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실상과 허상에 관한 놀라운 보고서!
천재는 죽었다! 이 선언적인 문구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천재의 개념 자체가 신화며 허구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특히 현대가 천재의 생존조건으로서 매우 부적절하다는 의미이다.
단언하자면 ‘탁월한 인간’,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의 천재는 휴머니즘의 오랜 역사가 잉태한 야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르네상스로부터 낭만주의에 이르는 동안 심화되어온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낳은 하나의 발명이었던 셈이다.
―「여는 글」에서
이 책은 현재 활발한 미술비평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은이가 ‘천재’의 신화를 해부한 야심찬 기획물이다.
오래 전, 니체가 ‘신은 죽었다’며 사망진단서를 발부한 뒤, 지은이는 21세기에 ‘천재는 죽었다’는 사망진단서를 발부한다. 이는 천재라는 신화의 망토를 벗겨서, 현대사회에서 천재의 의미와 실상을 직시해보려는 의욕적인 시도의 일환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소위 천재 예술가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피카소, 요셉 보이스, 달리, 뒤샹, 백남준 등이 어떻게 천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덤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또한 매스미디어 같은 현대 사회의 이기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 즉 천재를 만들고 키우는 인큐베이터로서의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조명이기도 하다.
먼저 천재의 생사를 논하기 이전에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소위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며 현대 예술로 불리는 것을 살펴보면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주절대기’ ‘홀딱 벗고 첼로 켜기’ ‘예수 상을 오줌통에 빠트리기’ ‘괴물 흉내내기’ ‘자신의 살을 난자해 전시하기’ ‘살 속에 이물질 삽입하기’ ‘이유 없이 조국의 국기 태우기’ 등이다.
천재의 자리에 등극하기 위해서라면 예술가들은 더욱 극단적인 방법을 서슴지 않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야만 언론과 사회가 그들을 천재로 추앙하며 요란하게 떠들어준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지은이는 “무엇보다 극악한 것은 이 소동이라고 밖엔 달리 부를 길 없는 것들을 지식과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거짓 선동들”이라고 지적한다. 그 거짓 선동에 이끌린 수많은 대중이 그렇게 탄생한 천재에게 환호를 보내고 진정으로 탄복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속는 자들을 위한 천재?
천재의 존재, 그 허상과 실상에 대해 통찰하고 있는 이 책은 어느 누가 예술가 자신을 넘어서는 통찰을 시민의 면전에 내놓을 것이며, 창조적 생산의 역사는 어떻게 되고, 또한 반강제적으로 권장되거나 천박한 상거래를 통해서 겨우 연명하는 것들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들을 던지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지은이는 논점에 접근하려면 주관심사를 “천재가 만들어놓은 것들이 아니라, 천재를 만드는 조건”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이 시대는 ‘천재 없는’ 시대인가. 한때 역사와 정신의 중심이었던 천재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천재는 다만 ‘오랜 동안 체계가 만들어온 물신이고, 이미지이며 허상’일 뿐이다. 그 거짓 천재들에 눈속임 당하는 처지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천재를 “실존의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 그리고 필요가 아니라 욕망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재로 생산된 “예술가 개인의 물신화가 예술 전체에 대한 통찰을 방해하면서 헛된 미몽(迷夢)을 조장”하는 데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대의 예술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안목을 가진 척하지만 실은 ‘잘 속는 사람들의 현실’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음을 이 책은 경고하고 있다.
재의 탄생, 그리고 죽음!
그렇다면 오늘날 자신의 몸을 난자하여 전시하는 예술가들은 ‘탁월한 인간’,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는가? ‘물론 범상함과 구분되는 재능의 존재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재기(才氣)라 할 것들의 존재도 인정할 수 있다.’ 천재의 재능은 신화화된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되고 현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재기가 부각되고 있음을 직시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기를 천재의 아우라로 둔갑시키는 체계에 지은이는 주목한다.
지은이는 예술 천재들을 수면 위로 부상하게 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이론가와 비평가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천재를 복권 취급한다”고 말한다. 이유인즉 “그들은 모두 자신이 먼저 천재를 알아보기 위해 애쓰는 한편, 천재를 알아모시는 대열에서 소외될까봐 두려워한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안목을 나누어 가지며 오로지 동의와 찬사의 게임만 생산해내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소수의 회의론자들이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전반적인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명료하게 제기하고자 한 문제제기는 예술을 넘어 사회의 체계와 예술의 존재 전반에 걸친 규명으로 연장된다. 천재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시장의 유통구조가 원활히 돌아가는 예술의 오랜 관습과 시장 체제는 이 시대의 예술가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다. 천재라는 월계관을 쓰기 위해서는 천재 생산 시스템에 적극 가담할 뿐 아니라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뤄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은 열정과 시간을 작품에 쏟는 것보다는 작품 홍보를 위한 팜플렛을 만들거나, 언론 매체 기자들과 안면을 익히는 데, 큐레이터와 친분을 쌓아 가는 데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러한 새로운 임무를 재빠르게 수행한 예술가들이 ‘천재’의 탑에 좀더 쉽게 올라가는 결과가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묵과할 수 없다.
지은이는 “우리는 더이상 매순간 선동하기 위해 불려 나오곤 하는 낡은 이념에 지나지 않는, 그런 천재를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것이 기다림 자체의 포기로까지 전이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공복감과 그 출처를 동시에 은폐하는 공허하고 부조리한 기다림이지, 결코 기다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 책이 “천재 숭배의 오랜 관습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거짓들을 목격하고, 특히 ‘천재성’을 고사시키는 현대적 조건들, 대중적이고 세속적이며 시장적인 체계의 진실들을 밝히는데 유효한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