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선보인 이래, 많은 독자들이 ´지적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열광했다. 고금(古今)의 현란한 지식과 긴장감 있는 구성, 허구와 실제를 넘나드는 대담한 서사에 대한 독자들의 선호는 최근 『다빈치 코드』의 성공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에코 학파´라는 말이 생길 만큼 움베르토 에코의 영향을 받은 작가군(『스키피오의 꿈』의 이언 피어스, 『단테 클럽』의 메튜 펄,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 등)이 등장했지만, ´청출어람´한 후계자는 없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그런데 『임프리마투르』(Imprimatur란 ´그것이 인쇄되게 하라´ 뜻으로, 로마 가톨릭 주교가 인쇄물의 내용이 가톨릭 신앙과 윤리에 위배됨이 없음을 확인하고 내리는 인쇄 허가이다)라는 놀라운 데뷔작 하나로 ´에코의 적자(嫡子)´라고 평가받은 기이한 2인조가 나타났다. 소설 한 권을 쓰기 위하여 10년이라는 세월을 바티칸의 고문서실과 도서관에서 보냈다는 이들은 고전문헌학과 종교사를 전공한 리타 모날디와 17세기 바로크 음악을 전공한 프란체스코 소르티라는 부부 소설가이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 『임프리마투르』와 궤를 같이 하는 세 편의 소설 『세크레툼』 『베리타스』 『미스테리움』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작품들은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네 편을 연이어 모으면 연작이 된다고 한다. 이 네 작품의 라틴어 제목 IMPRIMATUR SECRETUM VERITAS MYSTERIUM를 번역하면 ´모든 비밀은 공표될 수 있지만,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뜻이다.
『임프리마투르』는 2002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캐나다에 번역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 작품은 절대왕정의 치세가 극에 달한 17세기 말 유럽을 무대로 음악, 미술, 의학, 점성술 등 당대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스릴러물이다.
절대왕정 시대 유럽을 무대로 펼쳐지는 열정 넘치는 역사 추리소설
소설의 문을 여는 것은 바티칸 시성성(諡聖省)에 보내는 한 주교의 편지이다. 아직 출판된 바 없는 원고를 가지고 있다는 주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고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누를 끼칠까 두려워한다. 그는 17세기 말 로마의 한 여관에서 아흐레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이 회고록을 시성성에 보내며 교황이 이 원고에 ´임프리마투르´를 허할 것인지 판단해줄 것을 청한다.
회고록은 절대왕정 시대, 기독교 세계에 대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위협이 극에 달했을 무렵 로마의 한 여관에서 정체불명의 노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노인이 죽자, 당국은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여관을 봉쇄한다. 그러나 부검 결과 밝혀진 남자의 사인은 독살. 그리고 이튿날, 여관 주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상을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이어서 영국에서 온 투숙객이 정말로 페스트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여관 안에는 빠른 속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투숙객들은 두려움에 빠진다. 투숙객 중 한 명인 미성의 카스트라토 멜라니 사제는 여관 사환에게 사건의 수수께끼를 함께 풀자고 제안하고, 그들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관과 연결된 지하통로로 내려간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유럽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와 음모와 배신의 얼굴이다. 죽은 노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사건의 무대가 로마의 조그만 여관에서 태양왕과 그의 재정총감이었던 니콜라 푸케 사이의 알력, 오렌지 공 윌리엄과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 사이의 은밀한 거래, 투르크 세력의 기독교 세계에 대한 위협 등 전 유럽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주인공의 숨가쁜 발걸음을 따라가던 독자들이 마침내 외면하고 싶은 진실과 맞닥뜨릴 때, 소설은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담고 있는 ´미래의 소설´
사환의 회고록을 소설로 가공한 액자구조를 취하고 있는 『임프리마투르』는 문학적 신비화를 통해 이야기의 진실성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강조하고 있다. 경험이 없고 배움에 목말라하는 젊은 청년(여관 사환)과 노련한 선배(멜라니 사제)라는 짝패가 엮어가는 이 이야기의 목적은 사환이 말하듯 ´진실이라는 미친 말의 갈기를 붙잡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임프리마투르』는 흔히 볼 수 있는 교훈적 오락물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흩뜨리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문학적 장치를 빌려쓰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이 사용하는 치밀하고 박진감 넘치는 구성과 방대한 디테일은 여타의 역사 추리물과 구별되는 『임프리마투르』만의 특장을 잘 보여준다.
『임프리마투르』가 가지고 있는 레퍼런스는 다양하다. 이 소설은 치밀하게 짜여진 추리소설이기도 하고, 한 소년이 시련을 겪으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빌둥스로만(성장소설)이기도 하며, 풍요롭고 화려한 이면에 한없이 뒤틀리고 기괴한 풍속이 판치던 바로크 시대를 그린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던 절대왕정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사회소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읽을 수 있는 『임프리마투르』는 소설에서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은 물론, 다양한 지식과 정보까지 얻길 원하는 새로운 독자들을 충족시켜줄 만한 ´미래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임프리마투르』에는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복자(福者) 품에 오른 인노켄티우스 11세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소설의 대담성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 서두에 등장하는 코모 주교의 모델이자 저자들과 잘 알고 지내는 한 신부는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 이탈리아에서 루마니아로 좌천되었으며, 『임프리마투르』를 소개한 이탈리아 몬다도리 출판사는 바티칸이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 때문에 출판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임프리마투르』
『임프리마투르』는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에 관한 소설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이 음악이기도 하거니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카스트라토 멜라니의 아리아와 드비제의 기타 선율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음악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할 정도로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열망에 보답이라도 하듯 모날디와 소르티는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사운드트랙에 담아 선사한다.
주제곡은 <신비한 방벽Les Barricades Mysterieuses>으로, 사운드트랙에만 여섯 개의 다른 버전으로 실렸다. 이 곡은 원래 프랑수아 쿠프랭(1680~1730)의 곡으로 알려진 론도인데, 저자들은 이 곡의 원작자가 지금은 거의 잊혀진 바로크시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체스코 코르베타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들은 마음에 드는 곡의 악보를 사보하던 시대에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연주하던 쿠프랭이 역시 궁정 연주자이자 코르베타의 제자였던 드비제―이 소설의 등장인물이기도 한―의 악보를 몰래 손에 넣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신비한 방벽>을 처음 들은 소설 속 화자인 여관 사환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화음"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내 귀는 일찍이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많은 음악학자들이 이 곡에 대하여 "그야말로 신비한 작품"이라고 말했으니, 이 곡이 가지는 힘은 가히 마성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세를 풍미한 루이지 로시의 음악 역시 매혹적이다. 소설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카스트라토 멜라니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아리아를 부르는데, 그 곡들은 모두 소설 속에서 멜라니의 스승으로 나오는 루이지 로시의 곡이다. 루이지 로시는 초기 바로크 시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꼽히면서, 특히 주옥과 같은 성악곡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멜라니 사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성악곡들을 직접 들으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그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그 밖에도 루이 14세 시대 최고의 음악가 륄뤼(1632~1687)의 샤콘과 아타나시우스 키르헤가 무도병(舞蹈病)을 치료하기 위해 작곡했다는 신비로운 곡 <타란텔라> 역시 빼어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앞으로 발표하게 될 4부작의 나머지 세 작품들(『세크레툼』 『베리타스』 『미스테리움』) 역시 사운드트랙과 함께 발표될 예정이라니 기대해봄직하다.
임프리마투르』가 탄생하기까지!
"모든 것은 사실이고 진실입니다. 오직 소설의 형식만이 우리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십 년간 집필에 매달렸습니다. 전 유럽을 뒤지며 자료를 수집하고 사라진 문헌들을 찾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지요."
▪멜라니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잊혀진 인물입니다. 몇몇 음악학자만 그를 알고 있지요. 그는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할 줄 알았던 첩자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그는 프롱드 난 때의 어린 루이 14세와 푸케를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물인가 보죠?
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에게 죄과를 돌렸
I M P R I M A T U R
S E C R E T U M
V E R I T A S
M Y S T E R I U M
모든 비밀은 공표할 수 있지만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