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를 이미 완결된 완성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다. 역사는 세대마다 새롭게 쓰여야 한다.” _E. L. 닥터로
E. L. 닥터로는 오늘날 미국 문단에서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작가이다.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통적인 소설의 한계를 인식하여 다양한 스타일 실험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열정, 사회적 비전을 놀라운 예술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첫번째 장편소설 『하드 타임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1960)에서는 미국 프런티어 신화의 허구성을 탐구했고, 영화와 뮤지컬로도 많이 알려진 대표작 『래그타임』(1975)에서는 인종주의와 급진주의를, 그리고 그에게 세번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두번째 펜포크너 상을 안겨준 『행군』(2005)에서는 남북전쟁에 관한 낭만적 신화를 깨부수고 있다. 이렇듯 전 작품에 걸쳐 미국의 과거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하는 그에게 모든 역사는 ‘만들어진 것’이며 일종의 허구로서, 닥터로는 작품을 통해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미국의 다른 이면의 역사상을 제시한다. 곧 그는 미국인의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된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역사는 전쟁터이다. 과거가 현재를 제어하기 때문에 역사는 항상 투쟁의 대상이 된다. 역사는 현재이다. 각 세대가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최종적인 산물인 신화이다. (p.467, 해설 중에서)
닥터로는 미국의 역사가들이 흑인과 인디언과 여성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워버린 것과 같이, 역사는 존재할 것과 존재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행위로써 창작과 관련된 결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역사가들은 모두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닥터로는 자신의 작품에서 미국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작가로서 “자유의 힘”으로 “체제의 힘”에 도전하려 한다. 그의 목적은 제도의 힘이 가진 패권을 폭로하고 이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로와 도전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무대 가운데 하나가 역사라고 믿고 자신의 작품의 소재들로 삼았다.
아인슈타인, 사르트르, 장 콕토, 피카소 등 전 세계 지성과
미국정부를 대립하게 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의 문학적 재구성
『다니엘서』는 닥터로에게 미국 역사의 기록자로서 필립 로스, 솔 벨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찬사를 안겨다준 대표작이다. 소설의 내용은 소련에 핵무기 관련 기밀을 넘기기로 공모했다는 혐의로 처형당한 로젠버그 부부의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 부부는 1950년 5월 23일 체포되어 1953년 6월 19일 싱싱교도소의 전기의자에서 차례로 처형당했다. 이들은 죽기 전까지 자신들의 스파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 사형되었다. 이들 부부의 사형 판결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당대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 사건을 두고 격렬히 부딪혔다. 아인슈타인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사형 판결만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요청했고 교황 피우스 12세를 비롯한 전 세계 지성들이 미국 정부에 구명 청원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형세가 불리해지며 반공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결국 부부는 “당시의 세계정세에 책임을 지고 반역죄로 처형”당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사건을 가리켜 “법을 빙자한 린치”라고 표현했다.
『다니엘서』에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은 이렇게 대치된다.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애설 로젠버그는 폴 아이작슨과 로셸 아이작슨으로, 로젠버그의 두 아들은 다니엘과 수전 남매로 변형된다.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한 검사 측 증인은 에설의 남동생인 그린글래스에서 치과의사 셀리그 민디시로, 이 외에도 실제 재판을 담당한 판사와 검사, 변호사도 허구의 인물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부부의 재판에서 사형까지의 주요한 사건들은 이들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과 당시 세계정세에 대한 다양한 시점의 해석들과 함께 묘사된다.
닥터로는 이 이야기를 아이작슨 부부(로젠버그 부부)가 죽은 지 14년 후 아들인 다니엘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던 여동생이 자살기도를 한 뒤 그것을 계기로 부모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고 조사한다. 소설의 화자는 다니엘이지만 실제 1인칭 화자와 3인칭 화자로 서술의 시점은 계속 변화한다. 이것은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닥터로는 처음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50페이지까지 원고를 쓴 후에야 이 소설은 다니엘의 목소리로 진행되어야 함을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점의 변화뿐 아니라 작품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서술 방식(논문, 인터뷰, 편지, 독자와의 직접적인 대화와 논조의 변화 등)은 단순한 스타일 실험이 아니라, 닥터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채용이다. 주인공인 다니엘이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어려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며,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 따른 좌절감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또한 이는 독자가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채택된 것이다. 즉 닥터로의 관심사는 부부의 유무죄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 역사적 사건이 담론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있다. 미국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닥터로의 역사 인식과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작품의 제목인 <다니엘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인용되는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선지자 ‘다니엘’은 유대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왕궁에 끌려가 느부갓네살 왕의 신하가 된 인물이다. 그는 왕의 꿈을 해몽하며 최고 관직에 올랐고 그로써 유대 민족들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과거를 해석하여 부모의 진실을 찾고 가족을 구원하고자 한다. 다니엘에게 과거의 해석은 곧 자신의 실존의 문제와 닿아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 인용된 「다니엘서」의 한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해야 할 마지막 환난을 예언한 것으로, 성경의 다니엘은 환난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불의에 굴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자들은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니엘서」의 예언은 그 의미가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봉인될 것임을 기록한다. 이 구절을 통해 작품의 다니엘 아이작슨은, 곧 닥터로는 이 시대에서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어떠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인지 말하고자 한다. 또한 예언의 의미가 마지막 날까지 봉인된 것처럼 역사의 진실은 쉽게 그 의미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줄거리
다니엘은 소련에 핵무기 관련 기밀을 넘기려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형당한 아이작슨 부부의 아들이다. 부모님이 처형되었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다니엘은 어린 동생 수전과 함께 법학교수인 르윈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이야기는 사건 후 14년이 지난 1967년,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생이 된 다니엘이 동생 수전이 자살기도를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다니엘은 수전의 일을 계기로 평생 남매를 괴롭혀왔던 친부모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는 아이작슨 부부의 변호사였던 애셔의 미망인, 아이작슨 부부에 대한 재평가 기사를 썼던 <뉴욕 타임스>의 기자, 반정부시위 학생운동의 리더이며 수전의 급진주의자 친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와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린다. 또 당시 국제정세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쟁점들을 분석하며 진실에 다가가려 애쓴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부모를 사형에 이르게 한 증언을 했던 검사 측 증인이자, 어린 시절 가족의 치과의사였던 셀리그 민디시를 찾아가야 알 수 있음을 안다. 다니엘은 마침내 디즈니랜드에서 그를 만나게 되지만……
해외 서평
『다니엘서』 이후로 닥터로는 미국 역사의 기록자로서 존 업다이크, 필립 로스, 솔 벨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_조너선 프리드랜드(저술가)
가장 완벽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작품, 이러한 예술 작품만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 수 있다. _조이스 캐럴 오츠(소설가)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닥터로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늘의, 오늘을 위한 소설이자 그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이 시대 최고의 작품.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주제와 상징이 공명하며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 _『뉴스위크』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로젠버그 사건을 한 개인의 고통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 결과는 놀랍도록 도발적이다. _『시카고 트리뷴』
본문 발췌
최종적인 실존의 조건은 시민권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조국의 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적이다. 모든 국가는 자기 국민의 적이다. (……) 군인의 손에 소총을 쥐여주고 전선으로 내보내면서 생존이 임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부이다. 모든 사회는 무장한 사회이다. 모든 시민은 군인이다. 모든 정부는 각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 준비가 되어 있다. (pp.115~116)
내가 이 시대의 논리를 뒤집어 어떤 전략을 세워도 결국 그들을 유죄로 만드는 결론이 도출될 걸세.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선언하든 수정헌법 제5조에 의거해 묵비권을 행사하든 결국 그들은 공산주의자로 밝혀질 것이네. 그리고 그들이 공산주의자라면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 되네. (……) 그들이 소련을 책임져야 할 형편이네. 그들이 현재의 세계정세를 책임질 판국이라네. (pp.302~303)
맞아. 그 사람들은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 했네. 그게 그 사람들 직업이니까. 그렇지만 자네 부모한테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지목을 한 거야. 이 나라에서는 추첨으로 누군가를 골라서 그 사람 생명이 걸린 재판을 열진 않거든. 모르긴 몰라도 자네 부모하고 민디시는 어떤 빌어먹을 일에 관련됐던 게 분명해. 그들은 죄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 아마도 시시껄렁한 작전에 연루된 조무래기 동네 빨갱이쯤 됐을 거야. 그 작전에 투입돼서 어쩌면 자긍심도 품었겠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지. 어쩌면 그 작전이란 건 5년 형 정도 가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말이야. 하지만 그건 시대가 좋을 때 이야기야. 시대가 좋았으면 아무도 신경을 안 썼겠지. 아무도 증거를 조작할 만큼 신경 쓰진 않았을 거야. 아무도 전기 스위치를 누를 정도로 겁먹진 않았을 거라고. (p.316)
◈ 발행일: 2010년 12월 10일
◈ 쪽수: 480쪽
◈ 판형: 137*203 (양장)
◈ 가격: 14,000원 (양장)
◈ ISBN: 978-89-546-1324-8 04840 (양장) | 978-89-546-1020-9 (양장 세트)
◈ 담 당: 임선영(drgonzo@munhak.com, 031-955-8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