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경상도 사나이’의 가족 사랑과 세상살이
경상북도 영덕에 사는 한 평범한 40대 가장의 일상과 가족 사랑을 담은 산문집 『아빠, 죽으면 때릴 거야』가 출간되었다. 경남 산청에서 나고 진주에서 자란 ‘오리지널’ 경상도 남자인 저자는 한때 교사로 재직했으나, 소아 천식으로 고생하는 첫아이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 모든 일을 작파하고 육아와 살림을 맡아 하고 있다. 알쿵달쿵 자식 키우는 재미, 소소한 살림 이야기, 정겨운 일상 등을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리던 것이 인기를 얻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총 208페이지 분량의 이 산문집에는 짧지만 농도 짙은 사랑과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가 담긴 44편의 글이 실렸다. 전체 3부로 나뉜 책의 1부에는 자식 사랑 이야기, 2부에는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던 저자의 소년기, 3부에는 평범하지만 빛나는 일상의 단상을 담았다.
툭박진 사투리로 빚어낸 익살과 해학, 순간순간 빛나는 일상의 아름다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무심한 아버지와 계모 아래에서 외롭게 자란 그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동경이 남달랐다. 늦게 얻은 두 딸과 아내로 이루어진 가족에 대한 사랑 역시 유별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천식이 심해 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큰아이를 간병하면서 겪은 이야기, 철마다 겪는 아이의 소풍이나 운동회 이야기, 늦둥이 키우는 이야기와 소소한 살림 이야기 등, 읽다보면 웃음도 나고 유별난 가족 사랑에 슬그머니 부러워지기도 하는 시시콜콜한 가정사가 책의 한 축을 이룬다.
한창 산에 빠져 지리산에 오르던 이야기, 학창 시절 특이하고 멋있었던 선생님 이야기, 누나를 기다리면서 학교 앞에서 사먹던 칡뿌리 이야기, 비 오는 날의 날궂이 이야기, 동네 사람들 따라 오징어잡이 나간 이야기…… 경상도 사투리로 툭툭 던지듯 풀어놓는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 공감을 자아낸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글들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식 사랑이 촘촘히 짜여 있고, 미처 치유되지 않고 옹이진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드러나 마음이 애틋해진다. 먼저 가신 부모님을 떠올리거나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는 또 어쩔 수 없이 함께 애상에 젖게 된다.
구수한 손맛, 칼칼한 말맛
그의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식 이야기이다. 일제 때, 잡는 족족 세금으로 걷어가는 게 억울해 어부들이 내다버린 꽁치가 겨울을 지나면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과메기가 되었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 웃음짓게 만드는가 하면, 대학 시절 진주 철구다리 아래서 먹던 장어구이를 묘사하는 대목에선 함께 끼어앉아 양념 발라 숯불에 두 번 구운 매콤한 장어 한 점 얻어먹고 싶어진다. 비 오는 날 조갯살 다져넣고 정구지에 매운 고추 썰어넣어 전을 부치거나 싱싱한 오징어 회쳐서 칼칼한 쪽파, 마늘 넣고 시원한 배 채썰어 넣고 뚝딱 물회를 만들거나 큼큼하고 구수한 된장을 직접 담가먹는 이야기까지 가면 이 남자, 보통이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이 범상치 않은 경상도 남자가 풀어내는 일상 이야기를 소설가 임순구는 툭박진 뚝배기에 담긴 구수한 청국장 맛이나, 웅숭깊은 첼로의 선율에 비유한다.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추운 계절 아랫목에 배 깔고 읽기 좋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정제호만의 독특한 산문집이다.
정제호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이변이었고 이후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가 심술기 만만치 않은 깐깐한 중년에서부터 장난기 그득한 동네 아저씨로, 재기 넘치는 문사로 바뀌어 가는 동안 껍질이 여러 차례 벗겨지고 또 벗겨졌어도 속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정제호의 저변에 깔린 기본 바탕은 아마도 처절하리만큼 지독한 사랑일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 정제호의 글은 영혼이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 데서 나온다고 하는 글들은 대개가 알아먹기 힘든 사변 아니면 알맹이 없이 수식만 현란한 껍데기이기가 일쑤다. 정제호의 글은 있는 그대로의, 때로는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일상에서 나온다. 그는 본 대로 느낀 대로를 과장하거나 요란 떨지 않고 베갯머리 이야기처럼 서술하면서 때로는 읽는 이의 눈물을 쏙 빼놓기도 하고 때로는 요절복통을 하게도 만든다.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에 그만큼 더 공감할 수 있고 감동과 즐거움도 그만큼 더 큰 것이다. 황보석(전문 번역가)
정제호의 글에는 삶이 그대로 녹아 있어 때로는 벙그레, 웃음을 물다가 콧날이 시큰해지거나 가슴이 뻐근해지기도 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드라마틱한 요소는 없지만 삶의 진실이 묻어나는 일상이 시종 잔잔하게 감동을 불러온다. 툭박진 경상도 사투리에 담긴 익살과 해학으로 제법 심각한 상황을 적은 글 너머에서조차 유머러스한 면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쿡쿡 웃다보면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유머가 고단한 삶을 감아 넘기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쓰고 남은 자투리 헝겊이야 귀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이지만 모아두었다가 보자기를 만들면 색색의 천 조각들이 오히려 아름답기 그지없는 법. 그의 글은 그러한 조각보를 떠올리게 한다. 임순구(소설가)
* 초판발행 | 2005년 1월 14일
* ISBN | 89-8281-928-2 03810
* 153*210 | 208쪽 | 값 8,000원
* 책임편집 | 김송은(031-95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