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박사, 바타이유 씨로 변신하다
바타이유가 『지옥 만세』를 발표하여 불러일으킨 파장은 그가 데뷔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들고 나타났을 때와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을 즉흥적으로 옮겨 적은 듯한 문장, 재기 넘치는 언어의 유희와 메타포의 향연, 솜씨 좋게 엮어내는 경구들은 고도로 계산한 듯한 문장으로 고전적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던 그의 전작들과는 분명 대척점에 놓일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은 바타이유의 변신에 대하여“크리스토프 박사와 바타이유 씨”라고 표현하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바타이유의 고전적이며 절제된 소설세계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작가의 이와 같은 대변신을 일종의 ‘배신’으로 느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우를 불식하기라도 하듯 『지옥 만세』는 1999년 공쿠르 상과 ‘고등학생들이 뽑은 공쿠르 상’ 후보에 동시에 오름으로써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지옥에서 길어올린 빛나는 메타포의 향연, 꿈같은 언어의 카니발!
작품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다섯 살 소년 조슬랭 시마르는 낮에는 트럭에 고철을 싣고 동구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며 엄마 마틸드와 함께 고철을 수집하고, 밤이 되면 풋내기 배우들이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으로 달려가 분장을 하고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는 극장에서 천사 같은 소녀 마엘을 만나 미친 듯이 사랑한다. 한편 조슬랭의 아버지는 여행중에 만난 창녀 롤라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트레일러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남편의 배신에 분노한 마틸드는 아들 조슬랭과 함께 파리로 올라가 뒷골목을 누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철의 세계로 돌아온 조슬랭은 사랑하는 마엘과 함께 공장에서 일하게 되지만, 작업중 사고를 당한 마엘은 공장에 불을 지르고 잠적해버린다. 조슬랭은 연인을 찾아 런던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지옥을 발견한다.
중심축을 이루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조슬랭 부모의 과거와 마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소설에 입체감을 더해준다. 또한 경구들을 적절히 삽입하고 메타포에서 또다른 메타로로 건너뛰면서 만남과 이별, 사랑과 배신, 탄생과 죽음 같은 인간사들을 낯설고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서술방식은 줄거리와는 별개로 소설에 신비롭고 기이한 색채를 불어넣으면서 독자들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
바타이유의 제2의 작품세계를 여는 전환점 『지옥 만세』
『지옥 만세』는 여러 면에서 바타이유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여는 전환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변두리의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트럭 운전사, 풋내기 배우, 창녀 등 우아하고 세련된 삶과는 거리가 먼 인생들을 전복적 언어로 그려냄으로써 익숙한 소설문법에서 볼 수 있는 세계와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전위적 언어실험을 통해 제2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고 그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의 시도는 성공한 셈이다. 작가로서의 제2의 자아를 탄생시키는 산(産苦)의 고통 탓일까, 그는 『지옥 만세』에 대하여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 상’ 후보 작가 인터뷰 때 그는 “실질적으로 나의 첫작품은 『지옥 만세』이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지옥’의 문체로 일구어낸 주술적인 언어와 빛나는 메타포의 향연, 꿈같은 언어의 한판 카니발. 『지옥 만세』가 펼쳐보이는 이 기이한 세계를 두고 한 프랑스 언론은 “디오니소스의 펜 끝에서 터져나온 화려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똑똑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지도 못하는 인물들이 엮어가는 『지옥만세』 속에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가공의 세계, 서정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순수하지만 공격적인 세계가 형상화되고 있다. 그것은 곧 작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가 혹은 우리들 자신이 꿈꾸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지옥만세』의 독창성과 매력은 말하자면 그 주술적인 언어, 그 지옥의 문체에 있다. 이는 지금까지 고전적인 문체로 세련된 작품을 써서 언론들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가 지금까지의 글쓰기 방식과 결별하여 전혀 새로운 방식의 소설을 써내기로, 말하자면 소설가로서의 제2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자칫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도시 변두리의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트럭 운전사, 풋내기 배우, 창녀 등 우아하고 세련된 삶과는 거리가 먼,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가히 단어들의 한판 카니발이라 할 정도로 정신없고 소란스럽고 광기 어린 바로크적 글쓰기를 구축해놓았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기이하고 조금은 미친 듯한 이야기. 덜컹거림과 충돌로 가득 찬 거칠고 소란스러운 글쓰기. 무엇보다 황홀하고 믿을 수 없을 만치 폭력적인 책. 베르나르 앙리 레비(철학자)
메타포의 폭포, 한없는 언어유희, 경구를 솜씨 있게 엮어내는 솜씨는 작품에 웅장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바타이유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사는, 바로크적이고 꿈같은 세상을 창조했다. 르 몽드
이 소설은 당신이 읽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엘르
이교도의 축제, 서정적인 폭력, 공격적인 순수, 그리고 언어로 표현된 환상의 세계. 『지옥 만세』에는 이 모든 것이 있다. 덤으로 디오니소스 축제의 펜끝에서 터져나온 화려함까지. 갈라
이것은 소설에 관한, 이치에 관한, 한 남자에 관한, 그리고 그토록 부드러운 한 언어에 관한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1993년 21세의 나이에 발표한 첫 작품 『다다를 수 없는 나라』로 “카뮈의 『이방인』 이후 최고의 처녀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처녀작 상과 되마고 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명문 경영학 스쿨인 HEC를 졸업했으나, 근원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4년 군복무 중에 쓴 소설 『압생트』를 발표하여 보카시옹 상을 수상했고, 이후 『시간의 지배자』 『지옥 만세』 『나는 바보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등을 발표하며 프랑스 본격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서 놀라운 상상력과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다. 1995년부터 그라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주로 밤에 작품을 쓰고 있다.
* 2003년 11월 19일 발행
* ISBN 89-8281-762-X 03860
* 신국판 / 328쪽 / 8,800원
* 담당편집 : 김지연(031-955-8860)
지옥에서 길어올린 빛나는 메타포의 향연, 꿈같은 언어의 카니발!
『지옥만세』에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가공의 세계, 서정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순수하지만 공격적인 세계가 형상화되고 있다. 그것은 곧 작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가 혹은 우리들 자신이 꿈꾸는 세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