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현실을 ‘핀셋으로’ 콕 집어 올리는 듯해서 가슴이 뜨끔하다.
그의 동시는 마치 다 완성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색종이 접기 같다."
_유강희(시인, 심사위원)
오늘 아침 열 시 나는 교실에 없죠
5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 본 일!
제10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작 『여름 아이』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최휘 시인의『여름 아이』가 출간되었다. 2012년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시작된 이후 10년, 김개미, 김륭, 김준현 등 기수상자들이 동시단에서 주목할 만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독보적인 수상작으로 손꼽힐 또 한 권의 동시집이다. 심사를 맡았던 김개미, 유강희, 이상교 시인은 “과장 없는, 그러나 충분히 드러난 아이의 천진함” “단선적이지 않고 심층적으로 대상을 파고드는 시선” “공들여 읽고 싶어지는 신선한 소재와 표현”을 이 동시집의 매력으로 짚어내며 『여름 아이』를 115편의 응모작 중 대상작으로 건져 올렸다. 무엇보다 한 작품 안에 “다정하고 발랄한 감성”과 “삶의 가혹함과 절망”을 함께 담아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 『여름 아이』는 동시문학에 당당히 첫발을 내디딘 최휘 시인의 작품으로, 지금껏 본 적 없던 “선명하고 탄성도 높은” 언어로 가득 차 있다.
“궁금하면 네이버 찾아보든가/ 귀찮으면 그냥 읽어 보든가”(「여름, 누구게」)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지며 44편 동시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 있는 ‘여름 아이’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병원 가느라 처음 결석한 날, 나 하나 쏙 빠진 교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의 부재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 생생하게 감각하는 아이의 당찬 기운이 동시집 전체를 감싼다.
눈 맞춘 모든 것에, 마음 머문 모든 것에
가지런히 놓아 보는 ‘여름’이란 두 글자
“읽고 나면 작품과 작품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한 마을에서
한 아이를 만나 한 계절 동안 이야기하고 웃고 울고 놀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_심사평에서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둘째 철. 봄과 가을 사이. 낮이 길고 더운 계절.’ 우리가 아는 여름의 정의는 대략 이러하다. 계절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되는 것이지만 저마다, 그리고 해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과 색채와 질감으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계절이 생긴다. 『여름 아이』는 한 아이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건너며 자신만의 ‘고유한 여름’ 속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이야기 동시집이다. 속도감 있는 문체와 재치 있는 시어들로 지루할 틈 없이 읽어 나가다 보면 호만천이 흐르고 이마트가 있는 동네에 살면서(「결석」), 글쓰기 하나는 잘한다고 자신하며(「여름, 야외 수업」), 머리맡에 책을 놓고 자는(「책 사용법」) 한 아이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아이의 곁에는 낚시와 술을 좋아하는 아빠, 여름 한철 복숭아를 따느라 바쁜 엄마, 아이를 만날 때마다 질문을 쏟아 내는 친구도 함께 여름을 지나고 있다.
너는 숙제가 많아서 팔 빠진 적 있니?
선율이가 말했어요
난 빠진 적 있어. 그런데 넌 왜 민트색을 좋아하게 된 거야?
선율이가 말했어요
넌 고양이가 귀여워? 강아지가 귀여워?
선율이가 말했어요
선율이를 만나면 우글우글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하느라
내 시간은 하나도 없어요
_「여름, 질문」 전문
이 동시집의 독특한 구성은 편편의 제목들에서도 드러난다. 밀려 있다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문제집 속 문제들(「여름, 숙제」), 술 취한 아버지의 비틀거림(「여름, 비틀비틀」), 오늘은 뭘 써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일기장의 백면(「여름, 일기」) 앞에 ‘여름’ 두 글자를 내려놓는 순간, 그것들은 한 계절 동안 나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었던 고유한 대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닿음에서 머무름으로 이어지게 하는 동시의 힘을 시인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렇게 ‘여름’이란 갈피를 끼워 넣으니 흐릿했던 일상은 색다른 공기를 지닌 ‘그날의 사건’으로 움튼다.
다독이고 다독여도 마음은 흙빛
마음에 고요히 드리운 빛과 어둠
아픔을 통과하는 찬란한 그늘의 시간
그날 밤, 달팽이가 나를 짊어지고 가는 꿈을 꾸었어요
장마가 끝나도록 달팽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멀리 가지 않을 거예요
여름이 끝나면 아픈 다리를 수술하기 위해
까무룩 멀리 가야 할 테니까요
_「달팽이」 부분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계절의 법칙을 따르는 듯 아이는 다음, 또 다음으로 나아간다. 온몸에 빨강을 칠한 앵두처럼 “다다다다” 힘껏 달리다가, 반복되는 일상을 “터벅터벅” 능청스레 걷다가, 개망초꽃 모가지를 “똑똑” 따 던지며 억지 걸음도 걷는다. 꽃 내음 가득한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이 아이는 다리가 아픈 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의 육체적인 병증은 이야기 곳곳에서 돌출되지만 그것을 말하는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어 통증은 대상화될 틈 없이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 파고든다. 이 담백한 돌출로 인해 아이와의 만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아이에게 여름은 “다리가 아픈” 계절이다. 아이는 다리를 자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다른 친구들처럼 물놀이를 할 수 없다는 울적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아픔의 시간을 묵묵히 통과하고 있다. 이 여름이 끝나면 “아픈 다리를 수술하기 위해/ 까무룩 멀리 가야” 하기에. 부모에겐 가장 바쁜 계절을 혼자 견뎌내야 하지만 통증에 매몰되지 않고 그날그날의 사건과 관계로 다채로운 일상을 꾸려 가며 회복과 치유를 향한 걸음을 이어간다. 곱창에 소주를 마시느라 돌아오지 않는 아빠(「여름, 일기」), “죽으면 어디로 가지?” 낮은 목소리로 묻는 봉희(「여름, 죽음」), 달리기를 잘하지만 느린 척 뛰는 선율(「여름, 술래」), 삐뚤한 책상과 의자만 남기고 부산으로 가 버린 태수(「여름, 태수」), 동생 모르게 눈짓으로 대화하는 언니들(「세상에서 제일 큰 웃음」)도 모두 저마다의 눈부신 낮과 어둑한 밤을 건너는 중이다. 복잡하고 찬란한 감정들을 꽃피우며 여름은 계속 흐른다.
“매미가 울어대고 깔끄러운 복숭아털이 여기저기 날리는 어느 날, 나는 복숭아밭, 여덟 명의 동네 친구, 네 명의 언니와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과수원에서 바쁘게 일하는 엄마 아빠와 사람들, 그리고 다리가 아파 혼자 집에 남겨져 있는 어린 내 앞에 도착했어요.” _최휘, 수상 소감에서
“내 문학의 처음은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픈 아이”라고 최휘 시인은 고백한다. ‘나’라는 개인을 통해 보편적 인간에 이르고자 했던 몽테뉴가 그러했듯, 시인은 치열하고 정직한 자기 탐구의 시간을 통과하여 ‘여름 아이’라는 혼자이면서 우리 모두인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덕분에 “대상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방식으로 독특한 언어 미감을 선사한다”는 심사위원의 말처럼 학교와 집, 동네, 심지어 꿈속까지 힘차게 뛰어다니는 아이의 가쁜 숨결이 시집을 읽는 이들에게까지 온전히 전해져 온다. 툭 툭 떨어지는 복숭아에서, 아무 데나 버려지는 수능 샤프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하기도 하지만 강포저수지의 하얀 구름 떼에서, 할머니의 묘안석 반지에서 오늘밤 꿈의 재료를 차곡차곡 수집하며 지금 이 여름을 살아가는 아이. 다양한 생명들이 여름의 태양 아래서 힘껏 자라나고, 그 생명들의 기운과 응원을 잔뜩 받으며 아이는 하루하루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다가올 가을도, 겨울도, 봄도, 그리하여 또다시 고유한 색과 모양으로 그려 나갈 여름을 기약하며.
알록과 달록이 쏟아지는 여름의 상
계절이 깊어 갈수록 차오르는 꽃 내음 풀 내음
뾰족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포근한 그림
혼자 우물우물 쭈물쭈물 집을 지키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웃을 줄 아는 ‘여름 아이’는 김규아 화가의 손에서 더 사랑스럽고 씩씩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혼자서 밀고 올라오는” 초록과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는” 분홍, “한 줄기 빛을 번뜩이”는 노랑과 “우르르 몰려나오는” 하양, 그리고 “토마토를 던진 것처럼” 하늘을 물들이는 빨강까지, 다양한 색들이 마치 아이의 여름을 살펴 주듯 제 존재감을 활짝 드러낸다. 화가의 기질을 가진 시인과 시인의 기질을 가진 화가가 만나 한 권의 다채롭고 향기로운 이야기 동시집이 탄생했다.
금화당 할아버지가 커다란 벽시계 뒤에서 걸어 나와요
뻐꾸기시계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까만 확대경을 써요
금화당 앞 화단에는 분홍 백일홍꽃이 활짝 피었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시계만 고쳐요
할아버지는 시계가 되고 시계는 할아버지가 되고
분홍이 금화당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분홍을 바라봐요
할아버지는 고장 난 시계를 살펴 주고
분홍은 금화당 할아버지를 살펴 주고
_「금화당 할아버지」 전문
■ 심사평
독자는 아프면서도 건강한 아이를 대면하면서 아이 편이 된다. 아이가 독자로 하여금 자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하는 것, 그러다 마침내 아이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이게 최휘 시인의 힘이다. _김개미(시인)
어린이의 현실을 ‘핀셋으로’ 콕 집어 올리는 듯해서 가슴이 뜨끔하다. 그의 동시는 마치 다 완성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색종이 접기 같다. _유강희(시인)
동시 쓰는 일에도 유행이 있다고 한다면 유행을 벗어난 낯섦이고, 낯섦이되 생경스럽지 않다. 공들여 읽고 싶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_이상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