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분석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가 들려주는
맛있고 색다른 경제 이야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보스턴 차 사건,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황. 이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음식이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편하게 먹고 있는 음식이 세계의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면 믿겠는가?
세계적 경제분석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가 쓴『식탁 밑의 경제학』은 바로 이런 ‘식(食)’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흐름과 역사를 살핀 책이다. 경제와 역사를 읽는 데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저자는 하필 음식을 통해 경제와 역사를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음식은 경제다!
: 음식을 알면 세계경제가 보인다
저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대장성 국제금융국장과 재무관을 역임하면서 1990년대 일본의 외환정책을 담당했던 국제금융과 외환 전문가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매일같이 돌아다니는 강행군 속에서 여러 나라의 요리를 먹어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요리와 식문화라는 것이 국가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각 나라의 식문화가 그 나라 경제력과 문화를 매우 짙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음식이야말로 인류의 기본이자 경제의 중심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아시아가 왜 유럽과 미국에 역전 당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지금 당시 역전하려고 할까?” 먹을거리에 흥미만 있는 독자라면 책에서 소개하는 음식 이야기를 통해 색다른 방식으로 경제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음식은 문화다!
: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보라.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맞춰보겠다. (브리야 사바랭)
프랑스는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보고 외교 수단으로까지 활용하는 대표적 나라이다. 음식을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수준을 아는 중요한 열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5년,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수뇌회담 자리에서 영국인을 빗대어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인간은 신용할 수 없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은 일도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장성 시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접했던 음식 외교에 얽힌 여러 뒷얘기들을 풀어놓는다. 프랑스는 국빈에 따라 다른 요리를 내어놓는데 흥미로운 것은 대접하는 음식 메뉴와 와인 종류로 프랑스 정부가 상대방의 문화 수준과 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네다 수상에게는 프로방스 와인이 나오고 오부치 수상에게는 레오뷔르 라스커즈 와인이 나온 사실은 단순히 접대한 와인이 달랐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화이다. 이처럼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교상의 미묘한 밀고 당김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음식은 권력이다!
: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는 아시아로 돌아올 것인가?
저자는 영국이 초강대국이 된 진짜 이유를 산업혁명이 아닌 플랜테이션 경영을 바탕으로 한 식량의 교역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경제 효율을 추구하는 미국은 ‘음식 공업화’로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전 세계인의 건강과 문화를 좀먹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현재 각광받고 있는 슬로우 푸드를 예부터 잘 실천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일본과 아시아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이 GDP에서 세계 정상에 설 것이며, 향후 50년간 성장이 가장 기대되는 나라로 인도를 꼽고 있다.
다가올 21세기는 20세기의 식문화 특징인 대량생산, 대량소비에서 벗어나서 음식의 자연으로의 회귀가 커다란 흐름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의 흐름을 진단하면서 “앞으로 세계경제의 헤게모니가 아시아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리오리엔트를 전망한다.
음식과 역사가 만날 때
: 음식 속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저자가 들려주는 음식과 그 재료, 식문화에 얽힌 이야기들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 끼에 64접시를 먹었던 루이 14세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먹는가’보다는 ‘대식을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시 프랑스의 대식문화를 보여주는가 하면 감자를 악마의 음식이라고 기피했던 유럽인들이 17세기 전쟁으로 대기근이 발생하자 어쩔 수 없이 감자를 먹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공자의 화려한 식탁을 보여줌으로써 미식가 공자의 면모를 그려내기도 하고, 수준 높은 미식 문화로 유명한 프랑스 요리도 이탈리아의 메디치가와 결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숨겨진 사실을 소개하기도 한다.
와인,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음식 문화의 역사, 그리고 일본의 요리와 식문화 등 비즈니스를 위한 자리에서도, 연인들끼리의 데이트에서도 재미있는 대화 소재로 빛을 발할 만한 상식들이 가득하다.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일본 음식에 대한 저자의 애정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국의 좋은 요리를 위해서는 자기 땅에서 난 훌륭한 식자재, 즉 일본의 훌륭한 농산물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Tokyo Farmers Market을 열고, 또 농산물 보호와 농업 진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저자의 모습이 단순히 국수주의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식문화의 올바른 계승 발전이 농업의 진흥과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FTA 시대를 사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