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만화라는 눈부신 상상력, 흑백만화라는 다채로운 세계.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두 번째 이야기.
작년 첫 번째 단행본 『여자력女自力』으로 시작한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은 출판만화의 진흥과 단편만화의 매력을 추구하는 시리즈다. 웹툰이 장편 대서사시, 화려한 풀컬러, 끝없는 스크롤 등 무한한 자유와 대규모의 세계를 자랑한다면 테마단편집의 출판만화들은 ‘한정된 세계’ 속에서 가능한 또다른 재미와 감동을 만든다. 50~70페이지 내외의 짧은 스토리, 흑과 백, 148*210mm의 판형. 분량부터 크기까지 정해진 세계 속에서 오히려 창작자들은 눈부신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하는 이야기라면 더욱 능란하게, 새로운 이야기라면 더욱 과감하게. 이처럼 보석 같은 단편을 모은 테마단편집 시리즈가 흥미로운 테마, 새로운 만화가들과 함께 돌아왔다.
‘초능력’이 테마였던 『여자력女自力』에 이어 두번째 단행본의 테마는 ‘일탈’. 굴지의 명작, 웹툰 <연민의 굴레>의 재활용 작가는 노련한 개그로 형제자매의 땡땡이를 그렸다. 오빠의 이별 통보를 대신 전달하러 나선 도경과 언니를 향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동생 성하가 언니와 오빠를 대신하여 좌충우돌 이별가를 부른다. 『언럭키 맨션』 『죽여주는 복수선언』 『전야제』로 장르를 불문하고 다수의 작품을 그려온 약국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탈출한 K-장녀’라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단편을 통해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의 외형 등까지 새로움에 도전했다. 웹툰 <짝사랑 동아리>와 각종 단편, 패션 컬래버레이션 일러스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서글 작가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무녀와 그의 동생의 탈출기를 그렸다. 특정한 개념이나 사물 등을 의인화하는 단편만화로 유명한 각종모에화 작가는 ‘꿈’과 ‘우울’을 의인화한 단편만화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했다. 올해 봄 『안녕이 오고 있어』로 사랑받은 하양지 작가는 특유의 문학적 감성으로 도시 탐방기를 그렸다. 늘 지나쳐오기만 했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선 주인공이 만난 낯선 풍경들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저마다의 다섯 이야기를 묶은 단행본의 제목은 『그 길로 갈 바엔』. 가보지 않은 길로 내딛는 한 걸음, 작은 세계와 일상을 벗어나는 한 걸음. 그 경쾌하고 대담한 걸음들이 모여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쉬운 길도 헤매는 세상 속에서 늘 가던 뻔하고, 쉽고, 빠른 ‘그 길’로 가지 않고 조금은 돌아가기를 택한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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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단편 줄거리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 재활용
“나 대신 걔네 학교에 가서 이별 통보 좀 하고 와줘.”
도영은 동생 도경에게 자신을 대신해 여자친구 영하와 이별을 하고 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어처구니없지만 영하의 학교로 찾아간 도경. 그런데 그쪽에서 나온 사람 또한 영하의 동생 성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명왕성의 기억 | 약국
“나는 뭐가 그렇게 달라서 기념받지 못한 걸까.”
볕 좋은 대낮, 놀이공원 벤치에 상복을 입고 누워 있는 한 여성. 누가 봐도 수상한 이 사람은 아버지 장례식장을 뛰쳐나온 ‘김명희’씨. 아버지의 죽음이 쪽팔리다는 그의 20여 년 장녀 인생을 들어보자.
토하시는 대로 | 서글
“넌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구나.”
질문을 들으면 신탁으로 미지의 것을 토해내는 무녀는 어린 시절부터 이모의 돈벌이로 이용당한다. 이모가 만든 강박적인 규칙에 시달리는 동생과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던 어느 날, 의문의 ‘알’을 토해내며 탈출을 꾀하기 시작하는데…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세요 | 각종모에화
“꿈은 무언가를 그만두지 못하는 성질로 태어납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인간의 마음속. 여러 감정들이 떠나는 가운데 오직 꿈만이 남아 희망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의 앞에 나타난 우울은 자신이 태어난 유래를 들려주며 꿈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추억의 왕 | 하양지
“걷는 건 돈 안 드는 탐험이다.”
4년 차 사무직 종림씨는 친구의 생일을 앞두고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한다. 무엇을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때울지 고민하던 중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곳에서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들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