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한 시인 전남진의 첫 시집 『나는 궁금하다』가 출간되었다. 시인 스스로 "볼품없는 모습으로,/그래서 가장 치열한 모습으로,/세상을 견뎌나가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냥불 같은 온기"(자서)라도 되기 바란다고 밝힌 만큼 이 시집은 시종일관 눈 위에 뿌려진 연탄재, 뒷골목의 노점상 노인, 전단을 내미는 허리 굽은 할머니, 화분에 향기를 묶인 꽃, 지하의 걸인 등 소외받은 사람과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상처받은 사연들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을, 떠들썩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몸짓으로 차분하고 조용하게 보여준다. 이 스산함, 쓸쓸함 속에 전남진이 갖는 힘의 원천이 있고 이 스산함, 쓸쓸함 속에서 빛이 나오면서 문득 시가 활기차진다.(신경림)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시정신의 일면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이성부 시인의 말처럼 "우리 어려운 시대에 굳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증표라고 여겨진다."
슬기롭기와 순진하기의 경계에서
전체가 4부로 엮어진 이 시집의 제1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바쳐진다. 그들은 떠돌이들이며, 차에 치여 죽는 노점상들이고 연탄을 사러 가는 산동네의 여자들이고 실업자들이고 노숙자들이고 눈물을 팔아 연명하는 사람들이며 집 없는 사람들이다. 제2부는 가난한 회사원인 시인과 그를 닮은 사람들이 도시의 밀림 속에서 자기 내면의 한 풍경을 갑자기 조우하는 시간의 기록들이다. 제3부는 시인의 고향과 그곳에서 성장한 어린 혼의 이야기이며, 가난과 생존의 고통 덕분에 뼛속 깊이 자연을 간직하게 된 사람들의 이력들이다. 제4부는 시인이 그 아내와 딸에게 바치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에게 바치는 연가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그의 시를 슬기로운 성격과 순진한 성격으로 나누고 있다. 슬기롭다는 것은 성숙했거나 성숙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삶에는 일관성이 있기에 은혜와 원한의 감정을 뼛속 깊이 간직하며, 과거와 미래의 무게가 항상 그의 현재의 삶을 누르고 있기에 시간과 역사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반면에 순진한 자는 영원한 소년으로 남는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가 그의 현재적 정서를 크게 흔들지 못한다. 그는 은혜를 저버리며 원한의 감정이 아무리 높아도 마음의 밑자리에 남겨두지 않는다. 전자가 현실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반면에 후자는 벌거벗은 단면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아크릴 상자 칸칸 애벌레처럼 채워진 넥타이를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아주머니가 하루에 몇 개를 파는지, 안흥찐빵 수레를 덜덜 밀고 출근길 찾아다니는 어머니 나이쯤 아주머니의 찐빵을 가족들이 저녁 대신 먹는 것은 아닌지. 옷에 묻은 얼룩 지우는 약 파는 전철 아저씨 하루 종일 묻은 때도 그 약으로 지워지는지. 자리 싸움 밀려 아파트 뒷길로 등불 내다건 구이 아저씨의 꼬치가 식기 전에 팔리는지. 둥글게 떼어낸 호떡 반죽을 꾹꾹 누르는 기름종이 같은 손이 겨울날 장갑 없이도 왜 트지 않는지. 뒤집히고 구르고 또 뒤집히며 사각상자 안에서 몸부림치는 장난감 자동차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저씨가 자기 삶이 저렇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궁금하다」 중에서
시집 『나는 궁금하다』 전반에 드러나는바, 시인은 사람살이의 도리를 지키며, 가능한 한 시간과 공간의 얼개 속에서 세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노력의 끝에는 항상 분노 회한이 복받치는 그리움이 기다리고 서 있고 이 감정의 벽 앞에서 시인은 문득 순진한 사람이 된다. 결국 시인은 "슬기"와 "순진"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다.
푸념하듯 자신을 고백하려 드는 진실들은 나부대는 것들 속에서 쉽게 표현될 말을 얻지 못해 흔히 패배주의의 모습을 취하고 저 자신을 상투화하기 쉽다. 전남진의 시에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진실은 역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미학적 형성, 이것은 분명 그의 시가 드러내는 복합적인 인격과 그 내부의 따뜻하면서 치열한 정신에 기인할 터이다.
▶이 책에 대하여
{나는 궁금하다}가 보여주는 풍경은 화려하거나 현란하지가 않다.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늙어버린 리어카"처럼 스산하거나 "가난한 동네 늙은 의사의 낡은 청진기"와 같이 쓸쓸하다. 그래서 몸짓도 떠들썩하거나 요란하지가 않고,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읽어가노라면 바로 이 스산함, 쓸쓸함에 이 시인이 갖는 힘의 원천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스산함, 쓸쓸함 속에서 빛이 나오면서 문득 시가 활기차지는 것이다. 시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이 시집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신경림(시인)
가난하고 볼품없는 것들의 삶이 아름답다. 그 안에 감추고 있는 상처받은 사연들이 아름답다. 눈 위에 뿌려진 연탄재, 뒷골목의 노점상 노인, 전단을 내미는 허리 굽은 할머니, 화분에 향기를 묶인 꽃, 지하의 걸인……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사람과 사물에서, 전남진은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시정신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시는 우리 어려운 시대에 굳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증표라고 여겨진다.―이성부(시인)
*2002년 4월 18일 발행/ISBN 89-8281-506-6 02810
*120*185/176쪽/값5,000원
*작가 연락처:Junnamjin@hanmail.net
*담당편집: 김현정, 장한맘(927-6790, 내선 217, 214)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래서 가장 치열한 모습으로,
세상을 견뎌나가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부끄러운 시집이 성냥불 같은 온기라도 되기를...
- - 자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