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살아남아 인류에 전승되는 이야기의 힘, ‘어린이와 고전’
여섯 번째 이야기, 인류 문명의 가장 빛나는 상상력 『변신 이야기』
‘어린이와 고전’ 시리즈는 각 지역에 오래 살아남아 전승되어 온 고전을 접하며,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아이들의 가치와 감각, 세계시민으로서의 공감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더불어 문학으로서 고전의 향기를 살려 낸 국내 작가들의 문체와 당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오늘의 독자들과 작품 사이의 수천 년 시간의 격차를 좁힌다. 인류 최초의 위대한 문학 『길가메시』, 동양 최고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이집트 대표 신화 『오시리스와 이시스』, 중세 유럽 기사문학의 걸작 『니벨룽겐의 노래』, 북유럽 신화의 결정체 『에다』에 이어서 새로이 출간되는 이야기는, 인류 문명의 가장 빛나는 상상력과 영감의 뿌리인 『변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더 친근한 『변신 이야기』를 김경후 시인의 재치 있는 문체, 거장 화가들의 명화와 함께 우리 어린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변하는 몸에 대한 것이다.” _오비디우스
‘변신’을 중심으로 새롭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변신 이야기』는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기원후 8년에 250여 가지가 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의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오랜 세월을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어왔지만 그중에서도 『변신 이야기』는 ‘변신’에 초점을 맞춘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며 노벨연구소 ‘최고의 책’, 서울대학교 ‘꼭 읽어야 할 권장도서’로 선정되는 등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최고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영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여러 2차 창작물의 형태로 익숙하지만 정작 『변신 이야기』라는 고전 텍스트로 어린이에게 소개되는 기회는 드물었다.
“어느새 그분 머리에는 포도송이 관이 씌워졌고 옆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뻔뻔하게 신을 비웃던 선원들이 그제야 놀라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등뼈가 굽고 손과 발은 지느러미로 변했죠. 모두 돌고래들이 됐습니다. 그다음부터 저는 디오니소스 신을 따라다니며 모시게 됐죠.” (「포도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40쪽에서)
『변신 이야기』에서는 제목처럼 다양한 변신 유형들이 나온다. 다급하게 도망치다 월계수가 된 다프네의 원치 않는 운명을 피하기 위한 변신.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험난한 고행을 겸허히 받아들인 헤라클레스의 명예를 드높이는 변신. 꽃이 된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는 변신이며, 당나귀 귀가 된 미다스 왕의 변신은 신을 무시한 인간의 오만에 대한 벌이다. 이처럼 책 속에는 신과 인간, 동물과 식물, 요정과 괴물이 저마다 기구한 사연으로 몸을 바꾸고 또 바꾸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사람이나 동물 등이 다른 종,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변신 모티프는 세계의 거의 모든 신화와 민담에서 발견된다. 변신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짜릿한 소재이면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혜가 응축된 개념이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부터 감정, 마음, 관계, 생각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변신 설화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궁극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고 정리한 김경후 시인은 원작자 오비디우스의 생애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비디우스에게 변화와 변신은 우주의 진리였으며 자신에게 가장 절박한 주제였을 겁니다.” 오비디우스는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미움을 사 로마에서 추방되었고, 유배지를 떠돌며『변신 이야기』를 완성했다. 최고 시인이라는 명예를 누리다 쓸쓸한 유배자로 그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며 인간 운명의 찬란함과 비통함을 온몸으로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변신’을 주제로 한 불멸의 고전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 독자들을 고려해 선별한
인간 본질을 깊고 넓게 조명하는 15가지 신화
이야기는 땅과 하늘, 산과 바다와 나무가 막 생겨나고 신과 인간이 세계에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부에서는 제우스, 헤라, 아테나 등 올림포스의 열두 신이 각자 역할을 나누어 인간 세계를 살피기로 하고 새로운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2부에서는 신과 인간의 변신담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질투, 열망과 불안 등 다양한 감정을 겪으며 모습이 바뀌는 신과 인간들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한 인간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3부에서는 불행이 번진 인간 세상에 용기와 지혜를 전하는 영웅들의 탄생과 모험을 다룬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헤라클레스,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로 한 이아손, 신들의 도움으로 가족과 나라를 구한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4부에서는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거나 신을 비웃은 오만한 인간들의 변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성적 대상화, 폭력성 등 시대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린이를 위한 『변신 이야기』를 쓰는 작업에 착수한 김경후 시인은 원전에서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추려내고, 대사와 장면을 묘사하고, 명화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변화한 감수성을 촘촘히 반영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우리가 읽고 즐기는 신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지금의 가치와 문화를 싣고 다시 미래로 향한다”고 하면서 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조금씩 변화하며 전해지는 신화의 특성을 짚는다. 시인의 섬세한 시선을 통과하며 원전이 가진 이야기로서의 재미, 인간의 본질에 대한 예리한 성찰, 역동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는 충실히 살리되 곳곳에서 오늘의 어린이 독자를 신중히 고려한 『변신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세계 거장 화가들의 명화와 함께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즐기는 장대한 서사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세계의 화가들에게도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수많은 명화들을 탄생시켰다. 이 책에서는 라파엘로 산치오, 디에고 벨라스케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등 세계 거장 화가들이 그린 명화들을 서사의 핵심 장면에 배치해 한층 더 풍성한 독서를 돕는다. 명화의 구도와 묘사 또한 입체적인 해석을 유도하며 이야기에 더 가까이 접근하게 한다. 외양과 도구로 각 신들이 전담한 역할을 한눈에 보여주는 「신들의 회의」, 포악한 괴물 뱀 피톤을 쓰러뜨렸지만 저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에로스의 화살에 꼼짝 못하게 된 아폴론을 미묘한 구도로 그려 낸 「아폴론과 피톤」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들은 『변신 이야기』를 더 매혹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서사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