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에서 죽음은 더 이상 금기의 소재가 아닌 듯하다. 할머니의 죽음, 애완동물의 죽음, 형제나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형상화시킨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책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가족애나 우정을 강조한 이야기부터 생명의 순환에 의미를 둔 철학적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아내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간혹 우화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문학동네어린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초등 1∼2학년 대상의 초승달 문고, 그 두 번째 책인 『안녕, 까미유』는 어린이의 삶에 맞닿은 죽음의 실체를 보다 직접적으로 그린다. 단짝 친구를 죽음의 문턱으로 한 발짝씩 떠나보내는 아이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안녕, 까미유』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갑작스레 삶과 죽음의 실체에 맞닥뜨린 여덟 살 소년의 이야기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삶의 따뜻함 전하는 책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 아동 문화 협회 에스파스-앙팡(www.espace-enfants.org)은 이 책을 아이가 부모에게 권하는 책으로 선정했다. 그만큼 이 책은 어린이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죽음과 싸우는 주인공의 몸부림도, 죽음에 얽힌 애틋한 사연도 없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여타의 이야기와는 달리, 독자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오히려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선과 절제된 문장이다. 죽음 뒤에 슬픔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씩씩함은 더 큰 감동을 준다.
토마와 까미유 또래의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아이들은, 우리가 일궈 나가야할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의 간접 체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까미유, 너 죽는 게 무섭니?"
토마는 못하는 것이 없다. 글짓기, 자전거, 요리, 바이올린까지. 그런데 딱 하나, 친구 까미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토마의 단짝 친구 까미유는 백혈병으로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날쌘돌이였던 까미유는 이제 창백하고 홀쭉해져서 침대에 누워만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일락 꽃다발을 사들고 병문안을 간 토마.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린 까미유의 모습은 선뜻 다가서기가 겁이 날 정도다. 토마는 참았던 질문을 어렵게 꺼낸다. "까미유, 너 죽는 게 무섭니?"
까미유는 밤마다 찾아와 발바닥을 간질이겠다고, 시험 볼 때 옆에서 정답을 가르쳐주겠다고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곧 웃음을 지우고 털어놓은 속마음. "너한테만 말할게. 나, 죽는 게 너무 무서워."
"죽는 게 뭐야?" "난 언제 죽어?"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 네 살짜리 동생의 끊임없는 질문에 바보 같은 소리 말라며 퉁명스럽게 굴었지만, 토마도 정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은 채 토마는 까미유를 떠나보내야만 한다. 시간이 된 것이다.
까미유를 보내고 훌쩍 커 버린 토마. 조금은 못마땅했던 친구 크리스토프에게 토마는 마음의 문을 열어 보기로 결심한다. 까미유와 그랬듯, 토마는 크리스토프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함께 학교와 집을 오가고, 여름방학엔 캠핑을 갈 것이다. 그렇게 남은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삶은 죽음보다 강하다.
파스텔과 색연필의 질감을 적절히 사용한 이 책의 삽화는 죽음과 대조되는 밝고 따뜻한 색감이 주조를 이룬다. 초등학교 저학년 독자들을 고려한 이 그림들에는 어린이들에게 삶의 온기를 전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잘 살아 있다. 수업 시간에 저마다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이 재미있고, 오누이가 나란히 누워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정겹다.
글쓴이 실비 데로지에
캐나다의 인기 있는 어린이책 작가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다채로운 캐릭터, 그리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독특한 이야기로 캐나다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중국 등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안녕, 까미유』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삶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주요 작품으로 낫도그 시리즈, 『4일간의 자유』 『엘리자베스의 노트』 『긴 침묵』 등이 있다.
그린이 구분선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1995년 한국출판미술대전에서 황금도깨비상 장려상을 수상했다. 『알콩달콩 슬기주머니』 『빛나는 솜씨, 뛰어난 재주꾼들』 『오천 년 지혜 담긴 건물 이야기』 『성급한 오리너구리 우화』 등에 그림을 그렸다.
옮긴이 신선영
고려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다. 『꼬마 니콜라』 『이름 보따리』 『내 입을 이만∼큼 크게 만들어 주세요』 『새 가면은 어디에 있을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