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문병욱』은 혼자가 익숙해진 아이들을 떠올리며 지은 이야기입니다.”
_이상교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있을 ‘병욱이의 손’을 떠올리며
『우리 반 문병욱』을 그렸습니다.”
_한연진
우리는 같은 반, 매일 보는 사이
새 학년 새 학기, 아직은 새로운 교실을 찾아가는 길도 같은 반이 된 친구들도 낯선 시간. 예지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말도 잘 하지 않고 매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는’ 문병욱이다. 주변 친구들의 말처럼 바보 같은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예지에게 어떤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가만, 그때도 병욱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던가?
나를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 너에게, 우리에게로
한국 동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인 이상교는 등단 이래 50여 년간 줄곧 작은 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담백하고 꾸밈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살펴 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한국출판문화상, 권정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리 반 문병욱』 역시 혼자이기를 선택한, 혼자가 익숙해진 아이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지은 이야기다.
병욱이는 소란하게 굴러가는 교실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가만히 걷고, 오해를 사도 말하지 않는 아이. 같은 반 친구 예지는 병욱이를 향한 ‘이상하다’거나 ‘바보같다’는 말들이 탐탁스럽지 않다. 그리고 모르는 소문 대신 병욱이를 ‘자기의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한다.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병욱이를 보는 예지의 마음이 소문의 중심에 선 병욱이를 우리 반의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딱 한 걸음씩 모여 달라지는 내일의 풍경
예지와 병욱이에게는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찰나이지만 두 아이는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보았던 순간을,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인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들이 직접 보고 느낀 그 친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우리 반 문병욱』은 각기 다른 나와 네가 모여, 우리가 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시원시원한 아이, 또래보다 셈이 빠른 아이, 하나에 몰두하는 아이, 차분한 아이...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모양으로 자라나 같은 반,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 그림책은 섣불리 편을 나누거나 얼렁뚱땅 하나로 묶여서는 될 수 없는, 여러 모양으로 퍼지고 또 여러 갈래에서 모여들어 만들어지는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비 온 뒤 더 선명해지는 풍경처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빛나는 내일
한연진 화가가 이번 책에서 새롭게 시도한 스타일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어지지 않은 테두리, 형태를 벗어나 서로를 침범하고 물드는 색과 패턴은 온새미로반 아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온새미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반 이름처럼, 아이들은 익숙하게 쪼개고 나누던 것을 새롭게 다시 본다. 친구라고 호명하고, 섬세하게 살피고, 관심을 물으며 아이들은 완고해 보이던 울타리를 넘어선다. 책의 가름선을 넘듯 생각보다 간단하게.
시작점은 딱 한 걸음만 내디디면 그곳에 있다. 서로의 ‘딱 한 걸음’이 모인 그다음의 걸음부터는 얼마나 사뿐한지 내일을 향해 페달을 밟는 병욱이의 시원한 표정이 말해 주는 듯하다. “내일 또 보자!”는 하루의 끝인사는 ‘우리’가 만들어 갈 내일에 대한 약속이다. 물에 젖은 흙이 새로운 꽃을 틔우듯, 비 온 뒤 세상이 더 선명해지듯, 아이들이 스스로 겪고 일어선 내일은 더욱 단단하게 빛나는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