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처럼 정교하고, 시처럼 아름다운…
끝나지 않는 비평의 언어!
정끝별 9년 만의 시 평론집
시인이자 평론가인 정끝별이 9년 만에 새 평론집을 펴냈다.
제목은 ‘파이의 시학’. 언뜻 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수학기호 π가 돌연 문학평론집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수학과 시학이 만난 이 오묘한 제목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파이(π)’는 우리가 익히 아는바 3.14159265358979……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숫자이자, 원주율,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를 ‘우리 삶의 둘레나 넓이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좌표 혹은 기준’으로 보고, 더불어 우리 삶에 3.14배를 더해주는 그 ‘무엇’으로 간주하면서, 과거와 오늘의 한국과 한국인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국시의 증후(證候)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마치 수학의 ‘파이’처럼 우리 시의 둘레와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는 ‘불변의 상수’를 찾아내기 위하여, 지난 9년간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부단히 집필을 계속해온 정끝별. 그 지난한 9년간의 연구와 비평의 정수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김소월과 서정주 등 우리 시단에 한 획을 그은 시인과 시동인들의 작품과 역사를 살펴보면서, 아브젝시옹, 알레고리, 패러디, 병렬과 같은 중요한 시적 개념들의 성격을 정리한다. 1부 첫 글인 소월시론에서는 민요조 리듬에 기대 흔히 ‘민족적 정한의 언어’로 수사되는 소월시를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정한의 언어’로 감지해내는 그만의 남다른 독법을 펼친다. 원본 시집에 쓰인 시어를 정치하게 분석한 저자의 비평과 함께 한 편 한 편 소월시를 곱씹다보면 “가장 소월다운 시의 진경은 단독자의 내면으로 체험되는 갇힌 풍경 속에서 웅숭깊게 펼쳐진다”는 저자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서정주의 시집 가운데서도 단연 절창으로 꼽히는 『질마재 신화』를 중심으로 빼어난 ‘사회사가(社會史家)’이자 ‘방언 마술사’의 솜씨를 뽐내는 미당시의 미학을 ‘아브젝시옹’의 관점에서 풀어낸 평문, 그리고 한국 현대시단의 걸출한 패러디스트들인 유하, 박정대, 이성복, 성기완, 서정학 등의 패러디 기법을 꼼꼼하게 분석한 글도 흥미롭다.
2부에서는 사랑, 일상, 디지털, 신화, 여성성 등 단일한 키워드로, 고운기, 이대흠, 함민복, 이진명 등 여러 시인들의 시를 논한다. 그중에서도 현대 사랑시에 등장하는 사랑과 열망의 풍경을 ‘갈망’ ‘접촉과 황홀’ ‘위로와 권력’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분석한 ‘사랑의 권력, 사랑의 언어’는 평론이라기보다 차라리 시를 통해 ‘사랑’의 심리와 철학을 분석한 심오한 사랑론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난, / 너의 가장 뛰어난 감식가야 / 그게 사랑이지”(박용하, 「감식안에 관하여」)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최고의 ‘그대’를 감식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사랑에 대한 가장 시적인 정의’라고 말하는 그의 사랑시론은 현학적인 비평글에서는 느끼기 힘든 공감과 카타르시스마저 자아낸다.
한편, ‘서정과 일상의 변주, 그 불완전의 시학’이라는 제목하에 1990년대 시동인 활동의 위상을 연구한 글도 주목할 만하다. 80년대 중반에 이미 절정을 이룬 시동인 활동은 90년대에 접어들며 탈중심, 탈이데올로기적인 분위기로 재정비되었고, 장석남, 김기택, 김중식, 유하, 이윤학, 나희덕 등은 시운동 제2세대, 시힘, 21세기 전망, 슬픈 시학 등을 결성하며 문학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나갔다. 80년대 이후로 우리 시단의 최전방에 서 있었던 시동인 활동이 단일한 목적과 선언으로 응집했던 80년대형 동인에서 어떤 방식으로 탈바꿈해 그 생명력을 이어갔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3부는 1995년에 출간된 윤종대의 『소금은 바다로 가고 싶다』에서부터 2009년 황동규의 『겨울밤 0시 5분』까지 해당 시집에 실렸던 해설들을 모아 엮었다. 저자가 “반세기의 시력(詩歷)에도 불구하고 그 팽팽한 시적 긴장이 벼려낸 새로운 진경”이라 평한 황동규의 근작, “바닥이 닿지 않는 꽃의 깊이, 그 꽃그늘을 노래하는” 오세영의 시집, 다분히 ‘강박적’이고 그렇기에 더욱 ‘독창적’인 조말선의 시편들과 더불어, 읽는 내내 “덧나기 위한 상처, 잃기 위한 사랑, 버리기 위한 희망으로 일그러진 삶 속에서 그 상처를 감싸 안고 사는 피에로”를 떠올리게 하는, 그래서 조르주 루오의 그림〈다친 어릿광대>를 평문 끝에 슬며시 얹을 수밖에 없게 하는 김추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저자는 더없이 신선한 감각과 형식으로 우리 시단의 이단아와 원로작가 들 사이를 부드럽게 오간다.
삶의 둘레와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최고의 시를 감식하다!
지금까지 정끝별은 우리 시대의 삶과 인간의 증거가 되는 시와 시학을 꿈꾸며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대중들에게 우리 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 데 힘써왔다. 새 평론집『파이의 시학』에서 그는 다시금, 온갖 휘황한 영상과 서사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가 필히 우리의 언어로 쓰인 시 한 자락에 시선과 마음을 돌려야만 하는 이유를 섬세하게 묘파하고 있다. 그 자신 시인으로서 시를 짓고 또 동업자들의 작품을 읽고 비평하며, 끊임없이 우리 시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증명해온 저자 정끝별.
수학처럼 정교하고, 시처럼 아름다운 그만의 비평 언어는 계속된다.
우리 삶의 둘레나 넓이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좌표 혹은 기준, 그 상수가 바로 π다. 우리 삶에 3.14배를 더해주는 그 무엇! 사랑일까, 이념일까, 돈일까? 희생일까, 의지일까, 투쟁일까?
우리 삶에서 시가 차지하는 역할이 딱 π만큼을 곱해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가 늘 우리 삶을 3.14배 더 길고 더 넓고 더 깊게 해주었으면 좋겠고, 시학이든 시론이든 시비평이든 그것들이 우리 시를 3.14배 더 길고 더 넓고 더 깊게 해주었으면 더 좋겠다. 시의 위의(威儀)가 날로 추락하고 있는 지금-여기에서, 시인의 아마추어리즘과 시의 골동품화가 피부로 지각될 때가 많은 지금-여기에서 나의 바람은 철 지난 낭만주의자의 아니면 고립을 즐기는 몽상주의자의 망상적 꿈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우리의 삶을, 시학(시비평)은 우리의 시를, 위풍당당하고 기운생동하게 하는 그 본래적 위의와 책무를 지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π라는 상수처럼! 이 평론집의 제목이 ‘파이의 시학’인 이유다.
아무리 달리 생각해본들, 여전히 시를 쓴다는 것, 여전히 시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일이고 살아가는 일이다.
삶에 파이를 곱하는 시, 시에 파이를 곱하는 시비평을 꿈꾸며!
_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