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고양이는 어쩐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러고 보면 평생 고양이를 곁에 두고 아꼈던 예술가의 이름도 금세 몇몇 떠올려볼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의 작업실에는 늘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렸고, 앙리 마티스는 건강이 안 좋아 침대에서 지내야 했을 때 좋아하는 검 ∙아∙트∙북∙스∙∙신∙간∙은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앤디 워홀도 잘 알려진 고양이 애호가로, 『샘이라는 이름의 25마리 고양이와 한 마리의 푸른색 고양이』라는 판화집을 내기도 했다. 고양이를 사랑한 예술가들이 많았던 것은 고양이의 우아한 몸놀림과 아름다운 형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타고난 독립적인 성품이 예술가들의 기질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의 매력을 작품에 담는 젊은 예술가 15인과의 따스한 만남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흔히 키우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고양이 애호가들의 수도 많이 늘었고 주변에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연히 예술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창의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야말로 고양이의 매력을 제일 먼저 깨닫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다채로운 털 빛깔과 무늬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를 모티프로 작업하고 있다.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유기묘였던 ‘스밀라’를 입양하면서 고양이 작가로 활동하게 된 ‘길고양이 통신원’으로 통하는 저자가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때로는 치유자이자 삶의 동반자로 함께해온 고양이의 존재에 주목했다. 일러스트레이터, 금속공예가, 생활사진가, 화가, 도예가, 인형작가, 설치미술가 등 예술가들이 사랑한 고양이 작품을 통해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물론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까지 곱씹게 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고양이의 매력을 한껏 담은 예술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이 기획은 애묘인이라면 탐낼 만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간’, 고양이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양이란 동물이 지닌 예술적인 매력’에 대해서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다채로운 털 빛깔과 무늬만큼이나, 작가들이 매료된 고양이의 모습도 다양합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런 고양이의 숨겨진 매력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작업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상 하나, 방 한 칸만 있어도 멋진 작품이 탄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작업실이란 단순히 돈과 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마음먹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주는 기쁨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스런 모습뿐 아니라 생로병사까지도 함께 겪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순간을 어떻게 책임지고 견뎌갔는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그 순간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_「책을 내며」에서
지은이는 고양이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공간의 이모저모를 비롯해, 작가와 고양이가 교감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담기 위해 2008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작가들과 수차례 만났다. 작가들의 창작열이 담긴 내밀한 작업실 풍경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주거 공간의 편안한 느낌까지 두루 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임대료가 낮은 지역을 찾아가 자생적인 창작촌을 일궈낸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한 가게 한쪽에 작업 방을 만든 작가, 교실과 공방을 함께 운영하는 작가, 뜻 맞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카페를 열린 작업실로 만드는 작가” 등 다양한 작업실 풍경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생활하는 곳까지 찾아가 고양이와 작가가 좀 더 친밀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모두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가는 오랫동안 키운 고양이가 저세상으로 떠나기도 했고, 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양이를 다른 곳으로 보냈어야 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애정만큼은 지금 고양이와 함께하든 아니든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그 애정이, 작업실의 풍경만큼이나,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의 털빛과 모습만큼이나 다채롭게 나타나는 작가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양이가 있는 작업실에 놀러오세요!
말없이 다정한 고양이 삼촌 | 일러스트레이터 유재선
빈티지 인형과 오래된 그림책을 좋아하는 유재선은 홍대입구역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공간을 나눠 반은 수집품 전시 공간으로, 나머지 반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손때 묻은 빈티지 인형과 예쁜 그림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는 고양이에 빈티지 요소를 결합한 쿠션을 만들고 이런저런 문구류와 종이인형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유재선은 천식으로 고생하면서도 제이라는 이름의 페르시안 친칠라종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고, 작업실에 찾아오는 고양이 세 마리의 끼니를 책임져주고 있다.
신비로운 고양이 왕국의 창조자 |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
매년 ‘마리캣’ 달력과 다이어리를 내놓아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선 유명한 마리캣의 작업실 출근시간은 달랑 1초. 침실 옆방에 책상을 놓고 작업실을 꾸렸기 때문이다. 1998년에 입양해 지금껏 함께하고 있는 ‘마리’를 비롯해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며, 그녀는 고양이들이 주인공인 환상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낸다. 온갖 이국적인 풍물과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뒤엉킨 세계는 무척이나 정밀하고 장식적이다.
‘삶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고양이 스승 | 디자이너 박활민
엘지텔레콤의 카이부터 촛불소녀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디자이너 박활민은 인도 다르질링을 여행하면서 그가 살고 싶은 삶을 구현하고 있는 것만 같은 여유로운 고양이들을 만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쌀집고양이’라는 카페를 연 박활민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고양이 엽서에 담아 돈 대신 쌀을 받고 물물교환하는 등 ‘모두를 위한 삶’을 궁리했다. 현재 쌀집고양이는 문을 닫았지만 하자센터 내에 ‘하하허허’ 카페를 새로 열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고양이의 추억 담은 나만의 장신구 | 금속공예가 신유진
장신구는 몸에 지니는 것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신유진은 고양이를 모티프로 한 목걸이, 브로치 같은 장신구를 만들어내는 금속공예가다. 그녀는 공방 겸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칠보 기법과 은점토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10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신유진에겐 고양이들의 부양비도 만만치 않다. 공방을 함께 운영하고 만든 장신구들을 사진 찍을 틈도 없이 판매하고 있지만, 나이를 많이 먹은 고양이들의 병원비 때문에 최근에는 미술교육 과외까지 시작했다. 곁에 있는 고양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그녀의 장신구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길고양이 찍는 ‘찰카기 아저씨’ | 생활사진가 김하연
길고양이를 찍는 생활사진가 김하연은 모델인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거리를 ‘열린 작업실’로 삼았다. 한겨레신문 봉천지국장으로 일하며 김하연은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봉천동을 누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그들의 신산한 삶을 사진에 담는다. 고양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에, 그가 찍는 길고양이도 우리네 삶처럼 때론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 그 사진들은 조용히 우리 마음을 움직여, 우리보다 낮은 곳에 소리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음을 일깨운다.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는 ‘고양이 인간’ | 화가 성유진
공공기관에서 입주 작가를 공모하는 창작공간에서 작업을 심화해가는 작가들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작가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작업실을 차렸던 성유진이 그런 예다. 성유진은 ‘산책고양이’ 샴비와 함께 살게 되면서 작품에 고양이를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림에는 자신과 샴비가 결합된 고양이 인간이 등장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난지스튜디오에서 퇴소한 후 아담한 작업실을 새로 구한 작가는 고양이 인간 모양의 봉제 인형 작업도 시작했고, 직접 만든 고양이 인형 115개를 모아 전시도 열었다.
꿈꾸는 고양이의 금빛 날개 | 도예가 김여옥
상수동 작업실에 두 개의 가마를 들여놓고 검은 고양이 부조를 만드는 도예가 김여옥이 만드는 부조 작품은 고양이 특유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유연한 고양이의 몸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이 검은색 부조에서 부각되어 드러나는데, 요즘에는 고양이 홀로 있던 작품에 창문의 요소를 추가했다.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네모난 창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여옥은 샴종 고양이 고구마와 유기묘였던 누룽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장모종이라 특히 많이 빠지는 누룽지의 털을 모아두고 무언가 만들어볼 작정을 하고 있을 정도로 애정이 도탑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메르헨의 세계 | 인형작가 이재연
구체관절인형 작가 이재연도 공방과 작업실을 겸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재연이 만드는 인형은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비례가 어긋나고 인간과 동물의 형상이 결합된 그녀의 인형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이함과 아름다움 사이를 넘나든다. 그녀의 작업실에는 언제나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한다. 이 세 마리 고양이는 이재연이 만드는 인형의 형상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다. 이재연에겐 인형이 고양이와 함께해온 삶을 반영하는 자화상 같은 것이다.
앙큼한 고양이와 개미요정의 한판 승부 | 화가 신선미
작업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신선미는 집안에 아담한 화실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한다.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 표지를 그려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신선미는,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이와 고양이 눈에만 보이는 ‘개미요정’을 상상하고,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화폭에 펼쳐 보인다.
소외된 동물들을 향한 인사, 굿모닝! | 설치미술가 김경화
부산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에 입주한 설치미술가 김경화가 2008년 대안공간 반디에서 열었던 전시는 압도적이었다. 전시장 바닥만이 아니라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시멘트로 만들어진 길고양이와 비둘기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고양이와 비둘기는 도시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들을 상징한다. 시멘트의 거친 질감과 투박한 느낌은 정말 거리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그들의 풍진 삶을 도드라지게 한다.
낯선 세계로 비상을 꿈꾸는 봄 고양이 | 화가 안미선
고양이의 여유로운 모습과 호기심 어린 표정을 세밀화로 그려내는 안미선 또한 별도의 작업실을 두지 않고 집에서 작업하는 화가다. 비단에 그림을 그린 후 수를 놓아 마무리를 하기도 하는 그녀의 작품에서 자개를 붙여 장식한 수틀은 그대로 그림의 액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의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고양이 완두를 다른 집에 입양보내야 했지만, 완두는 그녀의 그림 속에서 ‘봄 고양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양털 인형처럼 따스한 고양이 엄마 | 인형작가 권유진
‘네코마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모헤어 인형작가 권유진 역시 거실 또는 침실에 작업대를 두고 틈틈이 인형을 만든다. ㅅ자형 입술꼬리를 슬쩍 올리며 의뭉스레 반달눈 웃음을 짓는 고양이 인형이 꼭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권유진은 동네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길고양이의 삶에도 눈이 가고 그러다 보니 직접 도움을 주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이 그녀가 만드는 모헤어 인형에도 담뿍 담겼다.
세상 모든 물건을 고양이로 만들고픈 꿈 | 도예가 조은정
생활도자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 도예가 조은정은 무려 10마리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약고양이로 쓰일 뻔한 고양이를 데려오기도 하고 시신경이 망가져 있던 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하여 하나씩 늘어난 결과다. 자신의 고양이가 애틋하다 보니 아픈 고양이나 입양처가 필요한 고양이를 돌보는 데도 관여하게 돼 그녀의 손을 거쳐 간 고양이는 백수십 마리에 이른다. 그녀의 도자 그림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검은 고양이 그림이다. 함께 사는, 혹은 살았던 검은 고양이를 표현해낸 검은 고양이 그림들이 그녀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늘을 나는 고양이와 보노보C |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주
이소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문래 창작촌에 천연 캣타워 나무집을 짓고 다섯 마리 고양이와 살고 있다. 갈빗대처럼 나무를 줄줄이 대어 만든 천장에서 고양이들이 뛰어노는 그의 작업실은 언뜻 보기에 조각가의 것 같다.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지만 그의 작업실은 최근 문래 창작촌에 모여든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동사무소 같은 느낌마저 전한다. 그 또한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네트워크를 꿈꾸는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한다.
상처의 기억을 껴안은 나무사람 | 조각가 홍경님
홍경님은 16년을 함께한 고양이 방울이의 기억을 지금껏 껴안고 있다. 방울이의 기억 때문에 새로운 고양이를 들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녀의 작업실에는 향기로운 톱밥 냄새가 가득하다. 오랜 시간 고양이와 교감해오면서, 홍경님은 고양이의 모습에 자연스레 자신을 대입하게 된 듯, 자화상 같은 의미가 깃든 작품은 고양이 귀를 지닌 인간으로 묘사되곤 한다. 나무를 깎아서 형상을 만들지만, 갈라짐이나 옹이마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상처는 지워 없애야 하는 것이기보다는 치유의 증거이자 생존자의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