살아야 했고, 원청 제국에서 한족은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고, 근대에는 동남아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문화 정체성은 사서오경으로 텍스트화되고, 삼대三代로 역사화되고, 화華로 종족화되고, 도道로 이념화되고, 리理로 실체화되고, 성性으로 개별화되고, 군자와 동심童心으로 주체화되었다.
중국인은 삼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타자와 대결하면서 자립을 유지하거나 유배 또는 식민의 상황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대정신을 재구축해왔다. 현재 중국은 문화 정체성을 과도하게 실체화하여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루어진 중화주의로 결정화시키고 있다. 제자백가와 성리학과 같은 전근대의 문화 정체성은 다시 역외로 확산되고 동아시아 문화의 동일성으로 상승할 정도로 보편성을 획득했지만 중화주의와 같은 근현대의 문화 정체성은 동아시아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을 유발한 채 타자를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은 "창문 없는 방"에 산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늘 뒤섞여 있던 곳"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문화 정체성을 시대마다 달리 구축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시대마다 타자의 정체와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 정체성의 재구축도 늘 다른 언어로 지어진 다른 구조를 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철학사는 연속과 불연속(단절)이 뒤섞이면서 빚어진 무지개 빛깔을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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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1965년 남강이 흐르는 의령 장박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유쾌한 공자씨의 논어』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 지금 동아시아 철학을 망라하는 철학사 쓰기를 향해 소걸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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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중국철학사 새롭게 바라보기: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 여정
제1막 서주시대
제1장 좋은 나라beneficient state : 『서경』, 덕의 나라를 향한 진군가
제2장 메시아Messiah : 구원자로서 철인과 유비추리의 성인
제3장 약한 주체weak subject : 책임적 행위자의 기원과 전개
제2막 춘추전국시대
제4장 역사와 국가 : 분열과 결속의 서사 구조와 철학적 조응
제5장 예치와 법치 : 상앙의 법사상과 인간의 자율성
제6장 앎과 본성 : 맹자와 순자 사상의 결정적 차이
제7장 마음mind : 전국시대 2단계 심心 담론과 관자 심학心學의 위상
제8장 감정emotion : 『중용』의 중화中和 사상과 감정의 위상 변화
제3막 진한·위진과 남북시대
제10장 자문화중심주의 : 문화적 정체성으로서 중화주의
제11장 개성 : 혜강의 「성무애락론」에 내재된 음악철학의 쟁점
제4막 수당과 송원명청 제국
제12장 우연과 필연 : 기철학자들의 도전: 우연을 넘어 필연의 세계로
제13장 이상사회 : 유교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 정립
제14장 계몽적 군주상 : 『사고전서 총목제요』에 나타난 학술과 정치의 관련 양상
제5막 근현대
제15장 전통의 창조 : 캉유웨이의 근대적 경전 해석
제16장 탈근대 : 량수밍의 근대 모방과 좌절에서 탈근대의 기획과 선취로
제17장 상성의 윤리 : 유교윤리의 동반성[삼강오륜]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
제18장 연구 방법론 : 부분의 이전투구와 전체의 성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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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한국은 중국 사상문화를 연구하는 세계적 중심지 중의 한 곳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사로 보면 펑유란부터 드 베리까지 번역서 일색이다. 유명종·박일봉 선생 등이 중국사상사 집필에 도전했지만 제목처럼 중국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부분만 다루고 있다. 송영배 선생은 『제자백가의 사상』(1997)으로 제자백가 사상의 기본 뼈대와 원문을 소개했고, 이강수 선생은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1999)로 고대철학사를 다루었다. 고대부터 근대를 모두 다루는 통사는 없다. 이렇듯 철학사의 업적만 놓고 보면 한국은 후진국인 것이 틀림없다.
번역은 끝이 아니라 창작의 밑바탕일 뿐이다. 다른 곳의 근대를 번역해서 모방했더라도 일정한 숙성 기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색깔을 내게 된다. 번역이 아주 많고 좋아서 그런지 우리는 창작의 의욕과 시도를 잃은 모양이다. 번역이 창작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동양(동아시아) 철학사도 번역의 홍수 속에 창작은 빈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펑유란의 책은 이제 『간명한 중국철학사』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시점에서 30년도 더 흘렀지만 펑유란의 철학사에 견줄 만한 우리의 철학사는 아직 곁에 없다. 대학에 제일 많이 개설되는 것이 ‘중국철학사’ 류의 강좌이다. 강의실에서 넘치는 숱한 말들이 허공에 사라질 뿐 책으로 활자화되고 있다. 이는 펑유란의 저주라고 할 만하다. “단순히 한국 사람이 중국철학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펑유란과 다른 중국철학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런 저간의 상황에서 더욱 예리하게 벼려졌다.
이 책은 저자가 펑유란과 다르게 철학사를 바라보는 설계도를 그리며 그간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철학사를 빛낸 숱한 별들을 전부 다루지는 못했으며 그래서 ‘철학사’라 하지 못하고 ‘철학사의 전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철학사의 터닝포인트’라는 의미이다. 철학사는 선배(부모)들이 길을 밝히고 후배(자식)들이 처음에 그 빛을 쬐다가 나중에 그것을 뒤집는 사상의 결투장이다. 짧게 말해서 철학사는 부친 살해의 역사이다.
아직 주위의 철학사를 보면 빛나는 사상의 결실을 사전처럼 나열하거나 탄생의 비화와 확산의 과정을 들려주거나 아무런 연계 없이 한 꾸러미에 차곡차곡 꾸려놓거나 이제 중국의 철학사에서조차 강조하지 않는 철 지난 계급사관을 도식적으로 적용해서 철학사를 한칼에 베어버리는 책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볼 때 서양인이 쓴 중국철학사가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정근 교수의 이 책 역시 ‘타자’와 ‘디아스포라’라는 중국 사상사 특유의 발생동력을 중심에 놓고 고대에서 근대까지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전제, 즉 "중국"이라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유구한 역사"와 "자족적 문화"라는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국철학사를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의 여정"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타자는 중국적인 것과 이질적 존재를 가리킨다. 인종으로는 삼대의 삼묘三苗, 서주의 융족戎族, 동주의 동이東夷, 한 제국의 흉노匈奴, 남북시대의 오호五胡, 송의 탕구트족, 거란족과 여진족, 원의 몽골족, 청의 만주족, 근대의 양이洋夷 등을 가리킨다. 제도와 가치로는 이질적인 결혼과 풍속 그리고 복식, 국가와 관직 그리고 물질적 가치 등의 외물, 과학과 민주주의 등을 가리킨다.
디아스포라(유배)는 중국인이 문화의 발생지라는 중원에서 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던 경험을 말한다. 삼대에는 이민족과 잡거雜居했고, 서주가 동주로 바뀌면서 주족은 호경을 떠나서 낙양으로 옮겨가야 했고, 세력의 강약에 따라 한 제국과 흉노족은 땅과 사람을 내주었고, 위진 이후 한족漢族은 중원을 내주고 강남으로 옮겨 살아야 했고, 원청 제국에서 한족은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고, 근대에는 동남아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문화 정체성은 사서오경으로 텍스트화되고, 삼대三代로 역사화되고, 화華로 종족화되고, 도道로 이념화되고, 리理로 실체화되고, 성性으로 개별화되고, 군자와 동심童心으로 주체화되었다.
중국인은 삼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타자와 대결하면서 자립을 유지하거나 유배 또는 식민의 상황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대정신을 재구축해왔다. 현재 중국은 문화 정체성을 과도하게 실체화하여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루어진 중화주의로 결정화시키고 있다. 제자백가와 성리학과 같은 전근대의 문화 정체성은 다시 역외로 확산되고 동아시아 문화의 동일성으로 상승할 정도로 보편성을 획득했지만 중화주의와 같은 근현대의 문화 정체성은 동아시아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을 유발한 채 타자를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인은 "창문 없는 방"에 산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늘 뒤섞여 있던 곳"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문화 정체성을 시대마다 달리 구축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시대마다 타자의 정체와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 정체성의 재구축도 늘 다른 언어로 지어진 다른 구조를 지었던 것이다. 따라서 철학사는 연속과 불연속(단절)이 뒤섞이면서 빚어진 무지개 빛깔을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