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기원이 머리 깎고 절에서 쓴 필생의 역작
한편으로 든든한 민중성과 강렬한 현실비판의식을,
다른 한편으로 탐미주의에 대한 경도와 도저한 서정성을 꾸준한 작품활동 을
통해 보여주었던 중견작가 송기원이 여자를 소재로 한 자전적 성장소설 "여자에
관한 명상"을 펴냈다.
이 작품은 1994년 말부터 1년 동안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다가 중단된 후 작가가 계룡산 기슭의 갑사(甲寺) 대성암(大聖 庵)에서
칩거하며 머리 깎고 탈고한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가의 필생의 역작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의 원체험과 문학적 이 력 및 정신의 성장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자기고백적 성격의 소설이다.
숱한 여성 편력의 체험을 통한 실존적 고행과 구도정신
주인공 김윤호의 십대 후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서
자전적 성격이 농후한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 "여자에 관한 명상"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좌절로
얼룩진 질풍노도의 젊은 시절을 같이 통과했던 여자를 통해 세상에 대한 통로를
뚫어보려고 했던 방황의 기록이자, 이를 통해 세상에 대한 사랑과 넉넉함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이다. 가난한 장돌뱅이 출신의 사생아인 주인공
김윤호가 고향의 장터를 떠나 고등학교에 복학하고, 문학에 눈뜨고, 서울의
대학 에 진학하여 다양한 체험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숱한 여성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를 통해 자아인식과 정신의 성장으로 나아가 는 모습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여성의 성기를 목격하는
두 개의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보랏빛 자운영 꽃과
털투성이 밤짐승의 거대한 입으로 상징되는 대조적인 두 개의 인상은 이후
주인공의 정신세계 속에서 지속적인 연상작용 을 일으키며 여자에 대한 행동의
이중성을 규정한다. 여성 및 여성과의 성행위가 자신의 존재전이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인식 되고, 탐미주의-초현실주의-아웃사이더-퇴폐주의 등의 여러 사상적
변화의 단계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문학, 즉 위악(僞惡)으로서의
문학을 섹스와 연결시킨다. 장돌뱅이의 사생아라는 비천한 태생에 대한 자의식을
감추기 위해 문학을 택 했던 주인공은 삶의 굽이굽이에 등장하는 숱한 여자들을
통해 진정한 정신의 구원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패륜과 혼돈 으로
가득찬 주인공의 여성 편력은 단지 향락을 탐하는 행위가 아니라 실존적 자아의
진지한 고행이며 예술혼과 구도정신의 발현 에 가깝다.
존재전이의 욕구를 숭엄한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정신의 경지
나이 쉰이 된 작가 송기원이 자신의 문학적 삶을 갈무리하며
투혼의 열정으로 쓴 장편 "여자에 관한 명상"은, "내 삶을 뒤돌아보면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있었다. 또 나의 내면에는 여자를
찾아 헤매지 않은 순간이 한 순간도 없었다. 여자에 관해 쓰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에 대해서도 한 줄도 못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작가 자신의
말처 럼 성(性)에 눈 뜬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여자에 관한 탐구를 통해 여자로
상징되는 세상의 양면성에 대한 치열한 싸움의 과정을 관능적인 육질의 언어에
담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김윤호가 전신으로 실연(實演)해
보여주고 있는 위악과 파멸을 지향하는 마성(魔性)에 사로잡힌 자의 모습은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제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다양 한 세상의 편차를 보여주는 여자들과의
숱한 성체험의 편력은 저주받은 운명의 불행에 적극적으로 투신하여 내적 구원과
정신의 성장을 탐색하는 것으로 의미지어진다. 그에게 여자는, 여자와의 성행위는
육체적 쾌락의 추구도 아니고 두 영혼의 완전한 합일 에 대한 갈망도 아니다.
여자를 통한 줄기찬 자기발견과 탐색의 여정은 자신의 치부를 적극적으로 내보이는
위악의 현현이다. 또 일상적이고 평균적인 삶에 대한 거절, 자기 파괴를 통한
자기 갱신의 추구라는 깊이 있는 인식에 이른다. 소설의 각 장에 언 급되어
있는 여러 에피그램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자기 삶의 굽이마다 중심으로 등장했던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작가 송기원이 진 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자라는
확대경을 통해 자신의 내부를 끊임없이 비추어보고 존재전이의 욕구를 숭엄한
예술혼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정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점일 것이다.
우리 문학에선 흔치 않은 자리를 확보한 성장소설이자
예술가소설
장편소설 "여자에 관한 명상"은 작가가 되기를
꿈꾼 한 청년의 고뇌와 자아인식의 역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예술가소설이라
는, 우리 문학에선 흔치 않은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작가 송기원이 자율적 성장이 허락되지 않는 현 대사회에서 한 치열한
젊은 영혼이 앓는 진통을 생생히 묘파함으로써 그 동안의 우리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인물을 문학 사에 등재시켰다는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여자에 관한 명상"은 본격적인 구도소설을
쓰기 위한 정화의식"이었다고 말하는 작가 송기원. "너에게 가마
나에 게 오라"에서 "여자에 관한 명상"을 거쳐 그가 이르게
될 삶과 죽음과 글쓰기에 관한 명상이 이후 어떻게 작품으로 구현될지 자 못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