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의 애도를 넘어 영원한 안녕으로,
가장 한국적인 죽음의 얼굴을 만나다
“우리 미술사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살지우는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미술사가 유홍준 강력 추천!
우리 미술에 얼비친 삶과 죽음의 흔적을
시인의 눈으로 살피고 연구자의 발로 좇다
『살다 사라지다』는 인생의 통과의례인 ‘죽음’ 앞에서 선조들이 남긴 예술 행위에 주목해, 평소 우리 미술을 감상할 때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삶과 죽음에 관한 사유를 더듬어보는 책이다. 지은이는 학계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해당 미술품이 만들어지고 전해진 시대적 배경과 당대의 표현 기법 등 미술사적 가치에 대해 알려주는 한편,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수백 년 전 이 땅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심리를 가만히 헤아림으로써 사료의 빈자리를 메운다. 시인이자 미술사 연구자라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지은이는 우리 미술에 담긴 인류 공통의 정서를 풍부하게 길어올리고 해석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옛 미술품을 가깝게 느끼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우리 미술의 범위는 회화, 도자기, 범종, 고분미술, 불교미술, 민속미술 등 다양하고 풍성하다. 성덕대왕신종, 정선의 「금강전도」, 전기의 「매화초옥도」, 이정의 「풍죽」,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술품은 물론, 태항아리, 태봉도, 김명국의 「죽음의 자화상(은사도)」, 작자 미상의 「아기 고양이와 무당벌레」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미술품을 도판과 함께 소개한다. 이를 통해 탄생을 귀히 여기는 마음,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 영생불사를 비는 마음, 속세를 초월해 도원에서 노닐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의 영혼까지 그림에 남기는 마음, 홀연히 떠난 생명을 기억하는 마음 등,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동양의 생사관과 우리 미술에 흔적으로 남은 삶과 죽음에 대한 옛사람의 마음을 생생히 전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인 미술사가 유홍준은 이 책을 가리켜 “범종이 보여주는 금속공예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종소리의 울림에서 영혼과의 대화를 읽어내고, 돌미륵의 형식과 제작 연대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미륵에 비는 마음을 읽어낸다”면서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미술품을 보는 시각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태항아리, 운모, 토우, 산수화, 요지연도…
떠나듯 만나고 사라지듯 기억되는 삶의 흔적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탄생에서 죽음으로」에서는 우리 민족에 이어져온 보편의 생사관을 문화재를 비롯한 미술품을 통해 살펴보고, 2부 「소멸에서 영원으로」에서는 그림과 문헌으로 남은 예술가의 일생과 삶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1부 1장인 「생명을 묻다」에서는 우리나라의 장태 풍습을 소개한다. 태반을 묻는 풍습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왕가의 권위를 보여주고 번영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로 자리잡았다. 그 과정에서 제작된 태항아리, 태실, 태봉도 등은 조선의 왕실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이자 그 자체로 탄생의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예술임을 이 장에서 알 수 있다.
4장 「고통을 초월하다」에서는 꿈속의 도원, 신선의 연못, 미륵정토 등 유토피아를 꿈꾸던 옛사람의 마음을 미술품을 통해 본다. 안평대군의 하룻밤 꿈에서 시작해 정치적 비극이라는 이야기를 품게 된 「몽유도원도」와 서왕모와 목왕의 만남을 그린 「요지연도」를 보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마음을 가늠해보고, 보통의 인간을 닮은 돌미륵의 친근한 모습을 통해 불국정토를 꿈꿨던 낮은 이들의 마음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2부 1장 「이승에 노닐다」는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이승을 누려보리라는 마음으로 절경을 유람하며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던 옛사람의 삶을 본다. 이들의 ‘놀이’가 어쩌면 ‘죽음의 어둠을 걷고 불안을 잊어버리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적벽도」 「무이구곡도」 「금강전도」 등 잘 알려진 우리 회화를 톺아본다.
2장 「기억으로 살다」에서는 초상화를 살핀다. 옛 화가들은 초상화에서 사람의 외양과 내면을 모두 드러내고자 했기에, 그 앞에 선 이들은 자신의 지난 삶이 어떠했는지를 그 그림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화가들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바대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남겼다. 그렇게 남겨진 윤두서, 허목, 이항복, 계월향 등의 초상화를 통해 그림으로 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본다.
3장 「죽음과 벗하다」에서는 기인으로 알려진 최북, 전기, 이정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그저 그런 그림쟁이로만 살지 않으리라는 기개와 예술이란 덧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체념 사이에서 붓질을 놀리며 뜨거운 삶을 살다간 인물들이다. 죽음마저도 비범했던 이들의 작품과 일화를 통해 예술 행위의 본질과 의미를 되새겨본다.
4장 「홀연히 사라지다」에서는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본다. 강아지, 고양이, 매 등은 우리 인류의 기록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동물들이다. 이들은 붉은 목걸이를 하거나 임금의 무덤에 묻히거나 궁궐 안에서 관리받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동물들은 제 삶을 살다 홀연히 사라진다. 지은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비인간 동물에게까지 확장함으로써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가치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다 생을 마감한다는 자연의 이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질박한 우리 미술에 잔잔히 박힌
삶과 죽음에 대한 보석 같은 사유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생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모든 생명은 죽는다’라는 평범하고도 낯선 진리를 잊지 않고, 인생이라는 여정을 어떻게 꾸밀지를 고민하는 것은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로 살다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이든, 예술과 같은 유형의 것이든 상관없이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서양미술에서는 생사에 대한 당대인들의 생각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로, 해골, 상한 음식, 시든 꽃 등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서 주로 쓰이는 소재들은 죽음의 상징인 동시에 방종한 삶을 경계하라는 서양의 정신문화를 반영한다. 그와 비교해 우리 미술에는 죽음에 대한 상징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매화가 지고 피듯 “사라지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것”이라는 동양적 죽음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매화, 돌아서는 사람, 흔적만 남은 귀, 하늘거리는 꽃과 나비 등 우리 미술의 면면을 살피며 안개 속에 “깃털처럼” 꼬리를 감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살며시 들여다본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역사와 신화, 현실과 꿈, 나와 타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적 생사관을 우리 미술을 통해 전하고 있다. 지은이는 우리 미술의 제작 연대와 기법을 꿰는 것도 미술품을 감상하는 중요한 방법이지만, 더 나아가 우리 미술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기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잇기를 요청한다. 이 책에 담긴 죽음의 얼굴들은 단지 슬프거나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와 긴밀하게 엮여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지은이는 우리가 만들어나갈 흔적이 우리 미술사 속 미술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그렇게 남은 것들이 “약처럼 나를 보살피고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내비친다. 이렇듯 지은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우리 미술을 봄으로써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밝힐 빛이자 고통을 달래줄 약으로서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