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감 넘치는 간결한 글에 담긴 명작의 참 맛!
쥐 떼가 마을의 주인인 양 밤낮없이 휘젓고 다니는 하멜른에서는 고양이나 개도 도망치기에 바빴고, 사람들은 달콤한 낮잠도 포기해야 했다. 깜빡 잠들었다가 발가락을 꽉 물릴지도 모르니까. 계속되는 쥐 떼의 횡포로 하멜른 사람들은 서서히 지쳐갔고, 쥐 떼만 없애준다면 마을의 보물이란 보물은 모조리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낯선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가 쥐 떼를 향해 침착하게 피리를 불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피리 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쥐 떼는 한 마리 남김없이 마을 밖으로 사라진다. 마침내 하멜른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기적을 보고 기뻐하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못된 쥐와 같은 욕심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약속했던 보물은커녕 새 옷 한 벌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탐욕과 위선을 보게 되고, 그들이 진실이라고는 모르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다시 한 번 피리를 불기 시작하는 사나이, 마을 사람들은 욕심과 거짓의 대가로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까? 과연 가장 소중한 보물은 무엇이었을까?
시적인 문장과 초현실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세밀한 펜화로 새롭게 태어난 고전, 그 지혜의 바다로 뛰어들면 맑고 투명한 피리 소리가 곁에서 들릴 듯하다.
욕망의 끝을 묘사한 초현실적인 그림, 어두운 그림자에 잠긴 하멜른 속으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다. 하지만 드라호스 자크는 하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각 예술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날카로운 펜으로 그려 낸 하멜른의 명암과, 흑백과 컬러를 적절히 혼합한 화면은 마치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의 경계를 표현한 듯 몽롱한 느낌을 준다. 색과 명암을 얻지 못한 채 몇 개의 선으로 묘사된 인물들은 하얀 종이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 떠다니고 있고, 황량한 벌판에 뼈대만 세워 놓은 건물처럼 위태위태해 보이기까지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묘사를 통해 신의를 저버린 하멜른 사람들의 욕심과 그로 인한 허무한 결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그림의 독특한 스타일 이외에도 화면 곳곳에 위치한 섬세한 소품이 작품의 깊이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시적인 글과 어우러진 그림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하고, 하멜른은 어느새 완벽한 무대로 바뀐다. 주연인 피리 부는 사나이 이외에도 무대 곳곳에는 놀랄 만한 소품과 무대 장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조연들이 숨어 있다. 특히나 단 한 장면에 등장할 뿐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욕심, 그 추상적인 감정을 형상화한 거대한 쥐의 모습이다. 끔찍한 쥐 떼를 몰아냈지만 오히려 쥐 떼보다 더 큰 재앙이 사람들에게 찾아왔으니, 그것은 약속마저 저버리게 만든 욕심이었다.
쫓겨난 쥐 떼와 쥐 떼처럼 찾아온 욕심. 이미지를 통해 대구(對句)를 이루는 이미지의 시적 표현은, 한 편의 시와 같은 리듬감 있는 글과 만나 원전에서 볼 수 없었던 감동을 선사한다.
그림 | 드라호스 자크
하멜른의 아이들처럼 고국 체코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했다. 어린 시절, 건축 관련 책들이 가득 찬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에 그만의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하멜른 시의 건물과 거리 풍경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극도의 세밀함과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이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책협회가 뛰어난 어린이책(1998)으로 선정하였다.
그 밖에 낸 책으로 『뮤가트로이드의 정원Murgatroyds Garden』 『무시무시 삼형제The Brothers Gruesome』 등이 있다.
각색 | 로버트 홀든
십대 때부터 그림이 있는 희귀한 어린이책을 수집해 온 작가는 제임스 하디 오스트레일리아 미술 도서관장이 되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책과 원화들을 수집하여 유럽과 영국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시드니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유년 박물관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오래된 어린이책들을 사고 파는 일을 하며 글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이 | 이은석
1972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세상을 바꾼 두더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 『코알라 코코』 『코코는 화가 났어요』 『뭘 찾고 있니, 꼬마 아가씨』 『꼬마 아가씨의 이상한 모험』, 물감나라 물감방울 시리즈, 뚝딱뚝딱 민튼 시리즈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