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 여성들의 힘과 슬픔에 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소설
1998년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 『비밀을 위한 비밀Confidence Pour Confidence』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여성/여성성의 문제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과, 페미니즘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비판으로 출간 직후부터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 지식인 계층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화제작이다. “여성의 힘과 슬픔에 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소설”(르 몽드)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르 푸엥)이라는 찬사와 함께 “현대소설의 중요한 하나의 모델”(르 피가로 마가진)로까지 평가받는 이 작품은 이지적인 한 여성 문학박사에 의해 씌어졌다.
7권의 소설과 1권의 산문집을 펴내 공쿠르 상을 비롯, 화려한 문학상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작가 폴 콩스탕(Paule Constant, 54세)은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국내에는 소개되지 못했었다. 아프리카 태생인 그녀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 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유년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과, 여성의 운명과 젊은 여성들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는 그녀가 프랑스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축, 즉 알제리 독립 이후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 문제와 페미니즘의 문제에 대단히 예민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콩스탕은 이 두 주제 속에 인간 본성의 상충하는 속성들의 실체를 여지없이 폭로한다. 그녀의 소설에는 이지적이고 신중한 인간 이해와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깊숙이 내장돼 있다. 고통과 웃음, 광기와 유머, 난폭함과 따뜻함이 함께 뒤엉키면서 독특한 매력을 내뿜는다. 현대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조금의 주저 없이 신랄하게 다루는 그녀의 소설은 현대인(특히 여성)의 삶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가혹하면서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지옥을 보여주는 소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폴 콩스탕의 『비밀을 위한 비밀』은 그녀의 일곱번째 소설이다. 중견작가로서 이미 충분히 문학성을 검증받은 그녀에게 프랑스는 1998년 마침내 공쿠르 상을 수여하였다. 그와 함께 그녀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개성적인 네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는 이 소설은 폴 콩스탕의 모든 문학적 특장이 오롯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여성의 존재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늙는다는 것과 환상의 상실이라는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망가진 육체, 후회와 버림받는 것에 대해 그녀는 대패질하듯 깎아낸 특유의 문체로 정면으로 맞선다. 그같은 것들은 여성에게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찬란하면서도 가혹한 것이다. 삶의 본질과 현대 여성의 정체성의 문제를 이토록 잔혹하면서도 신랄하게, 그리고 적확하게 묘사해낸 작품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가 창조해낸 네 명의 여성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분신임은 물론 현대 여성의 내면에 숨겨진 다양한 욕망의 다른 이름에 다름아니다.
눈부신 봄날, 미국 캔자스 미들웨이의 한 집에 네 명의 여자가 모인다. 이른바 ‘마녀클럽’! 제3세계 출신으로서 성공한 흑인 대학교수이며 집주인인 글로리아 패터, 알제리에서 본국 프랑스로 송환되었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가 된 유대계 프랑스인 바베트 코엔, 한때 날리던 은막의 대스타였으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노르웨이 출신 여배우 롤라 돌, 검은 아프리카에서 자란 프랑스인 소설가 오로르 아메르. 이 네 여자가 24시간 동안 함께 머물면서 저마다 상처와 결함으로 가득 찬 비밀의 잔치를 벌인다. 성공 하나만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지만 가족의 사랑을 잃고, 애지중지하던 딸로부터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 호전적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 사랑과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다고 생각했으나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후 그 때문에 자신의 외모가 망가졌다고 한탄하는 바베트, 과거에 대한 후회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가져오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대며 이젠 어떤 남자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롤라 돌, 어릴 때 고아가 된 후 애정에 대한 갈망과 고독감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책과 글쓰기 뒤로 숨어 살아온,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자”라고 말하는 소설가 오로르 아메르. 이들의 삶을 둘러싸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가운데 신랄한 독설, 비열한 언행이 오가면서, 유년기의 상처, 사랑, 성(性), 직업에서의 성공, 가족 문제 등 현대 여성들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날카로운 풍자, 재치 넘치는 블랙 유머와 더불어 펼쳐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감정적 관능적 비참함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그녀들의 희망과 환멸, 야심과 실패가 다채롭게 수놓인다.
“자유나 행복을 누릴지라도 여성이기에 느껴야 하는 슬픔은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상처와 비밀을 털어놓으며 연민과 공감을 느낀다.(“난 이런 식으로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우리끼리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겠어. 다른 여자들하고는 비밀을 위한 비밀이나 이야기하고, 간직하기 부담스러운 비밀은 우리끼리 나눠 갖자.”) 그러나 동시에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간절히 바랐으나 갖지 못한 것 또는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고 질투심과 증오를 느끼기도 한다.(“여자 둘이 있으면, 서로 속내 이야기를 하지만 즐겁지는 않다. 셋이 모이면 활기가 생긴다. 그러나 넷이 한자리에 있으면 한 여자를 공격해 기를 꺾어버린다. 이것은 짐승들, 특히 새의 경우와 같다. 새장 하나에 모란잉꼬 두 마리를 넣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한 쌍을 더 넣으면 소란스러워진다. 여섯 마리가 함께 있으면 서로 물어뜯어 죽인다.”)
작가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동료 여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가혹하고 냉소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 소설이 가혹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현실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의 가차없는 시선 속에는 여성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숨어 있다. 그것은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강요하는 사회(“난 살아오면서 내 여성성을 감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남자들 마음에 들 정도로 적당한 향기만 풍겨야 해. 더럽거나 역겹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돼. 악취를 제거한 후, 신중하고도 섬세하게 가공한 여성성만을 드러내야 하는 거야.”) 속에서 스스로의 여성성에 대하여 열등의식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여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공감과 연대의식에서 나온다. “자유나 행복을 누릴지라도 여성이기에 느껴야 하는 슬픔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대 여성의 삶을 잔혹하면서도 유쾌하게 뒤흔들어놓는 소설
이렇듯 장편소설 『비밀을 위한 비밀』은 현대 여성의 삶의 태도와 그에 가해지는 사회 제도적 폭력에 대해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신랄한 폭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히 페미니즘에 대해 반대하는 여성작가의 소설로 읽혀서는 안 된다. 작가는 “단지 있는 그대로의 삶과 존재의 베일을 벗긴 것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가 여성들에게 씌운 존재의 때를 벗기는 것, 강요된 거짓 관념과 도덕의 허울을 들추어내는 것, 그것이말로 작가 콩스탕이 바라는 것이며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다. 또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 힘으로 성공한 네 명의 커리어 우먼이 가슴에 품고 있는 상처와, 사회와 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조금의 감춤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 소설은 그래서, 날카로운 풍자로 여성들의 내면과 허위의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웃음과 풍자 사이사이 가슴 찡한 감동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치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여성들의 내밀한 욕망과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속내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 여성들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야심찬 성공을 꿈꾸는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하고, 겉으로는 우아한 척하지만 사소한 것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현대 여성의 내면을 이처럼 빼어나게 파헤친 작품은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폴 콩스탕은 빼어난 감수성과 지적인 문체로 여성의 내면을 그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투시하고 해부함으로써 현대 여성의 삶을 잔혹하면서도 유쾌하게 뒤흔들어놓고 있다.
자유가 흘러넘치면서도 조롱과 잔혹함과 동정심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은 여성들의 힘과 슬픔에 관한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르 몽드
폴 콩스탕은 육식동물의 환희를 갖고 인간들의 진흙탕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섹스, 비밀스런 음모, 육체의 영락(零落), 미망을 향한 끈질긴 욕망, 현재뿐 아니라 과거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가장 비밀스러운 핵심을 꿰뚫는 끊임없는 질투의 도가니 등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들과 접할 수 있다.-―르 푸엥
이 웃음과 참해(慘害)의 소설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매우 재미있고도 진기한 작품이다.―르 피가로
폴 콩스탕은 일곱 편의 소설과 한 권의 산문집을 펴낸 중견작가이며, 고전주의 시대 여성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유년 시절의 체험을 소설화한 작품들과, 여성의 운명과 젊은 여성들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프랑스 문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온 콩스탕은 1987년 산문집 『아가씨들용 세상』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에세이 부문 대상, 1990년 『화이트 스피릿』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프랑수아 모리악 상, 발레리 라르보 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우레가노』 『발타』 『화이트 스피릿』 『고베르나토르의 딸』 등이 있으며, 현재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프랑스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이 염명순은 196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논문을 준비중이다. 시집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를 펴냈으며, 『피카소』 『프랑스 현대미술』『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