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인생, 그 지난한 일상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
청배는 열아홉 살이다. 작가의 말대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인간이 어른이 되는 경계에 선 나이다. 『지붕 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열아홉 살 당찬 청배가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영악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무능력한 천둥벌거숭이 어른들과 만나 살아가는 일 년여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특정한 직업 없이 청배가 내는 십오만원 월세로 생활하며 가끔씩 사람들에게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쳐주거나 음악다방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등의 일로 소일거리를 하는 청배의 룸메이트 시인 어홍배, 지하철 회현역 지하도에서 구걸을 하는 회현동 아저씨, 그리고 착하디착한 아랫집 귀뚜라미 아가씨. 이렇게 네 사람과 청배가 데리고 들어온 개 베토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은 읽는이의 가슴 한켠을 조용히 흔들어놓는다.
남루하고 보잘것없는 인생들이지만, 가진 것 없고 지난한 일상이지만, 그들의 삶에 비추어 더 행복하고 더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을까.
자기들만의 옥상 테라스에서 별빛을 받으며 생일 파티를 열고, 식목일을 기념해 어린 벚나무를 심고, 빨간 가죽으로 손수 만든 가방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나는 등 네 사람의 하루하루는 여유롭고 편안하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 천둥벌거숭이들에게 왜 상처가 없을까마는, 허물없이 지내는 네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들춰내어 쓸데없이 위로하려 하지 않고, 그냥 보아 넘기면서 그 상처를 보듬는다.
문득, 우린 지붕 위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 안, 불쾌한 서로의 몸이 밀착되는 가운데 간밤의 과음을 짐작케 하는 땀냄새, 아침 식탁에 올라왔을 된장찌개, 왠지 역하게만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뒤섞인 그 안에서, 정신없는 오후 잠깐 넋을 놓고 희뿌연 창 밖을 바라보다가, 잠들기 전 이유 없이 새어나오는 한숨을 쉬다가, 문득 말이다. 왠지 내일을 계획하기보다는 오늘의 내가 그저 하찮고 보잘것없게만 느껴지는 그때, 하지만 더이상은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을 것 같은 그때. 그때 작가는 가만히 속삭인다. 지금의 내 삶에도 넘치도록 많은 의미가 있다고, 지금 내 모습 이대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때다.
동화의 삽화는 소설가 이제하가 그렸다. 조금은 모자란 듯, 조금은 흐트러진 듯 제멋대로인 붓 터치는 지붕 위의 사람들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그의 삽화 속에 녹아 있는 또 한 사람의 천둥벌거숭이, 지붕 위의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초판 발행/ 2002년 7월 11일
*ISBN/ 89-8281-538-4 03810
*국배판/144쪽/값 7,500원
*담당편집/ 김현정 조연주 (927-6790, 내선 204,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