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르 클레지오가 들려주는 환상동화
『나무 나라 여행Le Voyage au pays des arbres』은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르 클레지오가 어린이를 위해 쓴 책이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문학동네어린이는 르 클레지오에 이어 프랑스 최고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미셸 투르니에와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보석 같은 작품들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그 동안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과 문명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 온 르 클레지오는 이 작품에서도 한 소년과 나무로 상징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시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노래하고 있다. 삽화가 앙리 갈르롱은 문명 세계에서 나와 자연으로 동화되어 가는 소년의 여행과 순수한 자연의 세계가 어우러지는 광경을,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중첩시킴으로써 몽환적이고도 초현실적인 화풍으로 구현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나무 나라의 문이 열린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한 소년이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소년에겐 비행기도 자동차도 배도 없다. 문명의 이기라곤 아무것도 없는 소년은 맨몸으로 자연의 세계인 나무들의 나라로 떠날 수 있음을 깨닫고 떠날 준비를 한다. 준비는 오로지 나무를 길들이는 일뿐. 소년은 나무들을 길들여 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나무를 길들이기 위해 침묵하고 나무들의 언어인 휘파람으로 말을 거는 연습을 하는 소년. 이윽고 길들여진 나무들이 잎사귀마다 눈을 떠 소년을 바라보고, 귀기울여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입을 열어 소년의 질문에 대답해 준다. 나무들은 소년을 작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윗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비밀스러운 나무 나라의 문을 연다. 소년은 늙은 참나무에게서 지혜를 배우고, 어린 삼나무와 즐겁게 춤을 추며, 나무들의 존재와 개성을 하나하나 알아간다. 나무들의 축제는 밤새도록 계속되고, 소년은 나무들 곁에서 잠이 든다. 나무들은 소년의 곁을 밤새 지켜 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길들인다는 유명한 말은 이 작품 속에서도 관계 맺음의 의미로 나타난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참을성 있게 길들이라고 한 『어린 왕자』 속 여우의 말처럼, 소년은 참을성 있게 천천히 나무들을 길들인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 앉아 나무들을 바라보고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 나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익숙하게 만든다. 이렇게 나무와 관계를 맺은 소년은 나무들에게 수많은 사람 중 특별한 하나의 사람 이윗이 되고, 나무들은 그들의 특별한 비밀을 소년에게 보여준다. 한 존재인 소년이 다른 존재인 나무에게 다가가고 길들이고 특별해지는 과정을 거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작가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무들의 언어를 알아듣게 되고,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적인 문장과 신비한 그림의 아름다운 변주
짧고 간결한 이야기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문명과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통, 자연으로의 회귀, 관계 맺음 등 읽는 이에 따라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비행기나 배, 자동차 같은 탈 것이 없어 어느 곳으로도 여행을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소년이 나무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 평화롭게 잠이 드는 모습에서 결국 인간이 돌아갈 곳은 자연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까고 나와 다른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은 존재와 존재의 관계 맺음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 읽든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의문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무엇보다 시적인 문장과 신비로운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어린이나 어른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읽을거리가 되어 줄 것이다.
『어린 왕자』가 그렇듯이 이 책도 어린이가 보기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르 클레지오가 주로 어른을 위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그의 소설은 어른 독자들 중에서도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런 우려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이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책을 통해 지식을 흡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보면서 감성에 눈뜨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독자가 이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 심오한 뜻을 찾으며 어려워하기보다는 달빛 아래 나무들이 미끄러지듯 춤을 추는 신비로운 장면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기를 바랍니다. _옮긴이의 말에서
글쓴이 J. M. G. 르 클레지오
1940년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태어났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덕분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던 작가는 처음에는 영어로 글을 쓰려 하였으나 영국이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을 식민지화하려는 데에 반감을 느껴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물세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 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열병』 『홍수』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일컬어지며, 1994년 잡지 『리르Lire』의 설문조사를 통해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낸 책으로 『아프리카인』 『타오르는 마음』 『성스러운 세 도시』 『아프리카인』 『황금 물고기』 『하늘빛 사람들』 『우연』 등이 있다.
그린이 앙리 갈르롱
1939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1961년 에콜데보자르를 졸업한 뒤, 그래픽 디자이너로 훌륭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광고와 책에 삽화를 그렸다. 그의 작품은 신비롭고 독창적인 착상과 연상과 중첩으로 가득 차 있으며, 놀라운 인물들과 경이로운 풍경을 창조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옮긴이 이주희
연세대학교 불어불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굿바이 마우지』 『나만의 정원』 『꼬마 마녀에게 애완 동물이 생겼어요』 『언제나 널 사랑할 거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