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의 아련한 경계에 서, 추억을 곱씹는 동양적 낭만주의자
해설을 쓴 시인 이승하 교수는 줄곧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에 내재돼 있는 슬픔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슬픔의 기원을 집에서 찾고 있다.
그 창문에서 저녁을 보았네/새들이 물고 온 노을과 어두워가는/가문비나무숲을 보았네/디귿자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쌀을 일던 어머니/반쯤 열린 대문 밖 삐그덕 들어오던 어둠을 보았네/백일홍 시든 꽃밭을 보았네/지게꾼처럼 무겁고도 느린 저녁/교회 종소리는 언제나 서쪽에서 들려오고/어디선가 돌아와야 할 사람 기다리는/빈집의 불빛들만 보았네/종일토록 낮은 처마 밑에 엎드려/우두커니 선 전봇대와 지붕 위를 건너오는 바람/세상의 모든 저녁들을 보았네 --「서쪽으로 난 하늘」 전문
쌀을 조리로 일어야만 밥을 할 수 있던 어린 시절, 마당에 쭈그리고 앉은 어머니와 백일홍 시든 꽃밭, 교회 종소리, 빈집의 불빛, 우두커니 선 전봇대…… 파스텔로 아련하고 흐릿하게 그린 한 편의 풍경화 같은 위의 시는, "어디선가 돌아와야 할 사람 기다리는/빈집의 불빛들"에서 그 쓸쓸함의 극치에 다다른다. 이는 불도 켜지 않고 사는 이웃집 할머니의 집(「저 집」), 푹신한 봄날을 연상케 하는 솜틀집(「솜틀집」), 어머니의 슬픔이 묻혀 있는 집(「장독대가 있던 집」), 마음의 골목 맨 끝에 우두커니 떠오르는 집(「호박등」) 등 그의 시에 그려진 다른 집들과 같이 "외로움이 너무 환해/불을 켜기도 힘들었던" 슬픈 집이다. 그래서 그 집이 놓여 있는 풍경도 고즈넉하고 한편 을씨년스럽다.
가족 간에 정과 체온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집의 일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외롭고 쓸쓸한 집의 기억을 안고 있어서인지, 시편들 곳곳에서는 슬픔과 쓸쓸함, 외로움의 정서가 한없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시인이 그려내는 풍경도 객관적 사실을 표현한다거나 독특한 소재를 끌어온다거나 확실한 주제를 제시하는 대신, 한껏 쓸쓸하게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슬픈 감정을 독자에게 전한다. "추억을 곱씹는 동양적 낭만주의자"라는 평가는 여기서 기인할 것이다.
한편 그런 슬픔은, 자그마하고 애틋한 희망을 키우기도 하고 돌보기도 한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주던 가문비나무/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습니다 --「하늘색 나무대문 집」 중에서
슬픔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으면 한없이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영혼이 정화되는 개운함이 느껴진다.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의 슬픔 속에 한동안 머물고 있다가 어느 순간 햇빛이 눈부시게 다가온다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2003년 4월 4일 발행
*ISBN 89-8281-648-8 02810
*시집 판형(128*280)/104쪽/값 5,000원
*담당편집: 장한맘(927-6790, 내선 202)
"수정처럼 투명한 네 눈물이 햇빛과 만나는
저 슬픔이 눈부셔
새들은 그 공중을 지나가다가
그만 눈이 멀어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