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친이 표현했듯, 교양소설은 두 사회계급-부르주아와 귀족-의 전환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이야기이며, 칩사이드에서 펨벌리로 가는 엘리자베스 베넷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스탕달의 쥘리앵 이야기이며, 발자크의 뤼시앵에 관한 이야기이고, 제인 에어의 이야기이자 디킨스와 엘리엇 소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문에서‘젊음’은 처음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발견’되었다. ‘성년이 아님’이라는 의미에서의 젊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 혹은 ‘모든 것의 가능태’로서의 젊음은 18세기 유럽, 근대의 시작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고대 영웅 설화의 주인공들은 성숙한 성인 남자들이었다. 젊음을 앞세우고 문학 텍스트의 전면에 나선 최초의 주인공이 햄릿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늘 그를 ‘고뇌하는 청년’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텍스트에 의하면 햄릿은 서른 살이었다. 르네상스의 기준으로 보아 젊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는 햄릿을 주인공으로 선택하면서 그의 나이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등장은 18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문학의 가장 큰 주류를 형성한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형성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대혁명이 잉태한 뿌리 깊은 나무, 고전적 교양소설 교양소설은 괴테의 고전적 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로부터 시작된다. 영문학자이자 비교문학자인 프랑코 모레티에 따르면 교양소설의 주인공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 사회가 부르주아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사이에 주도적 세력이 된 일군의 문화 엘리트, 즉, 교양 있는 부르주아들이다. 교육이나 ‘입사’를 통해 구시대적 교양의 세례를 받은 이 부르주아 주인공들은 결국 귀족 사회가 일군 옛 형식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하거나, 혹은 귀족 사회와 부르주아 사회 모두와 결별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들의 젊음은 교양소설의 근간을 이룬 또 하나의 중요 요소, 즉 근대의 도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젊음은, 근대의 역동성과 불안정함을 반영하는 가장 효과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교양소설의 주인공들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계급을 뛰어넘는 사회적 이동성, 정치성과 현실감각의 내면화, 그리고 무정형성. 이들이 필연적으로 추구하게 마련인 당대의 행복과 자유, 성숙과 젊음, 개인성과 사회적 정당성의 개념은 각각 서로 대치되었다. 젊은 주인공들은 상반된 가치 사이의 모순을 껴안아야 했으며, 이러한 모순의 ‘내면화’를 통해 사회화, 혹은 ‘해피엔드’를 이루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이러한 고전적 교양소설의 법칙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고전적 교양소설이다. 이러한 고전적 교양소설에서 주인공들의‘일’이란 자본주의적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미적 조화의 영역이자 일상의 예술화, 즉 딜레탕티슴이었다. 따라서 교양소설이 프랑스 대혁명의 소산이었음에도, 이들의 언어는 혁명의 언어와 정반대의 것이었다. 모레티에 따르면, 이들의 언어는 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것이었고, 이는 또한 19세기 전반을 주도할 리얼리즘 소설의 수사학이기도 했다. 이렇듯 모레티에게 정치는 언어만큼이나 중요하고, 또한 언어의 형식은 역사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는 소설의 형식을 통해 역사를 보고, 또한 역사 속에서 형식의 발달, 소멸의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과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교양소설은 큰 변화를 겪는다. 스탕달의 『적과 흑』 『파르마의 수도원』, 그리고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이 새로운 시대를 대변한 작품들로, 앞 세대의 교양소설들과 달리 개인의 성장을 공공의 영역에서 과감히 전개한다. 허구의 주인공들과 정치사가 결합된 것이다. 괴테나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들과 달리, 나폴레옹의 영웅적 선례를 보았고 이를 동경해온 세대인 쥘리앵 소렐이나 오네긴에게 성장은 위대한 개인의 승리를 의미했다. 빌헬름 마이스터나 엘리자베스 베넷이 추구했던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의 조화로운 통합은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숨긴, 닫힌 인간이 된다. 그리고 인물의 내면과 외면이 다른 데서 생겨난 이러한 모순은 이들 주인공에게 치명적인 매혹을 부여한다. 이들은 주인공감으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에 서스펜스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볼 때 서사 구조에 매우 유리한 인물이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또한 이들은 교양소설에 자기기만과 성공, 그리고 기회주의라는 새로운 요소를 불러들인다. 타협을 거부하는 이들의 극단과 숙명론은 등장인물들을 극적인 죽음으로 몰아간다. 스탕달의 다음 세대인 발자크와 플로베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있어 이제 성공은 가치 판단에 속하지 않는, 당연히 추구해야 할 바로 나타난다.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와 『잃어버린 환상』의 뤼시앵 드 뤼방프레, 『감정교육』의 프레데릭 모로와 벨 아미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19세기 자본주의의 만화경 같은 풍경 속에서 성공을 향해 어지럽게 펼쳐진다. 이에 따라 루공 마카르 총서처럼 수많은 인물들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거대 서사의 등장과 중층결정의 플롯도 필연적이었다. 서사의 영역은 대도시, 특히 파리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예측불가능성을 따라 끝없이 팽창해갔다. 이들 주인공들은 경쟁의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인다. 경제적 현실주의에 충실한 리얼리즘, 혹은 자연주의 교양소설들은 사건을 초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을 몰개성적으로 만들었다. 전 세대가 이룬 모든 것이 해체되어가는 풍경 속에서 이 주인공들은 고전 교양소설 주인공들의 희미한 유령과도 같다. 주인공들의 젊음은 성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멸스럽게도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린다. 그리하여 대륙의 고전적 교양소설은 『감정교육』의 프레데릭 모로에게서 끝이 난다. 동화소설과 조지 엘리엇의 성숙, 그리고 교양소설의 죽은 가지 영국의 사정은 대륙과는 좀 다르다. 대혁명과 사회 격동을 직접 겪지 않았던 영국의 교양소설들은 안정된 체계와 가치 속에서 동화적 요소를 지닌 이야기들을 전개시켜나갔다. 디킨스 소설의 주인공들과 제인 에어, 톰 존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쥘리앵이나 빌헬름처럼 내면에 나름의 비범함을 지닌 풍운아적 인물이 아닌 극히 평범한 중산 계급의 인물들로, 순진한 도덕 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계급의 둘레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안정된 체계 안에서 성장한 영국의 주인공들은 대륙에서 젊음이 지녔던 가치들-불확실함, 사회적 이동성, 그리고 ‘자유’-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영국적 전통을 바꿔놓았던 이는 조지 엘리엇으로, 그녀는 영국의 동화적 모델을 떨쳐버리고 대륙 교양소설의 이슈를 다루었다. 엘리엇 소설의 지적인 주인공들은 강렬한 개성을 지녔고,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는 이단아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정체성이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으며, 이는 빌헬름 마이스터가 추구했던 바 그대로였다. 조지 엘리엇의 소설이 이전과 다른 것은 이러한 성장이 오로지 사회적 진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며, 이점에서 그녀의 소설들은 대단히 혁명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쥘리앵 소렐이나 혹은 프레데릭 모로처럼 유혹과 기회에 몸을 던지지 않고, 결국은 조용한 지방 마을에서 생애를 마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미 자본주의 세계는 교양소설의 필터로 읽어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양소설의 시대는 20세기에 몇 가지의 중요한 흔적만을 남긴 채, 종말을 고하게 된다. 모레티가 부록에서 다루고 있는 19세기 후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몇몇 주요 소설들은 더 이상 교양소설의 특질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콘래드의 소설들에서 주인공들은 퇴행과 외상, 균열에 시달린다. 성숙이나 성장이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레티는 이들을 교양소설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맨끝에 매달린 죽은 나뭇가지라 칭한다. 형식을 통해 읽는 역사, 그리고 역사가 불러낸 형식 모레티의 초기 저서인 『세상의 이치』는 『근대의 서사시』나 『유럽의 지도 1800~1900』과 같은 방대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유럽 근대 소설을 아우르는 야심만만한 궤적을 통해 모레티의 이후 행보를 짐작케 한다. 모레티는 문학의 형식이 미학적 계기일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필수조건이라는,‘형식의 자율성’을 논하고 있으며, 그런 전제를 통해 유럽 근대사의 격변과 교양소설의 변천을 동시에 짚어나간다. 이는 텍스트의 신성함을 무기로 하여 그외의 논의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나, 혹은 문학이 권력에 어떻게 반응하고 제휴했는가에만 골몰하는 입장 양쪽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획기적 연구방식이다. 그가 파악한 교양소설은 귀족 사회에서 부르주아 사회로, 혹은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에, 서로 대립되는 이
제인 오스틴과 발자크, 디킨스, 조지 엘리엇, 괴테와 스탕달의 소설 속에 재현된 젊음을 예리하게 분석한 비평서.
-인디펜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