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낯설고 생소한 전문분야에 대해서 경외감을 가지곤 한다. 클래식 음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섭도록 낯선 분야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클래식은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쉽게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오케스트라와 기업 경영에서의 리더십을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얼핏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거나 “더욱 쉽지 않다.
낯선 것에서 놀랍도록 실질적인 깨달음을 얻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조직’이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지휘자를 중심으로 한 섬세한 조직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다만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한 번도 그런 식의 조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에서의 리더십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오늘날 복잡해지고 거대해진 조직 앞에서 왜소해진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회사의 경영부실로 걱정이 산더미 같은 CEO가 오케스트라 리허설 현장에서 그동안 간과해왔던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새로운 가치와 덕목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클래식 리더십: CEO, 마에스트로에게 길을 묻다』는 우리에게 놀라운 우화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로저 니른버그Roger Nierenberg는 뉴욕에서 유럽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지휘자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여년 간 뮤직 패러다임의 창시자Creator of The Music Paradigm로서 더 높은 명성을 쌓았다. 뮤직 패러다임은 회사의 경영자나 리더들을 오케스트라 리허설 현장에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리더십 컨설팅 프로그램인데, 저자 니른버그는 지난 10여년간 수백 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 같은 작업을 해왔다. 이 책은 그간의 경험을 추려내어 한 편의 우화 형식에 그 노하우를 담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자문위원인 워런 베니스가 “지난 몇 년간 읽은 리더십 관련 서적 중 단연 최고”라고 격찬했듯이, 이 책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리더십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책의 화자는 경영상태가 매우 부실해진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인데 그가 우연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리더십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총 18편의 이야기로 이뤄진 이 책은 경영 현장의 이야기와 리허설 현장의 이야기가 지그재그로 반복되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어떻게 클래식 리더십이 현장에 접목되는 지를 점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의 화자는 전형적인 합리주의자로 등장한다. 과학적인 통계자료와 시장조사를 토대로 과학적인 회사 경영을 해온 그는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구원해주는 일종의 ‘용병 CEO’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즉, 그는 위기에 강한 승부사로서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에 부임했을 때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즉각 회사가 부실해진 이유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 회사의 문제는 “똑똑한 바보들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었다. 영업부, 제작부, 회계팀 등의 구성원들은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었지만,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또 과잉 방어하며 싸우느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화자는 그들에게 맡겨둬서는 배가 산으로 가겠다는 판단 아래 나름대로 문제의 개선책을 마련해서 일일이 지시하며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갈수록 바닥을 치는 매출과 신제품 출시의 지연,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거래처의 불만뿐이었다. 그는 이 현상 앞에서 당황했다. 그는 분명 직원들이 성실하게 “실행만 하면 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더욱 충격적인 일이 그를 기다렸다. 그를 고용한 그룹의 회장이 “직원들이 자네의 리더십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것 같더군”이라는 말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시계이고 지휘봉은 태엽인가?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그는 딸의 바이올린 선생에게 그가 소속된 오케스트라에 새로 부임해온 마에스트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하나의 소리를 내게 만들며, 그가 지휘대에 올라서면 연주자들이 예술적 재능을 최대한 살려 연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그의 소개를 받아 리허설 현장을 찾아갔다. 바이올린 주자 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리허설 현장을 본 그는 정식 연주복을 입지 않고 다양한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개성적인 연주자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지휘자가 출발을 알리자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화자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지휘자는 사소한 단점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지적함으로써 오케스트라가 기계식 시계처럼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첫 곡을 연습한 뒤 지휘자가 지휘대에서 내려와 청중석에 앉고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지휘자 없이도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연주를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 아닌가. 오케스트라가 시계이고 지휘봉이 태엽이라면, 지휘자의 태엽감기 없이 어떻게 시계가 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혼란에 빠졌다. 오케스트라는 시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 오케스트라 대기실로 마에스트로를 찾아간 화자는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첫 방문 후 의문만 더 커져버렸다며 회사의 경영부실로 고민하고 있는 점을 말해주었다. 마에스트로는 흥미를 보이며 그에게 정기적으로 오케스트라 리허설 현장을 찾아와도 좋다고 허락해준다.
오케스트라에도 갭 분석이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화자와 지휘자가 서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CEO의 입에서 나온 “합리적 지성으로 무장한 군대”가 마에스트로의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정확한 대응 공격에 끊임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세 번째 만남에서 마에스트로는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후 작곡한 교향곡을 훌륭하게 연주해 보인 후 화자에게 클래식 리더십의 핵심을 말해준다. 그것은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법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할 때 지휘자는 “모든 단원들이 오보에 주변으로 소리를 모아보라”는 주문을 했을 뿐 다른 부분에서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자 좀 딱딱하게 느껴졌던 연주가 금방 생명을 얻은 것처럼 신비롭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에스트로는 신기해하는 화자에게 리더는 어느 정도 통제력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하며, 구성원에게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멘델스존의 교향곡에서 그것은 폐허가 된 홀리루드 궁전에서 멘델스존이 받은 “역사적인 엄숙함”의 이미지였다. 마에스트로는 이 정조情調를 “오보에 주위로 소리를 모아보라”는 말로 전달했던 것이다. 화자가 보기에 분명 의미있는 이야기로 들렸지만 아직 그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첫 번째 통찰이 찾아온다. 조직의 구성원을 이끄는 것은 CEO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상황과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갭’을 줄여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말이다. 마에스트로는 지휘를 시작하기 전 멘델스존의 교향곡을 해석할 때 “먼 과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음악을 상상”했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음악이 울려나오고 바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두 음악 사이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오보에라는 꼬투리를 통해서 이 차이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자 화자는 “그렇군요. 마치 갭 분석gap analysis처럼 말이죠”라고 맞장구를 치게 된다.
25가지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플로flow
두 번째 통찰은 클라리넷에게서 나왔다. 정기적으로 리허설 현장을 찾아간 화자는 점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현악기 파트의 멜로디가 한 옥타브 낮은 클라리넷 소리와 겹쳐”져서 클라리넷 부분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모든 단원들에게 클라리넷 소리를 들으면서 연주를 하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클라리넷과 현악기의 분리된 느낌이 극복됐다. 연주가 끝나자 바이올린 주자가 말했다. “정말 최고였어요. 지금까지 수십 번 연주한 곡이지만 그런 요구를 한 지휘자는 이제껏 한 명도 없었어요.”
이 클라리넷 주문은 몇 가지 포석이 깔린 주문이다. 마에스트로는 지휘봉을 쳐다보지 말고 클라리넷 소리를 들으라고 주문했다. 이것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오케스트라에서 두가지 이상에 신경 쓰면 주위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휘자가 핵심으로 파악한 클라리넷에 집중하면 그것이 중심으로 작용해주기 때문에 지휘봉을 통해 중심을 두 곳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추가된다. 나아가 이런 식의 의견 전달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연주상황에서 자칫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 지휘자의 지시를 명료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단원들에게 자율적인 해석의 여지를 준다. 그런 자발적 참여와 긴장감을 통해 선율은 또다시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기 때문에 갈수록 신비롭고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클래식 리더십은 그 다음 만남에서 플로flow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돌 건네기 놀이rock game’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돌을 왼쪽으로 돌리는 게임으로서 흐름이 끊어지면 어떤 한 사람 앞에 돌이 수북히 쌓이게 되고 그 사람이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마에스트로는 “연주자들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연주가 소리의 파동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파동이 연주를 이끈다고 느낄 정도”라며 플로를 “집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력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 일정한 시간 동안 매우 분주하게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파트가 있는 반면 어떤 파트는 최대한 느리게 따라가야 하는 오케스트라에서 플로는 “연주자들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 범위를 넓게 가지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생겨나게 된다. 마에스트로는 화자에게 충고한다. “당신이 개인 한 사람에게 25가지의 세부 사항을 수정해주는 것보다 단원들이 스스로 플로를 느끼도록 하는 게 연주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 크답니다”라고 말이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서 탈피하라
이 책은 이와같은 방식으로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간다. 중반 이후에는 바이올린 주자 뒤에서만 리허설을 듣던 화자가 첼로, 호른, 지휘대의 앞과 뒤 쪽으로 자리를 이동해가며 소리의 차이를 경험하는 장면, 마에스트로가 친구가 있는 음악학교의 지휘수업에 특강을 하러 갔을 때 따라간 화자가 4명의 학생 지휘자의 연주를 마에스트로와 함께 듣고, 거기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단원들의 음악을 듣지 않는 지휘자” “몸을 과장되게 흔들고 지휘봉의 움직임을 크게 해서 위압감을 주는 지휘자”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해서 기계적인 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 “현재에 안주해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지휘자” 등을 깨닫게 되고, 이것이 오케스트라를 어떤 식으로 망쳐놓는지를 실감나게 경험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뛰어난 CEO들이 흔히 채택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의 문제점,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는 것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화자가 맡은 회사의 팀장급 리더들의 수련회에서 오케스트라가 초대되어 연주를 한다. 이 장면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마에스트로는 팀별로 뭉쳐다니던 회사 구성원들을 떨어뜨려 앉게 하고, 오케스트라가 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수들을 보여준 후, 그것이 극복된 모습을 곧이어 보여줌으로써 청중들의 놀라운 인식변화를 이끌어낸다.
음악과 회사 경영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분야로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일하고,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한 인간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같지 않은가.
이 책은 오케스트라를 최고로 만드는 데 공헌하는 기술과 오케스트라의 그것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오케스트라라는 놀라운 시청각 교재가 난관에 부딪힌 기업경영에 어떤 혁신의 숨결을 불러넣어줄 수 있는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팀워크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능력, 효과적이면서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소통 능력, 여러 직위에서의 리더십 발휘 능력, 조직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 등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