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미성숙한 남자의 파멸적 하루를 통해
인간애와 공존하는 삶의 가치를 그린 소설
『오늘을 잡아라』는 주인공 윌헬름 애들러(토미 윌헬름)에게 닥친 절망과 파국의 단 하루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압축하듯 보여주고, 그가 겪는 비극과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 실존의 의미와 공존의 희망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1956년 출간된 이래 많은 비평가에게 솔 벨로의 최고작으로 꼽혀온 이 소설은 정교한 플롯에서 절묘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탁월한 인물 조형, 종말의 고전적 카타르시스까지, 미국 현대문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요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큰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읽히고 있다. 평론가 V. S. 프리쳇은 짧지만 묵직한 울림을 지닌 이 작품을 “작은 회색의 걸작”이라 평하기도 했다. 솔 벨로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졌고, 동시대 모더니즘 작가들이 종말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미래에 비관적이었던 것과 달리,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을 지닌 작가, 미래에 대해 낙관적 희망을 품은 작가였다. 그러한 긍정성이 아로새겨진 작품이 바로 호라티우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한 구절 “카르페 디엠”에서 제목을 빌려온 『오늘을 잡아라』다.
실수와 실패가 쌓아올린 현실의 벽에 갇혀
과거로 돌아갈 수도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는 남자
비인간화되어가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혹한 대가를 요구받는 현대인의 대표자로 제시된 주인공 윌헬름 애들러는 물질적 곤궁과 실존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이다. 42세의 중년이지만 아직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대학을 중퇴하고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할리우드에 갔던 그는 ‘애들러’라는 성을 버리고 ‘토미 윌헬름’으로 이름을 바꾸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영화배우 토미 윌헬름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그를 어렸을 때 부르던 윌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토미 윌헬름 역시 술에 취하면 스스로를 조소하듯 윌키라고 부른다. 그런 토미 윌헬름은 살아오며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들이 쌓여 지금의 초라하고 소외된 인생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는 지는 것에 지친 인물이다. 오늘의 그는 다니던 가구회사를 때려치운 실직자이고, 별거중인 아내에게 생활비와 양육비 독촉을 받고, 묵고 있는 호텔 방값까지 밀린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가 거주하는 호텔에는 그의 은퇴한 의사 아버지도 살지만, 아들을 무능력한 실패자로 생각하는 성공한 이 노인은 돈을 보태주기는커녕 아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과거야 이미 실패로 점철됐고, 당연히 미래는 보이지도 않고, 현재는 그저 암울한 문제투성이인 토미 윌헬름. 그는 오늘 과거의 그 많은 실수와 오판에 또하나의 실수를 이미 저질러놓고 불안에 덜덜 떨고 있다. 탬킨 박사라는 철학자인지 의사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남자에게 속아넘어가 수중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 그와 함께 증권거래소에서 선물투자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막다른 골목이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망설이고 심사숙고한 끝에 하필 무수히 퇴짜를 놓았던 바로 그 방향을 선택하기 일쑤였다. 그의 인생역정은 그런 오판이 열 번이나 거듭된 결과였다. 할리우드로 가는 것은 크나큰 실수라는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아내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결국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결혼해버렸다. 탬킨 박사와 함께 투자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면서도 결국 수표를 내놓았다. (36쪽)
마지막 남은 돈까지 전부 날리게 하고 박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토미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를 찾아 거리로 나선다. 아버지에게도 찾아가 다시 도움을 청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도 짊어지기 싫다. 내 등에 업히지 말라”는 호통뿐이다. 정처없이 거리를 헤매던 토미는 얼떨결에 장례 행렬에 휩쓸려 장례식장까지 들어가게 되고, 낯선 망자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감정에 휩싸여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린다.
삶으로부터 모든 의미를 끌어낸 죽음이 건넨
긍정과 수용, 재생의 희망
솔 벨로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 『오늘을 잡아라』의 배경은 현대의 고도화된 대도시(뉴욕), 마천루의 도시다. 물질만능주의의 물결에 소외와 위기를 겪는 현대인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과적인 배경이다. 또한 작품 전반에 물의 은유가 사용되는데, 소설은 토미가 글로리아나호텔 23층 자기 방에서 나와 로비로 “가라앉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그가 낯선 이의 장례식장에서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리며 “슬픔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 장면으로 끝난다. 물은 주인공의 정신적 익사를 상징하는데, 그를 서서히 적시다 잠식하다 완전히 가라앉히고, 이내 다시 눈물로써 그를 적시면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숨쉬게 하는 기재다. 삼인칭과 일인칭을 오가는 매력적인 서술 방식도 특징적이다. 주로 토미의 시각에서 이뤄지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서술은 묘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사고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지만, 이따금 마치 토미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듯한 삼인칭 내레이션으로 바뀌면서 작가는 독자의 시각을 완전히 냉정한 타자의 것으로 돌려놓는다.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의 ‘그날’은 그저 그렇고 많고 많은 날들 중의 하루인 평범한 날이 아니라, 죽은 누군가가 주인공에게 삶의 충격을 주도록 작가가 철저히 고안한 ‘계산된 날’이다. 토미는 실패자이고 무시당하는 아웃사이더이지만, 가치가 획일화된 세상에 끝없이 저항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완전한 파국이 다가오는 그날에도 끝없이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비판하면서, 왜 자신이 그 수렁에서 이런 막다른 길까지 몰렸는지 꼼꼼히 따져보려 한다. 요컨대 비인간화에 대해 거부하고, 투쟁한다. 그는 결국 장례식장에서 망자를 내려다보며 흐느끼다 불현듯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 대해, 그러기에 더불어 살고 사랑해야 한다는 슬픔에 찬 각성을 얻는다. 그의 울음은 곧 망자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향한 울음이었을 것이다.
솔 벨로는 인간답게 살기를 고집하고 타인과의 연대의식을 느끼려 분투하는 토미의 투쟁을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면서, 인간의 삶이 비관적이라 단정하는 시대의 지배적 풍조에 타협하지 않고 고립된 삶을 긍정하는 삶으로 전환시킨다. 인간의 삶은 시대의 어떠한 판단이나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인간화되어가는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고 삶의 가치 있는 목적을 오늘에야 잡은 토미의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이야기는 여전히 위태로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수용과 긍정, 회복의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 추천사
솔 벨로는 20세기 소설의 거인이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오늘을 잡아라』를 읽어보라. _아이리시 타임스
주인공의 무력감과 외로움은 점점 더 현대화되는 오늘날의 분주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_인디펜던트
주제와 형식을 다루는 탁월한 솜씨로 우리 시대 고전의 하나로 찬양받는 소설. _노벨문학상 작가 소개
이 소설의 중심에는 평범한 사람들, 잔인한 일상, 삶의 폭력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자각이 한데 존재하는 치열한 세계가 있다. _뉴욕 타임스
『오늘을 잡아라』에서 솔 벨로는 예술적 원숙에 이르렀다. _로버트 베이커(평론가)
『오늘을 잡아라』는 솔 벨로의 가장 큰 업적이자, 축복받은 소설이다. _어빙 말린(평론가)
놀랍도록 간결하고 치밀하고 생생한 소설. _가디언
솔 벨로는 전후세대를 통틀어 누구보다 활기차고 선율적인 소설가다. _존 업다이크
솔 벨로는 영어 산문의 거장이며, 현대성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기록한 최고의 연대기 작가다. _이언 매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