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사랑의 노래, 루미의 『태양시집』
페르시아 원본 국내 초역
루미가 살았던 13세기는 살벌한 시대였다. 당시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서아시아와 동유럽까지 정복하면서, 수많은 도시들이 풀 한 포기 남김없이 파괴되고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이슬람 세계의 기둥이었던 아바스왕조는 멸족을 당했고, 바그다드와 에스파한에는 수십만 개의 해골로 만든 탑이 세워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영향으로 루미는 안락한 삶을 노래하지 않았다. 슬픔과 피와 고통의 시를 끊임없이 읊었다. 님의 장미꽃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먼저 피로 짠 베일을 걷어야 한다고 그는 썼다. 그것은 장미의 가시를 인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침묵하라!
심장 깊숙이 박힌 네 안의 가시를 뽑아내어라
그러면 내면에 핀 꽃밭을 보게 되리라 (39쪽)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루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은 바로 떠돌이 수행자 샴스를 만난 일이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이자 법관이기도 했던 루미는 37세가 되던 해에 평생의 스승이자 소울메이트인 샴스를 만나 영혼의 교류를 나눴다. 어느 날 샴스가 자취를 감추어버리자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실패했다. 샴스에게 헌정한 『태양시집』 및 『영지의 마스나비』 등 모든 시는 루미가 샴스를 잃은 후에 나온 작품이다. 샴스와의 이별이 없었다면 루미는 결코 우리가 아는 시인 루미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양시집』은 ‘샴스’와 동음이의어인 ‘태양’을 호명하며, 샴스를 그리워하는 루미의 마음을 절절하게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리움은 샴스라는 개인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대한 염원, 신과의 합일, 진리를 향한 희구를 통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삶의 극심한 고통이 자아의 껍데기를 벗어나 천상의 연인과 하나되길 바라는 숭고함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의 심장에 신성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킨 이 집은 무려 팔백 년이라는 시간과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루미의 이 시집은 노래처럼 마음을 틀어놓더니 춤처럼 몸을 들어놓는다. 나무에 다리와 날개가 있다는 걸 믿게 하는 책, 덕분에 나의 정원은 늘 나의 봄이라 머리 숙이게 하는 책.
김민정(시인)
루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성시인이다. 회전 명상춤에서 튀어오른 듯한 황금 같은 표현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잭 콘필드(불교학자)
인생길을 헤매다 막바지에 이르면 신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영혼의 염원만이 남는다. 이 염원을 루미보다 더 잘 표현한 이는 없다. 람 다스(요가 지도자)
“나는 취했고 너는 미쳤네”라고 말해주는 이가 루미여서 나는 루미를 읽는다. “향료 시장에서 할일 없이 아무데나 어슬렁거리지 말라/ 설탕 파는 가게에 가 앉아라”라고 말해주는 이가 루미여서 나는 루미를 읽는다. “인간을 찾아 헤매지 말라. 우리는 이미 찾았노라”라고 말해주는 이가 루미여서 나는 루미를 읽는다. “내가 왔으니 그대 울지 마오. 옷을 찢지 마오. 아무 말도 마오”라고 말해주는 이가 루미여서 나는 루미를 읽는다. “사랑이 나무라면/ 사랑하는 이들은 그 나무의 그림자다/ 그림자가 아무리 길게 늘어진다 해도/ 늘 나무의 곁에 머문다”라고 말해주는 이가 루미여서 나는 루미를 읽는다.
루미, 내게는 루비처럼 붉은빛을 띠는 단단한 보석 같은 이름으로 치환되는 자이기도 하여 어디선가 그가 빛나고 있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그 앞에 서기 일쑤였던 나였던 듯싶다. 비춰서, 비치게 하니까, 이런 투명한 들킴이 결국 내 심장에 귀기울이는 자 곁에 바싹 다가가 앉게 하니까, 루미라는 나무의 곁에 늘 나는 머물려 했던 것 같다. 특히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번번이 사랑이 끝났을 때 언제나 루미였던 건 “그래, 네 말이 옳다”라고 해줘서다. “생을 바라지 말고 생을 나누어라”라고 해줘서다. 연고를 찾게 하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약이 되게 하는 책. 특히나 루미의 이 시집은 노래처럼 마음을 틀어놓더니 춤처럼 몸을 들어놓는다. 나무에 다리와 날개가 있다는 걸 믿게 하는 책, 덕분에 나의 정원은 늘 나의 봄이라 머리 숙이게 하는 책. 김민정(시인)
▶ 책 속에서
이성을 따르는 자
매 순간 슬픔만을 찾는다
사랑을 하는 자
매 순간이 무아경이며 상사병이다 31쪽
사랑이 나무라면
사랑하는 이들은 그 나무의 그림자다
그림자가 아무리 길게 늘어진다 해도
늘 나무의 곁에 머문다
이성이 하는 일은
아이를 노인으로 만들고
사랑이 하는 일은
노인을 젊은이로 만든다 32쪽
그대 슬픔과 고통을 떨쳐내려고
갖은 생각을 다 하지만
생각이 바로 슬픔의 근원이라네 34쪽
그대의 모든 불안정은 안정을 추구해서 생기니
불안정을 추구하라
안정이 그대를 찾아오리라 41쪽
오, 태양이여!
저멀리서 우리에게 빛을 보내주는군요
모든 소외된 자를 돌보는 영혼이여,
내 영혼의 주인은 그대입니다. 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