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거치지 않고 쏟아낸 이야기, 역린과 말초를 동시에 건드리다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 사이에서 ‘빻았다’는 말을 재고하다
유쾌한 성인웹툰과 고약한 블랙코미디로 두터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한 안나래, 김달, 스미마 작가가 은밀한 주제로 만났다. 비엘부터 중후한 19금 웹툰 <미완결> 등 장르를 오가며 어른용 이야기를 그려온 안나래 작가, <환관 제조일기> <레이디 셜록>과 같은 과감한 초기작에서 현재까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풍자극을 그리는 김달 작가, <그녀의 사적인 날들> <선생님의 은혜> 등의 진성 성인웹툰으로 웃음과 꼴림을 동시에 선사하는 ‘성인만화가’ 스미마 작가. 이들에게 청탁한 단편 원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한번쯤 그려보고 싶었던 것, 혹은 그동안 그리고 싶었지만 못 그렸던 것을 그려주세요. 무엇도 재지 말고,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것으로요.’ 그렇게 그려져 모인 단편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런 소재는 좀…’이라는 주변의 뜨악할 반응에 묵혀두었던 이야기, 상업성을 고려하느라 그리지 못했던 이야기 등, 무엇도 거치지 않고 쏟아낸 수작들이 모였다.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를 가르고 후자를 ‘빻았다’고 이야기한다. 나쁜 만화와 빻은 만화는 같은 말일까. 빻았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빻았지만 재밌는, 빻아서 재밌는 세 작품은 그러한 질문을 가뿐히 넘어 독자들의 말초와 역린을 마구 건드린다. 나만 보고 싶고 나만 봐야 할 것 같은 만화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열 명의 독자 대신 재미를 찾아 헤매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한 새 만화 브랜드 ‘빗금’
새 만화 브랜드 빗금은 수많은 독자 대신 먹이를 찾듯 재미를 찾아 헤매는 독자를 모시고자 한다. 이들에게는 확고한 취향을 반영하는 만화들을 선사할 예정이며, 마찬가지로 창작자와는 본인의 취향과 거침없는 발상을 담은 작품을 함께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빗금의 목적은 오직 재미의 추구. 『도덕적 해이』를 시작으로, 일본만화로는 흡혈귀 소녀와 인간 여학생의 기묘한 사랑을 그린 GL×코믹×액션×학원로맨스 『뱀피어즈』가 빗금의 라인업을 이어간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즐기고 싶은 만화를 보고픈 독자들은 빗금의 귀추를 주목해보자. (빗금 SNS 계정 : https://twitter.com/bitgeum_comics)
[수록 작품 줄거리]
『레퀴엠』 안나래
“나는 이제 고아야. 진짜 지옥에 갇힌 고아.”
엄마의 돌연한 죽음. 모친을 증오했던 마음에 죄책감을 느껴 목놓아 우는 딸 앞에 엄마의 남자친구가 나타난다.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는 말에, 그 얄팍한 선의와 다정함에, 그저 기가 찬다. 어린 딸을 대신하여 떠난 엄마의 자리를 함께 정리하는 사이 두 사람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진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버려졌다는 묘한 유대가 한 집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좁히는데… 그러던 중 엄마의 죽음이 밝혀진다.
『수학자의 폰즈상』 김달
“문명국가에서는 아이를 살해한 엄마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유능한 수학자 멜라니와 애슐리는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수학 연구에 집중한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필요하다는 멜라니의 요구에 클라라를 낳으나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일은 멜라니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멜라니는 무언가에 씌인 듯한 눈을 한 채 클라라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너만, 너만 없었으면…”
『어부와 인어』 김달
“아무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닌 게 분명해…”
하지메는 아버지를 죽인 죄로 ‘험난한 곶’에 유배를 간다. 유배지에서 오랜 시간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살던 그의 앞에 묘령의 인어가 나타난다. 비록 말은 하지 않으나 아름다운 그녀. 하지메는 인어와 먹고 자고(SEX) 생활하며 한없이 애지중지해준다. 이윽고 자신을 사로잡은 인어의 손길을 따라 바닷속으로 향하는데…
『구원은 당신의 손에서』 스미마
“그림의 떡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는 거 아냐?”
공장에서 일하는 마리는 가엘이라는 청년을 신입으로 맞이한다.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외양 덕에 가엘은 일약 여자 직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사이비 종교 시설에 오래 머문 탓에 고장난 상식과 언행으로 주변을 경악시킨다. 그런 가엘을 지켜보던 못생기고 뚱뚱한 마리. 이런 바보 녀석이라면 자신도 여자로서 그를 넘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