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쯤은 있지 않습니까?
삶을 위해서, 오래전부터 거짓말로 지켜온 비밀 말입니다.”
서로에게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아버지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연애소설 읽는 교수』는 안그람 작가의 데뷔작이자 첫 장편 연재작이다. 2016년 작가의 블로그에 처음 게재된 이 만화는 2018년 <봄툰>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했으며 2020년 2월 총 52화로 완결되었다. 완결 후에도 트위터 등 SNS에서 먼저 읽은 이들의 호평과 추천 세례가 쏟아지며 연쇄 구독 현상이 일어났고, 그 결과 각 플랫폼 순위를 역주행하며 화제를 모았다.
인간관계의 진리를 관조하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심리학 전공자이기도 한 작가의 인간 심리에 관한 이해도와 치밀한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한다. 작가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개인의 감정과 선택이 상호 관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능숙하게 풀어낸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한 행동이 꼭 그 사람을 위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냉엄한 삶의 진리 앞에서, 인간은 결국 자신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내리고 마는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짊어져온 『연애소설 읽는 교수』 속 인물들은 평온을 가장한 현실 속에서 외로이 그 무게를 감당한다. 함께 있어도 함께이지 못한, 미로를 헤매는 듯하던 인물들은 서로에게 솔직한 자신을 드러낸 순간 비로소 한걸음 다가선다. 이 미로 같은 인생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웹툰으로 발표되었지만 긴 호흡으로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곱씹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특히 차분하고 사색적인 문장과 파스텔톤의 작화는 종이로 옮겨졌을 때 그 감수성이 더 진하게 전해진다. 독자평 중에서 유독 ‘소설을 읽은 듯하다’ ‘단행본으로 읽고 싶다’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오랫동안 상실 속을 헤매며 살아온 자의 앞에
놓쳤던 것과 닮은 무언가를 다시금 얻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단행본은 총 52화의 연재분을 전체 15장으로 나누어 다섯 권에 담았다. 1권에서 준우와 성민의 만남으로 오래전 준우의 비밀이 드러났다면, 2권부터는 준우가 감춰온 비밀인 그의 부인이자 제경의 엄마인 ‘은정’의 일이 본격적으로 밝혀진다. 준우, 제경, 그리고 성민의 비밀이 폭로되는 3권을 지나면 과거 은정과 관련된 인물들과 그들의 사정이 하나둘 터진다. 평온해 보이던 현재의 이야기 속에 문득문득 던져지던 과거의 회상은, 그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퍼즐을 맞추듯 그 윤곽을 드러내고 사실은 현재의 안정이 거짓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단행본에서는 연재 당시의 아쉬웠던 점을 바로잡고, 판형에 맞는 편집을 거쳐 가독성을 높였다. 단행본에서만 볼 수 있는 10쪽 분량의 단독 외전 「청소년 대담」과 4쪽짜리 「후기」도 5권 권말에 수록되었다. 외전 「청소년 대담」은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한 주연들의 대담을 그린 네컷 만화이다. 본편과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동시에 가볍지 않은 결말의 트릭에 감탄이 나온다. 본편과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각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후기」에서는 단행본 출간에 얽힌 소감과 저자의 근황을 살짝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