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바람을 담는 집』을 필두로 시작된 문학동네 ‘김화영 문학선집’의 네 번째 권으로 예술기행문을 담은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이 출간되었다. 김화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유럽의 고성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시간과 지상의 삶,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과 문학 사이의 비밀을 경이롭게 터뜨린다. 예술기행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젊은 날의 열정에서부터 현재의 사유세계까지를 총망라하고 있는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은 김화영 문학의 행로를 따라가는 눈부신 비밀의 열쇠가 될 것이다.
여기에 묶은 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한때 출판되었다가 사라지고 없는 작은 책 『예술의 성』 속의 어떤 글처럼, 30여 년 전에 쓴 것도 있고 최근에 쓴 책도 있다. 더러는 조금씩 손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 글 속의 장소들은 거의 대부분 두 번 혹은 그 이상 찾아가보았던 곳들이다. 그 장소의 소개나 감상도 기록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는 그 당시 내 삶의 순간들이 부유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 북쪽 브르타뉴에 있는 샤토브리앙의 콩부르 성이나 발자크의 사셰 성 같은 곳. 나는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우회를 해서라도 기어이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여행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그 마을이나 숲속을 그냥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무슨 특별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강요한지는 않고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육중한 성채나 유물이나 거목 못지않게 작은 풀꽃, 소똥, 시든 잎새, 수상한 저녁의 빛,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며 담장 밑을 호젓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나의 현재와 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본문에서
여행, 그 흐르는 삶
0. 돌과 꽃
작가의 예술기행은 1974년 4월 하순의 어느 날, 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의 이미지」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찾아간 카뮈의 무덤가에서 시작된다. 이국의 낯선 소년이 건네준 수선화 한 다발을 무덤에 바치며 "꽃과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있다"라고 말하는 젊은 예술가. 그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는 황혼의 시간, 홀로 길 위에 서 있는 순례자가 지평을 향하여 멀리 던지는 시선의 끝에는 항상 성이 서 있음을, 너무 밝은 대낮의 빛, 너무 합리적인 이성의 빛을 받으면 간데없이 사라지는 예술의 성이 서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여정은 이제, 저마다의 시간의 파도로 짓는 성을 찾아 떠나게 된다.
Ⅰ. 예술의 성
오노레 뒤르페로 하여금 "그대들은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스스로의 속에 죽어서 타인의 속에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게 한 『아스트레』의 요람 바스티 뒤르페, 프랑스 고전주의의 엄격한 풍토 속에 호수와 안개 낀 골짜기와 몽롱한 감정의 주어(主語) 없는 목소리를 도입한 낭만주의의 대시인 라마르틴느의 생 푸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막을 여는 프루스트의 콩브레, 샤토브리앙으로 하여금 후일 낭만주의를 대표하게 될 소설 『아탈라』『르네』를 쓰게 한 "마치 고딕식 왕관 위에 놓인 보닛 모자 같은" 지붕의 샤토브리앙, 『골짜기의 백합』을 낳은 발자크의 사셰 성…… 그리고 마침내 삶의 마지막 성채인 페르 라셰즈 묘지에 바치는 한 다발의 꽃. 돌과 꽃에서 시작된 성의 순례는 또다시 돌과 꽃에서 끝을 맺는다.
Ⅱ. 보바리를 찾아서 : 현실과 허구 사이로 난 오솔길 다시 예술기행을 시작하며 작가는『마담 보바리』를 탄생시킨 플로베르를 생각한다. 소설의 인물들을 탄생시킨 실제 인물들과 그 시대를 반추하고, 작품의 배경이 된 리Ry 마을, 그곳에 서 있는 르 보바리 식당, 플로베르 창작의 산실인 크루아세와 루앙, 그리고 부이예, 뒤상과 함께 플로베르가 누운 모뉘망탈 공동묘지를 만난다.
Ⅲ. 파기 기행
파리로 돌아온 작가를 맞이하는 것은 개선문.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이면서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머물렀던 곳이며 일차대전 후 파리에 입성하는 연합군을 맞은 문이기도 했던 개선문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허망한 것 가운데 새겨놓은 영원"에 대하여 생각한다. 노트르담 사원은 예외없이 떠돌이 시인 그렝그와르, 15세의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 꼽추 카지모도, 육욕의 불과 신앙의 의무 사이에서 번민하는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의 영혼을 기억하게 한다. "왕의 궁, 왕비와 시인의 감옥"이었던 콩시레르즈리, 그리고 루브르를 비추고 있는 달빛이 처연하다.
무능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인도(Ⅳ)와 광대한 침묵 속에 찬란한 아침을 선사한 아프리카(Ⅴ)를 지나온 작가의 예술기행의 끝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길을 끝내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영원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준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 생명이라는 것을.
▶김화영 문학선
1. 『바람을 담는 집 : 김화영 산문집』
원숙한 사유와 폭넓은 세상 읽기가 아름다운 문체에 집대성된 에세이집.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삶의 태도와 폭넓은 예술적 체험, 탁월한 언어적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우리 산문문학이 도달한 정상의 경지를 보여준다.
2. 『문학 상상력의 연구 :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더이상의 카뮈론은 없다"는 최고의 평가를 받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 박사학위 논문. 한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고 깊이 있고 적확하게 파고든 문학연구서가 일찍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카뮈의 문학세계 전부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관찰한 기념비적 저서이다.
3. 『소설의 꽃과 뿌리 : 나의 시대의 소설가들』(제1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김화영 교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요로운 작품 읽기. 고요와 집중의 책읽기와 정교하고 미학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결합된 비평문학의 정수.
4.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참다운 성을 만나려면 항상 눈을 감은 채 찾아가야 한다. 성은 떠도는 사람, 찾아헤매는 사람, 떠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집이다. 성은 한쪽 발을 공간 속에, 다른 한쪽 발을 시간 속에 딛고 서 있다. 허물어진 벽의 이쪽은 과거요 저쪽은 미래다. 너무나도 오래되어 완전히 소진되고 만 기억의 먼지, 그 먼지가 마침내 빛 밝은 허공 속으로 떠오를 때 그것을 우리는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여기에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찾아갔었으나 눈으로 보지 못한 또하나의 성 이야기이다. 굳게 잠긴 방의 이야기, 허물어진 성벽의 이야기, 마음속에, 꿈속에 지은 성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것도 아직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찾아가는 성, 저마다의 시간으로 짓는 성, 그곳에 이르기 전에 성 밖 마을에 잠시 들렀던 이야기를 조금 했을 뿐이다. 이제부터 떠나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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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을 읽고 있다보면 어서 떠나라, 재촉하는 듯한 문장이 연이어 쏟아진다. 벌떡 일어나서 여행가방을 꾸리고 싶어진다. 한밤중이거나 신새벽이거나 상관없이 어서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낯선 곳의 역사와 풍경들이 눈앞에 현실인 듯 펼쳐지면 두런두런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나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귀에 쟁쟁하던 여행가방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그제야 멎었다. 몸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곳에 마음이 먼저 가서 휴식을 취했다. 저자의 열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신경숙(소설가)
-교정지를 읽다가 손바닥을 베었다. 어떤 종이들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읽는 이의 육체에 물리적인 상처를 남긴다. 피가 배어나오는 손바닥을 핥으며 나머지를 마저 읽었다. 선생은 카프카와 보바리, 위고와 헤밍웨이에게로 떠나고 나는 그가 써놓은 텍스트 속으로 떠난다. 그가 이른 곳에 끝내는 다 가보지 못할 것 같아 질투가 난다. 질투하며 계속 상처난 손바닥을 핥는다. 벌컥 아파트 창문이 열리며 조간 신문이 들어온다. 차가운 신문을 허벅지에 올려놓자 그가 인도와 케냐, 루앙과 더블린의 거리를 다녀왔다는 게 문득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묘하다. 신문을 펼쳐들면 이젠 그 속의 세상이 낯설다. 정말이지 묘한 일이다. 김영하(소설가)
담당편집 : 김현정(02-927-6790, 내선 217)
여행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그 마을이나 숲속을 그냥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무슨 특별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강요한지는 않고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육중한 성채나 유물이나 거목 못지않게 작은 풀꽃, 소똥, 시든 잎새, 수상한 저녁의 빛,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며 담장 밑을 호젓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나의 현재와 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