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죽어서 천국에 갔다.
신은 아인슈타인에게 천국의 입구에서 사람들의 직업을 정해주라고 했다.
“당신은 IQ가 얼마입니까?”
“200입니다.”
“그럼 상대성 이론이라도 연구하십시오.”
다음에 IQ가 150인 남자가 등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그 남자에게 ‘세계경제를 예측’하는 직업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사람은 IQ가 60인 남자였다.
“당신은 환율이나 예측하십시오.”
(본문 113쪽)
당신도 혹시 환율 알레르기?
환율, 헤지펀드, 외환시장, 이런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이야기를 중단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제 그 환율 알레르기를 고쳐줄 처방전 하나를 소개하겠다. 앞서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면접 얘기는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긴 하지만 환율의 속성을 명쾌하게 잘 꿰뚫고 있다. 환율은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환율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당신은 환율 알레르기 대신 환율과 친해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환율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이고 잡으려고 하면 도망쳐버리는 미꾸라지다. 환율만큼 세계의 온갖 정보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없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사회, 국제관계 등 모든 것들이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외환시장을 읽는 일은 매우 스릴 있는 지적 게임이다.
『환율과 연애하기』는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환율과 외환시장을 보여준다. 일본 외환정책의 책임자로 1990년대 후반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문가답게 저자는 국제 금융계의 거물들과의 일화, 정책 시행의 뒷이야기 등을 통해 심리전쟁과 정보게임과도 같은 환율이라는 세계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환율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 21세기를 읽는 법
저자는 세계의 움직임을 모르면 환율의 움직임을 알 수 없고, 반대로 환율의 움직임을 안다면 세계의 움직임을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환율 너머로 세계의 오늘과 내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묘미는 딱딱한 용어 설명이나 이론 전개보다 때론 흥미진진하고 긴박한 일화들을 통해, 때론 시장 관계자뿐 아니라 정책 담당자나 언론까지도 귀담아 들을 만한 경험담 등을 통해 환율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또 대장성 시절 만났던 국제 금융시장의 거물들, 조지 소로스나 로버트 루빈, 로런스 서머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이른바 환율을 읽는 데 눈이 트인 대가들의 여러 개인적 일화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도 있다.
‘다음 타깃은 한국’ 국제 금융계의 괴물 조지 소로스, 한국 금융위기를 예견하다 조지 소로스는 1992년 파운드화가 급락할 무렵 영국 정부에 맞서서 2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손에 넣은 인물로 국제금융계에 전설적인 괴물로 통한다. 그런 그가 아시아 통화 위기가 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확대되던 1997년 9월 저자를 만나 “한국의 은행들이 행한 해외 대출의 상당 부분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것”이라며 사실상 ‘다음 타깃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중대함을 바로 깨닫지 못해서 한국과의 협조 기회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을 털어놓는 저자는, 독특한 경제철학을 가진 인물로 선인과 악인의 평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로스에 대해서 비교적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확률”이라 믿는 로버트 루빈의 결단 클린턴 정권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은 로런스 서머스 차관과 명콤비를 이뤄서 클린턴 정권의 경제 운영을 통상 중심에서 금융 중심으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이 정책 전환은 월스트리트에 활기를 불어넣어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번영을 맞게 된다.
“모든 것은 확률”이라는 시장철학을 갖고 있는 그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good listener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기에 가능하면 최대한의 정보를 모으고서 힘들게 결정을 내리는 조정형 리더이다.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루빈에게 1998년 미일간의 외환 협조 개입은 “가장 어려운 결정의 하나”였다고 스스로 평가할 정도로 힘든 결단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잘못을 함께 바로 잡자”고 했던 스티글리츠 정보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내기도 했던 스티글리츠는 IMF나 미국 재무부 정책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지식인이다. 정책적 비판을 이론의 수준까지 높여온 그가 ‘신고전학파적 거시경제 정책, 무역과 자본의 자유화’를 관철하려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일본의 정부 관료인 사카키비라에게 “서로 긴밀히 연락하면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잘못을 바로잡아 가자”고 약속까지 했다.
왜 일본의 경제정책은 효과가 없는가
이 책의 또다른 묘미는 한때 일본의 외환 정책을 총괄하며 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저자가 정책결정자로서 털어놓는 정책 효과와 시장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바라보는 일본의 경제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일본 경제정책의 효과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제정책의 근본 원인으로 일본의 관료와 정치가들이 시장을 모른다는 점을 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경제의 펀더멘털과 시장참가자들의 심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인데 이런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이론을 현실에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보다도 ‘시장 심리를 움직일 수 있는가’가 중요하며, 따라서 같은 정책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시장 심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일본사회는 정보의 민감성, 기동성, 전략성이 모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는 “현장의 운영은 현장에 맡기는 편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의 전략을 생각할 때는 권한이 집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밀고 당김이 필요하다.”면서 ‘기능적 분권ㆍ전략적 집중’의 원칙을 제안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정보를 극비로 취급하는 외무성의 예를 들면서 정보의 관리는 경중을 잘 따져야 하는데 모든 것이 극비라면 결국 정보의 가치가 같아져버려 기밀이 누설될 여지도 더 커진다고 한다. 정책 효과와 관련해서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지적은, 한미FTA에 대하여 기밀 유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우리의 외교통상부의 모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저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대장성 국제금융국장과 재무관을 역임하면서 일본의 외환정책을 담당했던 국제금융과 외환 전문가이다. 19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부임하여 당시 달러당 79엔까지 급등한 엔고를 엔 약세로 뒤집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언론과 외환 관계자들 사이에서 ‘Mr. 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외환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말 일본 금융정책 담당자로 한국의 금융 위기 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인물이기도 하며,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과 IMF의 시장근본주의를 비판하며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날의 외환시장을 살피는 남자, 그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외환시장의 세계와 환율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덧 당신은 환율과 조금은 가까워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