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표적 아동·청소년 문학상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 수상작!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스페인의 수학자이자 아동·청소년 문학가인 카를로 프라베티의 2007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 수상작이다.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아동·청소년 문학상으로, 심사위원단은 『책을 처방해드립니다』에 대상을 수여하면서 “아직도 문학수상작에 놀랄 여지가 남아 있다니!”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학자이자 작가라는 흔치 않은 이력의 카를로 프라베티는, 톡톡 튀는 문학적 상상력과 흥미진진한 논리게임을 미스터리라는 형식 안에 버무려 이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새로운 책읽기를 제시하고 문학 읽기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지만, 이런 주제를 결코 진부하거나 교조적으로 풀어가지 않는다. 이 소설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야기 읽는 즐거움’으로 독자를 매혹한다. 익살맞은 인물들과 독자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배반하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사이사이 포진해 있는 논리게임과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과의 만남은 ‘독서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책읽기를 놀이가 아닌 의무로 만든 기성세대의 책읽기에 크게 한 방을 먹인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책읽기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극복하고 즐거운 게임처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적인 보약’ 한 첩이 될 것이다.
“맙소사! 뭐 이런 끝내주는 집안이 다 있어?”
이야기는 빈집털이범 루크레시오의 ‘절도 계획’에서 시작된다. 범행을 공모한 수프가 바람맞힌 덕분(?)에 수상해 보이는 저택에 혼자 숨어들게 된 루크레시오는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대머리 칼비노와 마주친다. 어리숙한 루크레시오와는 반대로 똑 부러지고 냉소적인 칼비나는 협상안을 제시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부모가 없는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감옥행이 두려운 루크레시오는 칼비노의 협박에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머리를 빡빡 밀고 검은 옷을 입고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그날부터 루크레시오에게 알쏭달쏭하고 기이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그는 칼비노의 손에 이끌려 도서관 겸 정신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는 자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더 나아가 문학작품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들이 모여 있다(함께 간 칼비노는 그곳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통한다). 루크레시오는 자신이『보물섬』의 실버 선장이라고 생각하는 배관공과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 ‘나무 위의 남작’을 만나고, 약 대신 책을 처방해주는 서점-약국에 방문해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책을 처방받는 기이한 장면을 보고, 텅 빈 스크린을 응시하며 읽은 책의 장면을 상상해 스스로 영상화시키는 ‘꿈 테라피’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루크레시오는 수상한 칼비노 가의 비밀도 서서히 밝히기 시작한다. (아니, 루크레시오가 원하지도 않는데 그들의 비밀이 그의 앞에 드러난다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칼비노의 명령으로 무시무시한 늑대처럼 생긴 개를 산책시키다 만난 ‘거인 난쟁이’ 리쿠로와 동료 도둑 수프와 힘을 합쳐, 루크레시오는 ‘죽은 듯한데 또 살아 있는 것도 같은’ 칼비노 부모님의 정체를 용감하게 밝혀나가는데……
아빠를 엄마로 만들고 죽은 사람도 일으켜 세우는 마법 같은 문학적 상상력!
“나는 실버 선장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네. 전부 다. 왜냐하면 실버 선장은 『보물섬』에 씌어 있는 그대로만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내 가슴속에 모두 새겨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렇지만 책에 나온 실버 선장의 모험을 당신이 실제로 경험하지는 않잖아요.”
“안 한다고? 그걸 안 해본 사람은 책에 나온 실버 선장이지. 책에 적힌 실버 선장은 종이 위에 일정한 규칙으로 배열된 무수한 글자에 불과해. 그 무수한 글자들을 하나의 인물로 재탄생시킨 건 나야. 독자인 나.” _48쪽에서
누구든 ‘내 인생의 책’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삶의 결정적 순간에 만나는 한 권의, 아니 여러 권의 책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다. 그렇게 문학작품과 독자의 관계는 특별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흰 종이에 나열된 문자의 조합일 뿐일 수도 있을 책을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며, 텍스트 안에 갇힌 인물들을 생생히 되살리는 것도 읽는 이의 몫이다. 루크레시오가 만난 실버 선장은 이런 독자의 능동적인 역할을 확인시켜주는 인물이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 환자들과 똑같이 행동해요. 특정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모험을 재현하지요. 이게 당신이 말한 대로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에서 스스로를 멀어지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_56쪽에서
칼비나의 손에 이끌려 루크레시오가 방문하는 서점-약국은 독서 행위가 즐거운 오락이나 지식의 보고일 뿐 아니라, 영혼을 치유하고 현실세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책 속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책 속의 세계를 거울삼아 독자는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다. 독서란 실제 인간은 모두 다 경험하지 못하는 수많은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이토록 명쾌하게 알려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책을 읽을 동안에 비해서 상상력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영화는 다 만들어진 완제품을 제공하거든요. 등장인물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행동을 보여주죠……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말이에요, 당신 눈앞에 조그만 검정색 부호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을 뿐이에요. 스무 개 남짓의 문자들이 쉬지 않고 배열되어 있을 뿐이죠(이 환상적인 존재들이 바로 단어예요), 이렇게 많지도 않은 자료들로 당신은 머릿속에 상상과 생각을 통해 완전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우리가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이 놀라운 작업을 실현하는 거죠. 이 멋진 훈련이 우리를 단련시키고, 또 내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거예요……” _63쪽에서
텅 빈 스크린을 응시하며 책의 내용을 영화처럼 상상해내는 ‘꿈 테라피’에 참가하게 된 루크레시오에게 도서관 관장 에멜리나가 한 말이다. 영상언어에 밀려 구닥다리로 취급받는 활자언어의 힘과 문학적 상상력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경계 없는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매번 새롭게 상상하고 감동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책읽기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대머리 칼비노 Vs. 도둑 루크레시오의 기막힌 논리 배틀!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칼비노가 물었다.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뭐가 됐든지 간에 두 개가 있으면 그중 하나만 맞는 거야. 이것 아니면 저것, 둘 다 아니면 다른 것.”
루크레시오가 단언하자 에멜리나가 끼어들며 말했다.
“선생님은 한 가지 가능성을 잊고 계시는군요. 한꺼번에 둘 다 될 수도 있잖아요.” _32~33쪽에서
칼비노 때문에 황당한 사건을 거듭 겪게 된 루크레시오는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논리에 어리둥절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외친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거야, 저거야?” 하지만 차츰 루크레시오도 세상 모든 것이 이분법적 사고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획일화된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 삶이 무색무취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아이 칼비노의 자유로운 논리에 백전백패하는 어리숙한 좀도둑 루크레시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야말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총 20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의 각 장의 제목들 역시 흥미롭다. ‘남자애야, 여자애야?’ ‘재단사야, 제본사야?’ ‘죽은 거야, 산 거야?’ ‘플루트야, 몽둥이야?’처럼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던져줌으로써 작가는 호기심에 미끼를 던지는 미스터리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분명히 냉동고에 시체가 있었는데 다시 와보니 그냥 평범한 식품 저장실이질 않나, 죽은 줄 알았던 칼비노의 엄마가 멀쩡히 살아 나타나질 않나, 옷장 안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질 않나…… 어수룩한 도둑 루크레시오의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쿵쾅거린다. 하지만 그런 루크레시오의 애타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독자들은 궁금함에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칼비노 가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은 바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나서야 자신의 추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해외 언론 리뷰
기상천외한 상황과 인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책!
수수께끼를 취미로 삼는 수학자의 소설이기 때문일까? _ 바벨리아 Babelia
독자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놀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놀도록 자극하는 지적인 책.
_‘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 심사평.
유머감각과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 끊임없는 논리 게임을 통해 독자의 지성을 강화시킨다. _테라 Terra
카를로 프라베티 Carlo Frabetti
194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스페인으로 옮겨온 이후 계속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뉴욕 과학아카데미의 수학자이자 50여 권이 넘는 문학작품을 쓴 작가이기도 한 그는 과학과 아동 · 청소년 문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1998년 『위대한 놀이』로 하엔 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이 망할 놈의 수학』『가장 강력한 마법』『무시무시한 천사』『채식주의 드라큘라』와, 난쟁이 울리코의 이야기를 다룬 ‘울리코 시리즈’ 등의 작품이 있다.
일러스트 박혜림
이화여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8년 SSE프로젝트 ‘바디 스내처’ 온라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Ouip 크리스마스를 만나다’ 아트토이 커스텀 전에 참가했다. 『심장의 시계장치』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옮긴이 김민숙
경희대학교 스페인어학과를 졸업했다. 스페인 살라망카와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했고,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를 최우수로 수료했다. 어릴 적 자신이 여러 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내 모습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림을 받을까 속으로만 킬킬대며 공상했다. 바로 그런 생각을 소설로 풀어낸 작가 보르헤스와 운명적으로 만난 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통통 튀는 스페인어권 문학에 폭 빠져 아직도 스페인어와 뜨겁게 열애중이다.
* 담당편집: 해외문학 3팀 허주미(031-955-2657, magnolier@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