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밸브를 열고 세상과 만나다
나는 내 작품 속에서 매일 반복되어 때로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조금 뒤틀기, 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등을 시도했다. 그렇게 이끌다보니 참담한 일상도 참신하게 보여 생기를 되찾고 힘을 얻었다.(17쪽)
신현림에게 사진은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등불처럼 환히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외로움을 이기는 힘이 되어주는 무엇이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사소한 일상과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삶을 지탱하는 힘을 끌어낸다.
신현림은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이미 일상의 가장 소박하고 친밀한 사물과 공간과 행위에 있으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미 있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가장 하찮은 것이 가장 매혹적인 것임을 깨달으면 삶이 다시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상의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들을 잠시 불러세워 그 존재를 상기시켜준다. 아무도 없는 개펄에 점점이 찍힌 발자국들, 깨지고 금간 벽에 누군가 남긴 낙서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옷가지, 흰쌀밥에 눈물처럼 앉은 흑미. 감각의 밸브를 모두 열고 바라본 세상, 그녀의 시선이 가 닿아 사진에 담긴 이미지들에는 그래서 순간의 아름다움이 봉인되어 있다.
이러한 사진들은 또한 저자의 마음을 움직인 여러 시구절, 소설대목, 영화대사, 노래가사 등과 어우러지면서 더 큰 울림을 얻는다. 인디언 기도문, 오쇼 라즈니쉬의 잠언, 라파엘 알베르티·마거릿 애드우드의 시, 토니 모리슨·존 쿳시의 소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영화 〈연인〉의 대사, 쳇 베이커의 노래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던 그 순간의 마음결, 절절한 아픔, 찬란한 희열은 특유의 시적이고 감성적인 문체에 실려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마, 사랑을 꿈꾸는 당신
시시때때 얻는 깨달음이야말로 인생의 작은 기적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바람, 풍경, 함께 있는 사람들, 가을 저녁에 내리는 노을 등 삶의 소중한 순간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는 마음상태가 기적일지 모른다.(34쪽)
그리하여 늘 깨어 살며 앞과 뒤의 진실을 살피며, 내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리라. 어느 날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좀더 겸손해지고 깊어지는 인생을 느끼겠지.(96쪽)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보다 나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온갖 사물을 느끼고 기뻐하는 순간 나의 인생은 무척 향기로우리라.(93쪽)
눈부신 순간, 절정의 아름다움은 조금씩 바래지고 희미해져서 기어이 사라져버린다. 멀어지고 사라지고 변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인생의 갈피갈피가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채워져 있다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생의 찬란함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인 뜨거웠던 이삼십대를 지나,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인생을 관조하는 나이에 이르러 삶을 진정으로 긍정하고 찬미할 수 있게 된 저자가 "몸의 한 부분 마음 한 부분 신경을 쏟으면서 느끼고 간직하려고 애썼던" 사진과 글이기에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일까. 힘겹지만 그대로 살아볼 만한 것이 삶이며 절대로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사랑임을 나직하지만 힘있게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생활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에게 인생의 찬란함을, 삶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을 선사한다.
시인 신현림이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의 아프고 아름다운 풍경!
신현림의 카메라에 잡힌 사소한 대상, 사물, 풍경은 기억의 저장고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는 신경을 건드리고 추억을 건드리고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친숙하게 묘사된 이미지이지만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전혀 엉뚱한 맥락으로 서로 이어붙여져서 묘한 모습이 되었다. 구름과 발자국이 한데 어울렸고 누드와 덮개에 씌워진 자동차와 음식과 만발한 꽃이 서로 한자리에 놓여 있는 식이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의 방법을 통해서, 눈이 본 것을 단순히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이상하고 낯설고 기이하게 얽혀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니까 이 이미지들은 단지 그것 자체로 귀결되고 단락짓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것과 암묵적으로, 이상하게 얽혀 있거나 다른 어떤 것을 은근히 떠올려준다. 이는 꿈이나 무의식, 기억을 더듬게 하고 혹은 다중적으로 얽힌 이미지의 세계를 새삼 다시 보게 한다.
_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
그녀는 늘 ‘종횡무진’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시와 산문과 사진 장르만이 아니라 삶과 시간이란 장르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 전면적이고도 열렬한 에너지와, 보통은 에너지에 반비례하기 마련인 감수성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언제나 맹활약중이다. 미묘와 돌발, 그런 삶의 순간들을 끝없이 포착한 사진과 이 책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상 사람들이여, 신현림과 연애하시라.
_김경미(시인)
신현림
시인, 사진작가. 경기도 의왕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명대 디자인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희망의 누드』 『슬픔도 오리지널이 있다』, 사진 산문집 『빵은 유쾌하다』 『굿모닝레터』, 현대미술 에세이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박물관기행 산문집 『시간창고로 가는 길』 등이 있고, 『The Blue Day Book』 『사랑의 끝에서 나를 만나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04년 9월 24일 발행 *ISBN 89-8281-881-2 03810 *140*210/224쪽/값 12,000원 *담당편집: 황문정(031-955-8863) *갤러리 룩스(02-720-8488)
"그녀는 늘 ´종횡무진´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시와 산문과 사진 장르만이 아니라 삶과 시간이란 장르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 전면적이고도 열렬한 에너지와, 보통은 에너지에 반비례하기 마련인 감수성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언제나 맹활약중이다."(시인 김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