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가 박현욱의 신작 장편소설
2001년 『동정 없는 세상』으로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현욱이 두번째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오로지 동정(童貞) 딱지 떼는 일에만 골몰하는 고3 십대의 성(性)의식을, 밝고 가볍고 건강하게 그려내어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작가는, 새 장편 『새는』에서 예의 그 밝고 경쾌한 문체를 유지하면서 오늘의 삼사십대의 모든 어른들이 겪었을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rewind ◀◀
『새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구성방식이다. 『새는』의 구성은, 잊어버리고 있던 개인용 편집 테이프를 다시 찾아서 듣는 과정과 정확하게 겹친다. 소설은 되감기(rewind) 버튼을 눌러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1973년부터 1978년 사이에 발표된 송창식의 노래 열 곡과 산울림의 노래 한 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를 들은 후, 정지(stop) 버튼을 누르고 전원을 끄는 것(power off)으로 마감된다. 이러한 구성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동식은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이 노래 다음에 저 노래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그 어떤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노래를 고르고 순서를 배열하는 과정 그 자체가 그 당시의 내면을 기록하는 내밀하면서도 원초적인 글쓰기였을지도 모르며, 소설쓰기가 지나간 시절의 테이프 듣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작가 박현욱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지나가버려서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시절이 낮은 음성으로 걸어오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그럼 이제 지난 시절의 유행가를 녹음해놓은 테이프 같은 우리의 기(추)억을 거슬러올라가보자.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
먼저 배경은, 1980년대 중반 지방 중소도시의 고등학교. 주인공 은호는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난한 집안의 남학생이다. 반찬은 늘 김치 한 가지, 죠다쉬 청바지에 나이키 운동화는커녕 프로월드컵 운동화 한번 신어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데다 공부는 꼴찌를 다투며 지독한 음치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실에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아이"가 바로 은호이다. 집도 부자고 공부도 잘하는 반장 민석, 집은 잘살지만 공부는 지지리 못하는 호철, 집도 가난한데다가 공부마저 못하는 은호와,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으며 교양에 대한 관심도 남다른 두 여학생 은수와 현주, 다섯 명이 이끌어가는 소설의 서사는 은수·은호·현주 사이에 잠재적으로 형성된 연애의 삼각형 구도 위에서 전개된다. 이 삼각관계에 대해 김동식은 은수·은호·현주의 자리를 각각 태양·지구·달에 비유한다. 은호의 시선이 태양처럼 빛나는 은수를 향하고 있다면, 현주는 은호의 주변을 맴도는 달과 같은 조력자라는 것이다.(작품 안에서 현주는 은호의 훌륭한 기타 합주자이며, 또 훌륭한 과외선생님이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사건은 은호의 사랑이다. 체육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은수의 모습에 은호가 넋을 잃을 정도로 매혹당해버린 것이다. 이제 은호는 체육시간이면 남모르게 줄곧 은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눈으로 사진을 찍어서 일 주일 내내 그녀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떠올린다. "사귀지 않아도 멀리서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은호가 가진 열망의 전부였다. 그애의 눈에 띄기 위해 그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기타학원에 다니기 위해 신문배달을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기타 연습에 할애하고, 멋진 기타 연주로 학교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며 1학년을 마친 은호의 다음 선택은 은수가 활동하는 문예반. 2학년 내내 카뮈의 『이방인』이나 카프카의 『성』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는다. 그사이 자신감을 얻은 은호는 은수에게 고백을 해보지만 이어지는 은수의 대답. "우리 이제 고3이야. 대입 시험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는 공부다. 고3 동안 필사적으로 공부한 은호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합격한다. 그리고 은수를 만나지만 되돌려 받은 말은 "미안해." 자신을 향한 현주의 도움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우정 이상의 감정을 가지기는 어려운 상황. 셀 수 없는 소주병과 더불어 사랑과 우정이 엇갈리며, 그렇게 그렇게 한 시절은 마감된다.
작가는 "그 시절의 평범한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평범한 기억은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이 된다.
개인용 편집 테이프를 되감아 듣는 경험을 작품의 구성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새는』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 시대의 성장소설이다. 자신이 화자이자 관찰자이며 주인공이자 조연이던 시절의 이야기, 삶이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절의 이야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는』은 196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녔던, 386 중후반 세대들의 허구적 자서전인 셈이다. 문단을 통해 그다지 많은 작가를 배출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자기 시대의 경험에 대한 문학적 기억도 풍부하게 축적하지 못한 세대를 위한 기록인 것이다.(김동식, 문학평론가)
* 2003년 3월 28일 발행 | ISBN 89-8281-651-8 03810
* 신국판 변형 | 288쪽 | 값 8,000원
* 담당 편집 | 조연주, 이상술(내선 213. 204)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간다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가 박현욱 신작소설
갤러그, 프로야구, 나이키 운동화, 죠다쉬 청바지......
그 시절의 모든 우리에게 바치는 순정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