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존중이 사라진 결혼 생활,
안락했던 가정은 가장 끔찍한 공간으로 변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미도리의 취미는 자신만의 공간인 주방을 정돈하는 것. 오렌지색 당근 라페와 파프리카 피클, 닭의 간으로 만든 리버 페스토… 남편과 먹기 위해 직접 만든 반찬들을 새하얀 냉장고 속에 정리하는 일은 그의 소중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시꺼멓고 짜디짠 반찬들을 막무가내로 보내오고, 미도리의 냉장고는 그의 요리보다 원치도 않는 시어머니의 반찬들로 채워져 간다. 자신의 공간과 즐거움을 침범당한 미도리. 일종의 시집살이를 멈추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하지만, 남편은 되레 어머니의 손맛을 운운하며 미도리가 정성스레 만드는 음식들을 폄하한다.
“매일매일 시꺼먼 쓰레기만 먹어야 했고,
쓰지도 않는데 시어머니가 보낸 조미료가 주방을 점령했고,
그이한테 지독한 짓을 당하면서도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 애써 그를 계속 용서했는데…“ 84p
굴욕과 수치.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 존중이 사라진 결혼 생활… 미도리는 분노한다. 마리아는 그 분노를 은밀하게 자극하며 미도리를 자신의 세번째 동료로 영입한다. 더욱 잔인하고 정교한 수법으로 살인의 천국에서 날뛰기 시작한 두 여자를 막기 위해 아케치 고로가 나서는데…
“오늘 코스의 메인 디시가 어떤 요리일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먹어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 나의 성격.“ 114p
수수께끼를 향한 남다른 ‘식성’으로 마리아를 저지하려는 아케치 고로. 그는 차례대로 자신의 용병들을 늘려가는 마리아와 점점 잔혹해지는 최후의 만찬을 막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무덤이 되어버린, 한때는 안락했던 가정. 그곳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아케치 고로는 초대받지 않은 성城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