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세, 등단 18년, 산문집 1권, 짧은소설집 1권, 장편소설 4권, 소설집 5권
신경숙이 다섯번째 소설집을 묶었다.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18년 만의 일이다. 짧은소설집까지 포함한다면, 소설책으로는 열 권째이다. 그 각각의 책들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신경숙 소설은 이제 우리 문학사에 소중한 개성으로 자리잡았다. 신경숙 소설의 특징이라 할 어떤 흐름이 있고, 신경숙의 문체라 할 독특한 빛깔이 있고, 신경숙이 바라보는 어떤 것, 그의 말을 빌자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응시가 있고, 아무튼 신경숙 소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확실히 있고, 그것이 이제는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류보선은 "신경숙 소설은 어느새 또다른 영토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는 류보선의 해설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재난의 강물에 스스로를 던져 인간의 흔적을 길어올리는 언어!
편집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책 곳곳에 넘실대는 물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물들은 단순한 소재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작동하고 있다. 아마도 신경숙은 물, 땅 속으로 아득히 이어져 우물로 솟아나는 물, 복개되어 콘크리트에 갇혀 흐르는 도랑물, 악어(다방 여자의 무덤이자 사원)가 잠겨 있는 물, 옛 항아리 속의 물, 인간의 도시를 휩쓸어버리는 홍수의 물 등을 통해 인간의 생과 세상의 괴로움과 덧없음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숙의 문턱을 넘어선 신경숙 소설의 새로운 미학!
이번 소설집에 담긴 신경숙의 소설세계는 분명 이전의 소설집들과는 다른 무늬를 띠고 있다. 그것이 류보선의 지적처럼, 친밀성의 부재, 관계의 단절 혹은 고독으로 현상하는 현대인의 불행한 실존을 다루는 신경숙 소설의 한 흐름과,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의 그 기억, 아우라, 풍경을 전경화하고 있는 또다른 흐름이 이 소설집에서 하나로 엮여들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각기 외따로 있거나 보완하기도 했던 두 개의 흐름이 이 책에서는 서로 격렬히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한층 깊은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확실히 신경숙 소설은 변모했고, 새로운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전의 그의 작품에서 고향은 삭막한 도시의 삶에 지친 작중 인물들을 푸근하게 감싸주던 공간이었지만, 이 책에서의 고향은 이제 이전의 고향이 아니다. 그것은 "노란 달을 품고 일렁이던 우물"이 메워져서 이제 아무것도 품을 수 없고 아무것도 낳을 수 없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우물에 일렁이던, 그리고 또랑을 정겹게 흐르던 추억의 물들은, 갇혀 신음하거나 서러운 넋을 품거나 무덤을 품은 물로 변모했다. 작중인물들이 모두 혼자 살거나 혼자나 다름없이 사는 삭막한 단절의 이미지로 일관하고 있는 점도 분명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다.
* 초판 발행 | 2003년 3월 4일 발행
* 신국판 | 296쪽 | ISBN 89-8281-643-7 03810
* 정가 | 8,500원
적실 듯, 스밀 듯, 넘칠 듯
도도하게 흐르는 아름다움
당신은 돌아온 새 같다
낯설고 먼 땅을 돌아돌아
이젠 어디에나 깃들일 수 았는 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