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상 수상자 송찬호 시인의 첫 동시집
출간 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수록
“한국 현대 동시집 가운데 가장 많은 절창이 여기 들어 있다.”_안도현(시인)
동화적 상상력으로 자연과 현실을 접목시키며 시를 써 온 송찬호 시인이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첫 동시집 『저녁별』을 출간했다. 송찬호 시인은 “미당의 언어마술, 백석의 장난기와 천진함까지 갖췄다. 요즘 시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리와 운율의 미학이 특별하다”는 평을 받으며 제8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밖에도 대산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이상시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할 만큼 내공과 저력이 남다른 시인이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기획을 함께하는 안도현 시인은 시리즈 기획 시점부터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을 야심차게 준비해 왔다. 안도현 시인은 이번 동시집을 가리켜 “한국 현대 동시집 가운데 가장 많은 절창이 여기 들어 있다”며 다시금 놀라움을 표현했다. 격월간지 『동시마중』에 실렸던 표제시 「저녁별」은 이제 5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송찬호 시인은 시를 쓸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동시에 다가갔고, 끊임없이 퇴고의 퇴고를 거듭하며 온 마음을 기울여 동시를 써냈다. 시인들의 동시 쓰기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요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동시집 『저녁별』은 시인들의 동시 쓰기에 한 정점을 보여 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동시는 ‘시로서의 동시’의 전범이 될 만한 것이고,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가슴에도 반짝이는 별을 안겨 줄 것이다. 이처럼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 출간은 우리 동시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 값진 성과임에 틀림없다.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_「저녁별」 전문
문명의 이기를 넘어 생태적 상상력에 날개를 달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아주 깊은 산골이었어요.
매일 산과 들로 냇가로 뛰어다니며 놀았지요. 노느라고 정신없었어요.”
송찬호 시인은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자연을 벗 삼아 신나게 뛰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또래 개구쟁이들끼리 모여 똘배, 오디, 버찌, 산딸기 등을 따 먹고, 고구마나 감자나 참외 서리를 하고, 새둥지에 올라 새알을 내리고, 뱀이나 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자치기, 비석치기, 표치기, 팽이치기 같은 바깥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도 오후가 되면 작은 지게를 지고 소꼴을 베러 가는 천진하고 순박한 아이였다.
그 시절 ‘어린 송찬호’는 이제 쉰이 넘은 시인이 되어 그때의 순간순간들을 떠올리며 동시를 쓰고 있다. 자연 속에서 함께 뛰놀던 개구쟁이의 마음, 그리고 하나둘 도시로 떠난 친구들을 그리는 시골 아이의 쓸쓸한 마음을 담아서.
딸기를 먹다가
별명이 딸기인
청주로 전학 간 민주가 생각났다
부끄럼 많은 민주는
늘 얼굴이 빨개서
우리는 딸기라 놀렸다
그런데 민주도 딸기를 먹다가
우리를 생각할까?
사이좋게 지내던 우리 얼굴 생각할까
딸기라 놀리던 우리 미운 얼굴 생각할까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딸기야, 미안해
_「딸기야, 미안해」 전문
우리 집은 그냥
무당벌레 집이라고 하면
편지가 안 와요
우리 집은
지붕은 빨갛고
지붕에 일곱 개 까만 점이 있는
감자잎 뒤에 사는
칠점무당벌레 집이라고 해야
편지가 와요
_「칠점무당벌레」 전문
송찬호 시인은 이번 동시집을 통해 경쟁과 속도의 시대에 살면서 망가진 고장 난 말(言), 고장 난 나무, 고장 난 새의 날개, 고장 난 구름 등을 조금씩 고쳐 놓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그의 세밀한 생태적 상상력은 이번 동시집 안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20세기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드디어 21세기 아이들의 언어로 완벽하게 복원된 셈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고양이의 걸음으로 한 편 한 편 시를 쓰다
“호기심 많은 동그란 고양이의 눈은 사물을 관찰하는 시인의 눈과 닮았어요.
그리고 고양이는 사뿐한 걸음으로 시처럼 움직이지요.”
송찬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에서도 고양이가 등장했고, 이번 동시집에도 고양이에 관한 시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송찬호 시인은 고양이와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마치 시처럼 움직인다. 그 역시 고양이가 움직이듯 날카로운 촉각을 곤두세워 오랫동안 사물을 들여다보며 집중과 긴장으로 시를 발견한다.
이안 시인은 해설에서 “송찬호 시인의 시가 그런 것처럼 동시 역시 단일한 의미망 안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면서 다양한 해석의 층위와 지점을 독자에게 열어 놓고 있다”고 말한다. “읽는 시점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모로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동시 읽기에 새롭고도 풍성한 재미를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동시가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의미 중심, 의미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호박 덩굴 아랫길에서
달팽이를 만난다
둥근 집 등에 지고 오늘 이사 가는구나?
아니요, 학교 가는 길인데요
나팔꽃 아랫길에서도
달팽이를 만난다
학교 가는구나?
아니요, 학원 가는 길인데요
토란잎 아랫길에서
달팽이를 또 만난다
학교 갔다 와서 학원 가는구나?
아니요, 오늘은 이사 가는 길인데요
_「달팽이」 전문
화자는 호박 덩굴, 나팔꽃, 토란잎 아랫길에서 달팽이를 세 번 만난다. 문답형식의 점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매번 화자의 추측은 ‘꽝’이 되고 만다. 유쾌하고 재밌는 동시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해석과 감상이 가능하다. 아이들이 달팽이에 이입되어 잔소리꾼 어른한테 한방 제대로 먹였다며 통쾌해할 때, 어른들은 달팽이를 아이로 환치하여 맹랑한 대답에서 오는 소통의 어려움을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송찬호 시인의 동시는 자연스럽고 편안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동심인 척하는 마음이나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동시 안에 ‘시’를 오롯이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집 『저녁별』은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숙제의 완결판인 셈이다.
소복이 작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어린 송찬호의 상상력을 만나 재미있고 앙증맞은 그림으로 탄생했다. 꼬불꼬불 곱슬머리의 어린 송찬호는 달맞이꽃 위에 눕기도 하고, 수박 조각 위에 앉아 수박씨를 뱉기도 하고, 민들레 꽃씨를 안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포도송이에 매달린 포도알이 되기도 한다. 아기자기한 연필선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결마저 맑고 순해진다.
마지막으로 어린 송찬호의 장난기 가득한 동시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이 동시를 읽고 난 다음에는 수박을 먹을 때마다 수박씨를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고 싶어지지 않을까.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침처럼 드럽게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자
_「수박씨를 뱉을 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