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수정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출간
"옛날에 마르탱이라는 한 불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그 저자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훨씬 더 훌륭하게 해버린 듯이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빈손으로 슬프게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흥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는데 의외로 자기와 같은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마르탱은 문예비평가가 되었습니다."
신인작가들이 발산하는 낯설고 새로운 매력을 찾아내는 비평가 신수정이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의 첫머리에 인용해놓은 글이다.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부담이라면, 작가의 작품에서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분명 비평가의 몫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수정의 비평작업은 더욱 돋보인다.
신인작가들의 작품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거기서 새로운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 그간 비평가 신수정의 주된 작업이었다.
"삶이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했으며, 그것들이 초래하는 삶의 불가해성과 그 불가해한 것들을 언어화하려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가 문학 혹은 비평이라고 믿"었던 그는 그래서 더욱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90년대의 문학, 90년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가들에 주목한다. 장정일, 백민석, 배수아 등의 문학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그는 분명히 나름의 비평적 공준을 얻었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애정을 보인다. "그들이 현재 어떠한 종류의 문학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또 그들이 생산해낸 모든 텍스트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는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문학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의 제목을 그들의 문학적 특성에 빗대 푸줏간에 걸린 고기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때로는 미숙하고, 또 때로는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또 때로는 지나치게 의식적이어서 오히려 비겁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하는 그들 텍스트상의 불균질성은 오늘날 우리 문학의 경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이 경계의 유동성을 사랑한다. 그것은 문학이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화석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 따라 항상 새롭게 재구성되는 유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기에 더욱 그러하다."
"철부지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어른의 위선을 넘어서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진 소비사회의 표면을 가볍게 활공"(배수아론)한다거나, "지형지물이 적절하게 배치된 야전장에서 한 무리의 개구쟁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전쟁놀이"(백민석론)라는 등의 그의 표현들도 적확하고 빛나지만, 책머리에에서 그 역시 밝히고 있는 대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일단 칼을 뽑으면 깊고 빠르게 찌르고 파헤친다"는,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삽날이 박혀 들어올려진 텍스트의 거름내 나는 흙에서는 이상스럽게 밝고 가벼운 빛이 느껴진다"는 소설가 성석제의 평은 과연 적확하다.
신수정의 글은 견자(見者)를 포착하려는 고성능 레이더다. 그는 유난히 견자들의 텍스트에 예민하다.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포착하려는, 알아주는 이 드문 고행, 그 어두운 인간의 속을 들여다보고 돌아서 스스로를 오래 들여다보고, 스스로와 텍스트 사이를 오가는 거미줄을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일단 칼을 뽑으면 깊고 빠르게 찌르고 파헤친다. 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삽날이 박혀 들어올려진 텍스트의 거름내 나는 흙에서는 이상스럽게 밝고 가벼운 빛이 느껴진다. 양지바른 담 아래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처럼 글과 텍스트가 잘 어울려 놀다 문득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을 깨닫게 되는, 두 존재의 비애와 긍정이 그의 글에 잘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성석제(소설가)
신수정의 비평은 품이 크지만 세밀하다. (……) 신수정은 비평이란 글쓰기가 문학 작품을 통해 비평가 스스로가 사유하고, 구축하는 하나의 문학 장르임을 새삼스럽게 증언한다. 그리하여 신수정의 비평이라는 치밀한 큐빅의 몸에 걸려든 작가는 누구도 자신이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작가가 아니라는 것, 문학 공화국이라는 물레방아의 하나의 살대라는 것을 아프게 절감하게 된다. 아울러 그 살대 하나 하나가 한 국가의 이름이라는 것도 황홀하게 깨닫게 된다. --김혜순(시인, 문학평론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번 평론집을 통해서 신수정이 1990년대 이후의 우리 비평계의 주조를 이끌어가고 있는 비평가 중의 한 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리얼리스트/포스트모더니스트, 예술성/대중성을 가림 없이 대상으로 취하는 폭넓은 시야, 선택된 작품을 적극적으로 의미화하려는 의지, 날카로운 눈길과 섬세한 손길, 오늘의 한국소설을 명징하게 판독해내고 있는 고급의 논리와 용어들, 부드러운가 하면 설득력 넘치는 서술방법 등과 같은 장점들을 눈부시게 현시하고 있는 신수정, 이제 그의 비평은 보다 더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조남현(문학평론가, 서울대 국문과 교수)
신수정의 글은 견자(見者)를 포착하려는 고성능 레이더다.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포착하려는, 알아주는 이 드문 고행, 그 어두운 인간의 속을 들여다보고 돌아서 스스로를 오래 들여다보고, 스스로와 텍스트 사이를 오가는 거미줄을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일단 칼을 뽑으면 깊고 빠르게 찌르고 파헤친다. 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삽날이 박혀 들어올려진 텍스트의 거름내 나는 흙에서는 이상스럽게 밝고 가벼운 빛이 느껴진다. --성석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