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파리의 카페 로스탕에서 글을 쓰는 작가
노벨문학상 후보이자 세계적인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학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단상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이자 알바니아의 ‘문학 대사’ 이스마일 카다레의 에세이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이 출간되었다. 고등학생 때 시인으로 데뷔한 뒤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소설, 시,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작품을 발표해왔다. 2014년 알바니아에서 출간된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작가의 에세이로, 1970년대 처음 파리에 방문했던 일부터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 장소인 카페 로스탕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고국 알바니아의 문학과 역사, 『맥베스』를 향한 애정, 노벨문학상을 둘러싼 소동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경 등 작가의 솔직한 속내와 깊이 있는 단상을 엿볼 수 있는 10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파리와 티라나의 카페에서 보낸 나날
처음 수록된 에세이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파리와 함께 시작한다. 꿈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도시 파리에 이스마일 카다레가 첫발을 디딘 것은 1970년 『죽은 군대의 장군』이 프랑스에서 출간되면서였다. 공산주의 국가 알바니아에서 글을 쓰는 작가에게 당시 파리는 “이백 개의 도장이 찍힌 백 개의 초대장이 있더라도” 오기 힘든 곳이었는데, 작가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비(非)초대장” 덕에 이 도시에 오게 된 것이다. 그후 보이지 않는 끈이 작가와 도시를 연결한 듯 작가는 파리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고국에서 더는 책을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자 1990년 프랑스로 망명을 결정한다.
뤽상부르공원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카페 로스탕은 쥘리앵 그라크 같은 작가도 자주 방문했던 곳으로, 카다레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백 쪽의 원고를 집필했다. 책에는 카페 로스탕을 작업실 삼아 글을 쓰던 시기에 만난 콜레트 D.와의 일화나, 뤽상부르공원에서 비슷한 시간에 산책하며 자주 마주친 파트릭 모디아노와의 불발된 약속, 역시 알바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와 그리스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와 협업한 이야기 등 여러 지성인들과의 대화와 교유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파리의 카페에서 시작된 글은 카다레의 고국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카페로 이어진다. 「카페의 나날」에서 작가는 고등학생 때 출간한 시집의 원고료를 받아 처음 친구들과 카페에 갔던 일화를 풀어놓는다. 도시의 가장 유명한 카페에서 코냑을 주문한 사소한 일은 젊은이들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 “더러운 돈”으로 “퇴폐적인 음료”를 마신 불미스러운 행위로 해석되어 급기야 정치적 소동으로까지 번진다. 또한 일간지에 발표한 ‘술의 나날’이라는 글이 출판 금지 조치가 내려졌던 사건을 써내려가며 그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한다.
이스마일 카다레 작품세계의 근원
이 에세이에서 작가는 고국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며 자신의 문학 원류인 알바니아의 문학과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프레드를 위한 어느 4월」에서는 혹독한 시대를 살아가며 부침을 거듭한 알바니아 시인 프레데리크 레슈피아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알바니아문학의 새싹들」과 「악몽」에서는 발칸 지역의 분쟁과 다툼 속에서 여러 국가의 지배를 받다가 독재 체제의 억압 아래 놓였던 알바니아의 비극적인 과거와 현재를 깊이 있게 서술한다. 농담을 섞어가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써내려간 글들을 읽다보면 카다레의 작품세계―알바니아의 역사, 전설, 민담, 그리고 독특한 관습법이 서사의 배경과 중심 주제가 되고, 비극에 유머를 더해 ‘해학적인 비극’을 창출해내는―가 어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카다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에 품고 있는 깊은 애정도 아낌없이 표현하는데, 이는 “발칸의 외딴 구석에서, 글을 잘 쓸 줄도 모르면서” 셰익스피어에게 홀려, “손가락에 잉크를 잔뜩 묻힌 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옮겨 적으려고 시도한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특히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전 세계가 함께 읽는다는 사실에 매혹되어 하나의 문장이 서로 다른 언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본다. 언어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탐독하는 재미를 따라가다보면 카다레가 얼마나 문장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매만지는 작가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카페에서 옆자리 여자들이 나누는 대화에 신경이 쓰여 글을 쓰지 못한 사소한 일화부터 조작된 심문조서에서 체제 전복 음모에 가담한 인물로 거론되었던 위험한 경우까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과거의 편린들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 이어져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세계적인 작가를 온전히 보여주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완성된다. 천상 이야기꾼인 작가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발휘된 이 자전적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냉소적 유머에 킬킬거리거나 코끝이 찡해지거나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한편, 어느새 작가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 이스마일 카다레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옮긴 백선희 번역가의 말처럼 마치 “화창한 봄날 아침에 창밖으로 뤽상부르공원이 보이는 카페 로스탕에 앉아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거장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추천사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빛나는 혜성은 일단 책을 덮은 후에도 독자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뒤쫓는다. 이 혜성이,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가, 가장 접근하기 힘들고 가장 폐쇄적인 나라, 독수리의 나라에서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의 패러독스다. _르몽드
이스마일 카다레는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현재 글을 쓰고 있는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다. _월 스트리트 저널
카다레는 고골과 카프카, 조지 오웰에 비견되어왔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목소리와 세계관은 그가 나고 자란 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_인디펜던트
카다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_르피가로
▶ 본문에서
언젠가 카페 로스탕에 관해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게 너무 익숙해져서,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특정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생겨났는지 기억해낼 수가 없다. 그곳은 뉘우침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이랄까, 늘 곁에 있지만 우리의 관심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혹은 그런 것으로 보이는 일생의 동반자를 향해 느끼는 감정을 떠올린다. _본문 42쪽
설명할 길은 없지만, 그 시절엔 글만 쓰기 시작하면 모든 것과 모두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불손하다거나 혹은 그저 조리 없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것은 말하자면 음험한 격노였다. 이유 없이 ‘될 대로 되라지’ 하는 태도. 심지어 분열하듯 번지는 방어막 같은 것.
아마도 분열이라는 말로 그걸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이상한 시기 동안 내 안에서 서로 맞서던 두 삶이(흔히들 말하듯 두 개의 현실이)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게 뒤얽힌 결과임이 분명했다. _본문 80쪽
카페에 대한 나의 끌림은 애초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이 일 이후로 굳어졌을까?
나는 늘 그런 끌림을 느껴왔다고, 달리 말해 본능적으로 느껴왔다고 믿고 싶었다. 게다가 인간 삶의 한 부분은 그렇게 모든 것 바깥에서, 생각이 윤곽을 그려줄 세월을 기다리며 잠재적 상태로 남아 있지 않은가. _본문 102쪽
사랑이 후퇴하고 무관심에 자리를 내주던 나라에서는, 그리고 그런 시기에는, 아마 모두가 까닭도 모른 채 무언가를 상실하면서 고통받는다. 그들 가운데 유난히 다감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영영 부러져버린다. _본문 180쪽
나는 『맥베스』를 알바니아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읽을 생각에 오랫동안 설렜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서로 다른 수십 개의 언어 속에 구현되었다는 사실이, 그런 고갈되지 않는 매혹을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였다. _본문 294쪽
그 일은 10월과 동시에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조금 더 일찍, 9월 마지막 주에 벌써 시작되며, 첫번째 목요일이 어떤 날이 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 소란이 잦아들기를 바랐다. 매복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지치고, 스캔들을 건질 희망은 잦아들며, 반대자들도 사라지기를.
헛된 희망이다. 태풍 전의 고요 같다. 금세 어디선가 번개가 번쩍일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한 가지 구실을, 잘라낸 신문기사를, 반쯤 생기다 만 논쟁거리를 찾아낼 테고, 매년 그러듯 모든 소동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번 노벨상은…… _본문 4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