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고 당당하게 빛나는 도저한 청춘들의 외침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찬 생명력을 담아내고 싶었다."
등단 10여 년 만에 첫 시집을 발표하는 젊은 시인의 말은 당차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어찌 보면 오만(?)하기 그지없는 외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 바 있고, 몇 편의 시가 이미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지만, 그를 젊은 시인으로 기억하는 독자는 많지 않다. 1991년에 故 김남주 시인이 심사를 맡았던 오월 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13년 동안 모아온 시들 중 60여 편을 가려 내놓는 정지원 시인의 첫 시집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는 저 뜨거웠던 80년대와 90년대를 건너온 청년들의 예민한 서정과 건강한 고민의 흔적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균형을 잃지 않은 건강함, 그 울림의 힘
곽재구 시인은 시집에 붙인 발문에서, 가방에 든 쇠사슬 한 뭉치와 시집 한 권으로 그 시절을 회고하던 젊은 시인을 기억해낸다. "눈빛이 강인하게 빛나는, 몸 전체에 흐르는 에너지가 보통 사람과 확연히 다른 젊은 시인"이 세계의 억압과 분노에 눈을 뜨고 이에 대한 대응방식으로 시의 길을 찾아온 과정을 애정 어린 눈으로, 찬찬히 안내해주고 있다.
시집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는 바로 그 쇠사슬 한 뭉치와 시집의 힘으로 어두운 시대를 헤쳐온 젊은이의 꿈과 좌절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다. 시 편편에 흐르는 건강하고 순수한 젊은 정신을 만나는 일은 반갑고, 또 신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잊고 지내던 순정한 젊은날의 당당하고 건강한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맑고, 차게, 가슴 한구석에 아직도 흐르고 있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선명한 희망에의 의지, 쇠사슬보다 강인하고 빛나는 시
시인은 청년의 가슴을 달구던 한 사회가 이미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자리를 안타깝게 더듬기도 하고(「프라하에서 길을 잃다」 「케테 콜비츠」), 작년 6월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씌어진 「피 묻은 운동화」나 「부메랑」 「발포명령」 등의 시들처럼 모순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달아오를 시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정은 간절한 기다림이다. 그는 무언가를, 또는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지금을 목말라한다.
아직은 누구도 꽃을 기다리지 않지만/어느 추운 날 세상의 풀들이 다 고개를 접고/피어나지 않는 생명을 애달파할 때/그 눈물 땅을 적시어/꽃들이 피어나리(「바닥에 엎드린 꽃」에서)
사라진 길이 아픈 건 발자국 때문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건너가다가
마음을 헛디뎌 넘어진 날
나도 모르게 걸음이 먼저 찾아와
볕 잘 드는 그림 속에 머물던 흐르는 길 하나 있기에
길을 가다가 버려진
목소리에 귀를 연 적이 있나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서서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그러다 자꾸자꾸 사무치면 흙이 되겠지
그리움이 맺히고 다져져 길이 된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서러운 날
온통 당신의 발자국 찍힌 나를 보여주고 싶다
--「사라진 길을 보았다」 전문
걸음마다 물집 터져 엉기도록/떠난 사람들을 부르다/얼마나 질기게 속울음 쟁여야/들풀마저 숨 거둔 나라/목이 쉰 시절도 물결이 되어/채 피지 못하고 스러져/잊혀지며 젖고 있던 이들까지/몫몫이 별빛으로 찾아올 수 있을까(「길 위의 사람들」 전문)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었던 이들을 기다리고,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이들의 영혼을 기다리고,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드러날 희망의 빛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세상을 기다리는 그의 순정한 시심이 당당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사람에 대한, 시에 대한 그의 믿음에 함께 기대를 걸어볼 일이다.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정지원? 그가 자신의 시집을 갖기 전에 그의 시를 읽었다, 우연히. 행운이었다, 나에겐. 훗날 알게 된 그는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그녀였다. 나는 그의 시를 노래로 엮는 일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예민하게 흔들리는 순정한 젊음, 뒤틀린 세상에 대한 가차없는 분노,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그 사람의 시세상에 흠뻑 빠져볼 일이다.--안치환(가수)
선명한 희망에의 의지, 쇠사슬보다 강인하고 빛나는 시
정지원? 그가 자신의 시집을 갖기 전에 그의 시를 읽었다, 우연히. 행운이었다. 나는 그의 시를 노래로 엮는 일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예민하게 흔들리는 순정한 젊음, 뒤틀린 세상에 대한 가차없는 분노,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그 사람의 시세상에 흠뻑 빠져볼 일이다. --안치환(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