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초월한 사랑학 개론!

만화가 강철수의 역작 『발바리의 추억』(전9권)이 10여 년 만에 새옷을 갈아입고 출간됐다.

철부지 달호의 젊은날의 초상을 그린 이 작품은, 88년 발표 당시부터 발바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젊은이들의 연애 심리를 족집게처럼 집어낸 세대를 초월한 사랑학 개론으로 호평받으며, 연극, 영화 등 다른 장르로 계속 리바이벌되고 있다. 최근에는 TV에서 「헬로! 발바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사랑에 관한, 젊음에 관한, 여자에 대한, 남자에 대한, 섹스와 결혼에 대한 촌철살인의 재치와 유머와 잠언들이 가득한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속성 사랑 방식에 물들어 있는 요즘 젊은 세대들한테 멋진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줄 것이다. 만화사적으로도 70년대부터 일어난 청년문화와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사랑에 관한 열두 개의 삽화!
「사랑의 낙서」(70년대), 「발바리의 추억」(80년대), 「돈아, 돈아, 돈아」(90년대)로 이어지는 발바리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사랑 풍속도를 유형별로 만나볼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12명의 여자를 통해 살펴본 12개의 연애에 관한 삽화이다.

가로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청년 발바리. 땅부자 부모를 두고 대학 문턱도 무난히 통과한 행운아(?) 김달호의 주요 일과는 음식하고 예쁜 여자를 보거든 결코 주저하지 마라! 라는 그의 지론 1호에 따라 여자 꽁무니 쫓아다니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쫓아가서 꼬인 미나, 옆집 꼬마 주희의 이모, 발바리를 짝사랑하던 대학 후배가 소개해준 미스박,카페 목마의 여주인이 소개해준 잘나가는 룸살롱 매미 오민숙, 동생 친구의 소개로 만난 참한 아가씨지만 처녀를 의심해 결국 헤어진 윤미희, 도봉산에 자살하러 올라갔다가 만난 염 아무개…… 발바리가 여자를 만나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여자들 또한, 애인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복수심, 첫 순정, 잘사는 발바리 집안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려는 흑심, 쾌락에 젖은 남자를 쾌락으로 망하게 하려는 마음, 대학 때부터 짝사랑 등, 제각각의 이유로 발바리를 만나 사랑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어떤 여자도 발바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쫓아가다 보면, 김달호의 모습에서 때로는 그 열두 여자들의 모습에서 독자는 자신 속에 깃들인 원초적 욕망의 또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세이 형식의 스토리 전개, 살아 있는 사랑의 잠언, 심플하고 정감어린 그림체
"사람들은 왜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오지 같은 데를 미치도록 가보고 싶어하는가? 그건 바로 그 속에 미답의 신비라는 것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 아무도 밟아본 적이 없는 새 땅의 신비"

"거 알고 보니 여자는 꼬시고 엉기고 사기치고 윽박지른다고 뭔 일이 되는 게 아니더구만! 태양이 행인의 저고리를 벗기듯 봄비가 들풀을 어루만지듯 여자란 진실로 사랑해주고 거짓 없이 위해주니까 그만 제풀에 엉겨붙더구만."

작품 곳곳에서 마주치는 위와 같은 잠언과 에세이 형식의 스토리 전개는 다른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만화의 독특함이다. 강철수의 탁월한 문장력까지 가미되어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게다가 한때 가로줄무늬 티셔츠를 크게 유행시켰던 발바리 패션처럼, 간결한 선과 힘있는 펜터치의 그림체에서도 독자들은 정겨움과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마치 추억의 영화 한편을 꺼내 보며 지금의 자신을 돌이켜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