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브릭스는 누구?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TV로 방영되어 영국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스노우맨>.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이 환상적인 만화영화의 원작자는 바로 그림책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이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스노우맨>의 원작 『눈사람 아저씨』를 비롯해 『산타 할아버지』 『곰』 『바람이 불 때』 등으로 전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새 작품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석기 시대로 눈을 돌렸다. 어두운 동굴에서 날고기를 먹으며 살아야 했던 석기 시대. 그릇만 돌로 만들었으랴. 돌이불을 덮고, 돌바지를 입고, 돌로 짐승을 잡는 사람들의 생존을 건 일상. 그 속에는 돌잔에 담아 마시는 피를 주스라고 부르는 아이와, 아이가 선물한 꽃다발을 우적우적 먹어 버리는 부모 사이의 세대 갈등까지 그려져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의 코믹한 스토리와 기상천외한 소품들을 떠올리겠지만,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의 상상력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기발한 발상 뒤에 숨어 있는 놀랍고도 소중한 작가 의식에 주목해 보자.
세상을 바꾸는 힘: 호기심, 꿈, 그리고 도전
"아빠, 시간이 뭐예요?" "돌바지는 딱딱하고 불편해요." "엄마, 동굴은 너무 추워요." "왜 매일 힘들게 짐승들을 쫓아다녀요?" "죽은 짐승 고기 말고 더 맛있는 건 없나요?"
엄마 아빠에게 우가는 쓸데없는 질문이나 해 대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우가의 호기심은 호기심에서 끝나지 않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지를 입기 위해 매머드 가죽을 오려 보고, 돌을 쌓아 야외 동굴을 만들어 보는 등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도전과 실험이 계속된다. 그뿐 아니라 우가는, 짐승을 한곳에 몰아 넣고 길러 보자거나 날고기를 빨갛고 뜨거운 것에 익혀 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를 한 단계 진보시킬 만한 놀라운 발상이 한 소년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니!
물론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게 당연하던 석기 시대에 우가가 꿈꾸는 세상은 발칙한 몽상일 뿐이었다. 우가의 엄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사치일 뿐이라며 우가가 나중에 동굴에 그림이나 그리는 인간이 될 거라고 혀를 찬다. 하지만 우가와 같은 불평분자가 없었더라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한 사람의 고군분투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제자리였을 것이다.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필요한 호기심, 꿈, 그리고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석기 시대의 한 천재 소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천재 작가가 그려 낸 아주 특별한 석기 시대
사실적인 묘사와 재치 있는 구성은 그림책 보는 맛을 더한다. 진짜인 듯, 아닌 듯 석기 시대의 풍부한 볼거리는 특유의 만화식 화면으로 구성되어 레이먼드 브릭스만의 유머와 해학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야생적인 원시인의 모습을 했지만, 주인공 우가의 표정은 현대의 여느 과학자 못지않게 진지하기만 하고, 원시 모계 사회에서 철부지 아들과 소심한 남편을 쥐락펴락하며 살림을 꾸려나가는 씩씩한 엄마의 모습도 재미있다.
석기 시대에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낱말이나 그림을 잡아 내어 친절한 주석을 달아 놓은 구성도 돋보인다. 어린이들은 석기 시대라는 흥미로운 역사적 공간을 체험하면서, 시간과 시대의 개념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미루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