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전』과『흥보가』그리고『옹고집전』은 권선징악, 개과천선이라는 고전 특유의 주제를 잘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주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은 고전으로서의 문제성을 획득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흥보는 착한 사람으로, 놀보는 우애도 모르는 악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으나 이는 ‘어수룩하고 무능한 자’와 ‘약삭빠르고 유능한 부자’로 대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화폐 경제로 치닫던 당시 조선 후기 당대의 사회경제적 동향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더불어 판소리계 소설 특유의 입담이 모국어의 향연처럼 풍성하게 펼쳐진다.
『옹고집전』또한 가난한 이웃을 박대하던 못된 부자 옹고집이 도승의 가르침으로 새 사람이 되어 착하게 살아간다는 도덕적인 주제를 내포한 이야기이다. 옹고집처럼 악한 사람이 부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흥보전』『흥보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또, 새 사람이 된 옹고집이 자신의 재산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간다는 결말은 오늘날 부의 환원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 민중의 해학이 넘치는 적층문학
무엇보다, ????흥보전???? ????흥보가????는 재미있다. 시간이 쌓이고 민중의 입담이, 재치가, 지혜가 고스란히 쌓인 ‘적층문학’이기 때문이다. 이들 텍스트는 천연덕스러운의 재담과 놀라운 말의 향연으로 넘쳐난다.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네.” 도랑을 건너뛰다가, “아차 내가 잊었다. 초장 초장? 아니다. 방장(房帳) 천장 고추장 된장 구들장 띠장? 아니다. 아이구 이것이 무엇이냐?”
_『흥보가』에서 놀보가 흥보로부터 화초장을 받아 지고 오는 대목
“꽁그락꽁 꽁꽁 꽁꽁 꽁꽁 꽁꽁 꽁그락꽁 꽁꽁, 소상에 반죽 꽁그락 꽁꽁꽁꽁, 열두 마디 꽁그락공 꽁꽁. 구름 같은 댁에 꽁그락꽁 꽁꽁”
_『흥보가』에서 놀보가 박을 탔더니 난데없이 초라니패들이 떼거지로 나와 각설이 타령조로 하는 말
박 속에서 갖가지 비단이 나오는 대목,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제비 노정기 등 ‘장면의 확장’에 이를 때마다 이들 텍스트에서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온갖 보물이란 보물은 모두 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해온 먼 곳의 지명이란 지명은 모두 다 풀어서 부려놓는다. 이는 생래적으로 각인된 우리 모국어의 축제다.
◆ 권선징악을 넘어 우리 안의 흥보와 놀보를 다시 보다
흔히 우리는 ????흥보전????????흥보가????를 나쁜 형 놀보와 착한 동생 흥보의 이야기,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선악의 모럴(moral)로만 작품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흥보와 놀보는 우리 안에 공존하는 우리의 두 가지 모습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겉으로는 착한 사람 흥보를 가장한다. 그러나 기실은 성공을 꿈꾸고 부를 좇는 놀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흥보와 놀보의 캐릭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 있는 인물들이자 이런 이유로 ????흥보전???? ????흥보가????는 생생한 현재성을 지닌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선이 결국 승리한다는 고전소설의 문법을 따른 ????흥보전???? ????흥보가????에서는 남쪽 나라의 제비가 찾아와 결국 착한 흥보가 부를 거머쥐게 되고 못된 놀보는 우애라는 천륜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못 살고 못된 사람은 잘 사는 세상의 불합리가 소설에서처럼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 안의 흥보와 놀보를, 그리고 당대를 살아가는 또다른 수많은 흥보와 놀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흥보야 네 듣거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는 데가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너도 나이 들어 계집자식 있는 놈이 사람 생애 어려운 줄 조금도 모르고 나 하나만 믿고 하는 일 없이 놀면서 먹고 입으면서 지내는 거동 보기 싫다.” _『흥보가』 본문에서 놀보의 말
◆ 『옹고집전』에 나타난 부의 재분배 문제
『옹고집전』은 ‘역전’과 ‘전복’의 이야기다. 옹고집은 마을 사람에게 박정하게 굴며 양식을 얻으러 온 도승까지 내쫓는 나쁜 부자였지만 자신보다 더 옹고집 같은 가짜 옹고집을 만나 혼쭐이 난 후에야 착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은 한바탕 뒤집힌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 취급을 받고, 부자 옹고집은 가난뱅이가 되어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맛본다. 어찌 아니 통쾌한가. 이후, 옹고집은 도승의 가르침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며 선하게 살았다. 곤란을 겪어보고, 가난을 목도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