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예희 작가 추천(『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단숨에 읽었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 멈출 수 없었다. 생애 첫 월급과 독립생활을 누리는 사회 초년생 미호와 기혼 유자녀 경력단절 여성 마호,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온 고령의 연금생활자 고토코의 시간은 각각 다른 속도로 흐른다. 젊고 잘나갈 때는 뭐가 그리 바쁜지 하루가 휙 지나가지만, 어디서도 불러주지 않게 되니 하루가 너무 길다. 여러 인물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가늠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어디로 가게 될까? 일을 그만둔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자산을 늘릴 순 없을까? 아니, 최소한 유지라도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많아질수록 불안해진다. 고토코의 말처럼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으니 써버리자”와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불안하니 절약해야지”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 여자들이 할 수 있다면 내게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한 맞춤 답을 찾아갈 것이다.
공감 연발! 돈 모으는 여자들의 일상을 그린 10만 부 일본 베스트셀러
하라다 히카, 『낮술』에 이어 한층 실감나는 현실 공감 스토리로 주목받는 화제작
2021년 여름, 맛깔나는 음식과 술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그린 소설 『낮술』로 국내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작가 하라다 히카. 주로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 중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소설 『할머니와 나의 3천 엔』은 2018년 4월 일본 현지에서 단행본이 출간되고, 2021년 8월 문고본으로 재출간된 이후, 두 달여 만에 6쇄를 찍고 판매량 10만 부를 돌파하며 기록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할머니와 나의 3천 엔』은 이십대 딸, 오십대 엄마, 칠십대 할머니로 이어지는 한 집안 여성 3대가 각자의 생애 단계에서 직면한 경제적 고민을 극히 현실적으로 그리며, 저마다의 이유로 절약과 저축을 결심한 이들을 위한 일상적이면서 요긴한 지침과 실용적인 팁까지 담은 소설이다. “죽을 때까지 책꽂이 한쪽에 두고 자기 자신을 잃어갈 때마다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가키야 미우,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 만합니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이라는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누구나 살아가며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생과 돈에 관한 고민들의 핵심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결국 우리 여자들에게 필요한 건…… 돈!
이십대부터 칠십대까지, 여자들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고민들에 대하여
이십대 사회 초년생 미호는 학업도 취직도 연애도 독립생활도 비교적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왔다고 자평하며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지만, 존경하던 유능한 회사 선배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일을 목도한 뒤로 자신의 현재 위치와 앞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고용 불안’ ‘당분간 결혼 계획 없음’ ‘더는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미호는 안정된 삶을 유지하려면 결국 돈을 모아둬야 한다는 실질적인 결론에 다다르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막막하다. 우선은 ‘3천 엔 정도의 소액으로 사는 것, 고르는 것, 하는 일이 쌓여서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할머니의 말씀과 ‘월세 같은 고정비를 점검하고 충동 소비를 줄이라’는 언니의 말을 지침삼아 절약생활에 돌입하는데 예상 외로 포기할 것도, 참아야 할 것도 너무 많은 것만 같다. 과연 미호의 돈 모으기 일상은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을까?
한편 미호의 엄마 오십대 도모코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일을 계기로 자신의 노후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갈수록 약해지는 체력’ ‘집안일을 전혀 못하는 남편’ ‘부부의 노후와 시어머니 간병을 위한 자금’에 대한 대책이 절실함을 느끼는 동시에, 더는 가족 뒷바라지를 일순위에 두지 않고 좀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고픈 욕구도 강렬해진다. 이를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아내에게 무심하기 그지없는 남편! 이런 고민들에 갱년기장애까지 겹쳐 한숨과 짜증이 끊이지 않던 도모코는 다시금 일상을 정비하고 용기 내어 남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요구하고자 한다.
절약하겠다며 마트에서 식재료를 샀다. 회사에 도시락도 싸서 다니려고 잡화점에서 8천 엔이나 하는 천연 삼나무 소재의 도시락통까지 샀다. 하지만 도시락은 하루밖에 못 만들었고 식재료도 제대로 소비하지 못한 채 대부분 버렸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난방을 하지 않고 목욕도 샤워로 대신했더니 몸이 차가워졌는지 결국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니는 처지가 됐다. 식재료를 남겼다는 죄책감에 스트레스를 받아 외식이 늘었다. 직접 요리를 하는 건 자신한테 어려운 일 같다고 낙심했다. (49p)
황혼이혼 뒤 혼자가 된 여성의 예상 경제 시나리오는 가혹했다. 마치 남편에게 다소 불만이 있어도 참으라는 현실을 눈앞에 들이미는 것 같았다. 도모코는 이혼을 생각한 적도 없으면서 ‘절대로 못한다’는 걸 알게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부부끼리 대화 한마디 없이 조용히 저녁밥을 먹을 때면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왜 이 사람은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고맙다는 말도 없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걸까. 주말에도 남편은 온종일 누워서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친구와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치러 갈 뿐이다. 어느 쪽이든 도모코는 평일과 똑같이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남편의 퇴직 후에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할까. (248p)
미호의 할머니 칠십대 고토코는 평생 가계부를 쓰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세대이면서 평소 현명하게 소비하고 좋은 물건을 오래 사용함으로써 절약생활에 돌입한 손녀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남편이 죽고 남은 예금을 소액으로 운용하고 은퇴자를 위한 은행 상품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연금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노년의 삶을 살던 어느 날, 자신이 실은 원하는 건 ‘일자리’임을 깨닫는다. 큰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일터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가계부에 ‘연금’ 이외의 수입을 기입하고, 일하는 보람이라는 기분을 이 나이에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걱정하고 만류할 아들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고토코는 자신이 품기에 장대할 수도 있는 이 꿈을 위해 현실과 부딪혀보기로 한다.
나를 위한 ‘맞춤 답’을 찾아 ‘작은 안심’을 쌓는 방법
내가 발 딛고 선 자리가 흔들릴 때, 마음속 가장 위에 떠오른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각 생애 단계에서 경제적 고민에 직면한 이 여성들은 자산전문가나 주변인들로부터 실질적이고 유용한 팁을 전수받는 한편, 각자가 지닌 고민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즉 자신의 진짜 속마음과 대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회사도, 오래 사귄 애인도, 부모님도 진정한 최후의 안식처가 아님을 실감한 미호는 자신이 꿈꿔왔던 유기견 입양과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세우고 훨씬 진지한 자세로 절약생활에 임한다. 오십대가 되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문제들에 휩싸여 크게 낙심한 도모코는 오히려 그 많은 문제들이 단 하나의 솔루션, 즉 남편과의 관계 개선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매듭씩 천천히 풀어나갈 여유와 용기를 얻는다. 노년의 고토코 역시 다 늙어버린 자신이 여전히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존재이고 싶은 마음을 솔직히 마주하고 나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자녀분을 키우고 집안일도 해왔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경력인데요.” 고토코는 겨우 고개를 들고 웃어 보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런 할머니가 일하고 싶어하다니 이상하죠?” “전혀 아니에요. 많이 계신걸요. 다만 마음을 확실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상담사는 일하려는 이유로 ‘타인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 ‘기술을 살리고 싶다’ ‘취미를 살리고 싶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 ‘사회활동을 하고 싶다’ ‘자신을 계발하고 싶다’ ‘수입을 얻고 싶다’ 등의 예시를 들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물론 지금 예로 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본 다음에 일을 찾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95p)
실은 하루 더, 일주일에 이틀은 쉬고 싶었다. 쉬고 싶은 이유가 영어 교실 때문만이 아니라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이 해가 갈수록 힘들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다. “뭐든지 한 걸음씩이에요. 서두르지 말고, 전부 한번에 바꾸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담 때 구로후네 선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 한 걸음씩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혼자서 밥을 먹다보면 남편이 스스로 깨닫거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젓가락을 든 도모코는 남편이 먹고 있는 것과 같은 반찬을 집어들었다. 부추 간 볶음이 짜서 조금 목이 막혔지만 꼭꼭 잘 씹어 삼켰다. (269p)
‘티끌 모아 티끌’ ‘커피 한 잔 값 모아 주식하자’ ‘플렉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사기’ ‘N포를 지나 갓생으로’ 등 극심한 불경기와 양극화 속 돈과 경제 이슈는 우리 사회의 젊은층을 격렬하게 관통하고 있다. 소설 『할머니와 나의 3천 엔』은 그 물결 속 어딘가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며 작은 안심을 쌓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이야기다. 결국 맞이해야 하는 생의 이벤트 혹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상적 사건을 계기로 절약과 저축을 결심한 이가 있다면 이 작품이 소중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