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01
식물 왕국의 살인범들
식물 왕국에는 잎에 달린 가느다란 솜털에 스치기만 해도, 그 나뭇가지를 불에 태운 연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범들로 특실득실하다. 그중에서도 식물들의 가장 압도적인 살인 수법은 바로 독살이다. 식물이 자신의 독을 직접 사용해서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없지만, 아름다운 꽃의 색이나 꿀, 향기 등으로 인간을 부드럽게 유혹하여 독이 들어간 열매를 섭취하게 한다. 혹은 인간이 식물 특유의 강한 독성을 인지하게 하여, 그걸 화살에 바르거나 음식에 몰래 섞어 살인을 꾀하는 데 슬쩍 손을 빌려주기도 한다. 식물들이 끔찍한 독살을 행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함유한 독에 알칼로이드라는 ‘식물 염기植物鹽基’가 들어 있어 동물에 대해 아주 강한 생리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는 ‘아코니틴’이니 ‘아트로핀’ 등이 바로 독성 알칼로이드다. 식물 왕국의 독살자들한테 한 번 당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다가 환각이나 발작을 일으키고 나중에는 호흡기가 굳어 비명횡사하기에 십상이다. 식물 살인범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맹독으로 유명한 투구꽃, 이탈리아 여자들이 독인 줄도 모르고 연한 팅크제를 만들어 매력적인 눈동자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벨라돈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일조한 독당근, 자살 시도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협죽도, 중독된 줄도 모르다 며칠 후에 마비와 함께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코요티요 등이 있다.
지명수배―02
식물 왕국의 마약사범들
식물 세계에는 인간에게 일상생활을 포기할 정도로 끔찍한 환각과 중독 상태로 이끄는 마약사범들도 있다. 게다가 이런 식물성 마약의 역사는 거의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돼서 아예 관습화, 풍습화될 정도로 사회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 그래서 코카나 빈랑자 잎을 씹는 것을 마약 복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권하는 전통문화라고까지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식물 왕국의 마약사범들을 인간이 씹거나 차로 달여서 복용하거나 잎으로 돌돌 말아 피우게 되면 환각, 천식, 구강암, 심장질환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이 저절로 멈춰 억지로 횡격막을 움직여서라도 호흡을 해야 하는 끔찍한 증상을 겪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완전히 중독되면 일도, 가족도, 생활도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식물 왕국의 마약사범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국가가 나서서 중독관리센터를 세우고 해당 식물 취급에 법적 통제와 금지를 가하고, 심지어 근절하기 위해 아예 식물 서식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식물 마약사범들이 인간의 의료 역사에 도움이 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보가로 양귀비 중독을 치료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고, 양귀비를 이용하여 아편틴크와 같은 진통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식물계의 마약사범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씹어서 복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코카와 빈랑자, 환각제와 마약 중의 마약이라는 헤로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마(마리화나)와 양귀비, 철없는 십 대들이 쉽게 구하는 환각 성분을 찾기 위해 애용하는 독말풀과 나팔꽃, 피부에 바르면 훨훨 날아가는 느낌 때문에 마녀의 비행약이라는 사리풀 등이 있다.
지명수배―03
식물 왕국의 방화범과 대량학살자
평온하게만 보이는 식물 세상의 악당 중에는 심지어 방화범과 대량학살자까지 있다. 이런 식물들은 자기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들을 불태워서, 혹은 질식해서 죽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들의 생명과 생활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곤 한다. 예를 들어, 소위 죽음의 잔디로 치부할 만한 ‘띠’라는 식물은 실리카 결정이 달린 날카로운 잎사귀도 문제지만, 뿌리줄기로 땅속을 헤집어 다른 식물들을 죽이고 자손 번식을 꾀한다. 그러나 띠가 무서운 이유는 가연성을 갖고 있어 한 톨의 불씨라도 있으면 초원으로 끌어들여 다른 식물들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자기 영역을 무시무시하게 넓힌다는 점이다.
심지어 대량학살을 즐기는 식물들까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민물 수생식물 검정말도 띠처럼 자기 생존을 꾀하기 위해 다른 수생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숨을 못 쉬게 하여 죽여버린다. 물속에서 쑥쑥 자라 올라와 수면을 몸으로 싹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검정말이 가진 대량학살의 의미는 수많은 식물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면이 검정말로 덮이는 바람에 배는 운항도 힘들고, 부근을 모기 서식지로 만드는 바람에 인간의 생활까지 파괴하는 행태로까지 이어지니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인 하데스로 들어가 머리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끌어내는데 그 개의 침에서 치명적인 투구꽃이 피어났다. 신화에서는 ‘늑대의 독wolfsbane’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사냥꾼들이 늑대를 사냥할 때 미끼와 화살 독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세에는 마녀들의 물약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스네이프 교수가 투구꽃을 우려 리무스 루핀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도록 도와줬다. _ 치명적인 식물 「투구꽃」
19세기 유럽 탐험가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죄를 지었는가 그 유무를 판별하는 데 쓰는 서아프리카 콩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지역 풍습에 따라 피고가 콩을 삼키면 곧바로 나타나는 결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콩을 토하면 무죄, 사망하면 유죄다. 물론 죽으면 응당 그 죗값을 치른 셈이다. 그 외에도 콩을 배설하거나 설사를 할 경우에도 유죄로 인정해 노예로 팔려 갔다. 이를 ‘시련재판’이라 하며, 이러한 시죄법試罪法에 사용하는 식물을 ‘죄인판별 식물’이라 불렀다. _ 「시죄법의 독」
맥각은 기생 곰팡이의 일종으로 호밀, 밀 같은 곡물류에 기생한다. 습한 환경에서 잘 성장하며, 기생한 숙주인 그 곡물을 흉내 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일단 숙주에 기생하면 균핵이라는 이름의 딱딱한 덩어리를 만들어 맥각의 휴면 홀씨가 떨어져 나오는 환경적 시기가 될 때까지 양분을 제공한다. 호밀이나 밀 한 포기에서도 수백만 개나 되는 맥각 홀씨가 같이 수확되기에, 이 곡물로 만든 빵에도 사람을 중독시킬 만큼의 곰팡이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세일럼의 겨울 날씨가 습한 까닭에 어린 여성들은 맥각의 희생자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_ 도취성 식물 「맥각」
길고 뾰족한 뿌리가 1미터 이상 자라는데, 생김새는 돌이 많은 땅에서 자라는 당근처럼 끝이 갈라졌다. 고대 문명인들의 눈에는 이 갈라진 털북숭이 뿌리가 인간 형상을 한 작은 악마(때로는 남성, 때로는 여성)처럼 보였다. 로마인들은 맨드레이크가 악령의 빙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리스인들은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사랑의 묘약을 위한 재료로 썼다. 또한 맨드레이크를 땅에서 뽑으면 비명을 지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행여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한다. _ 마약성 식물 「맨드레이크」
독당근 피해자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그는 기원전 399년에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제자인 플라톤이 사형집행을 지켜봤다. 때가 되어 간수가 사약을 가져오고 소크라테스는 그걸 차분하게 들이켰다. 사형수 소크라테스는 잠시 감방에서 서성거렸지만 점점 다리가 풀리면서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간수가 발과 다리를 주무르며 감각이 있는지 묻자 소크라테스는 아무 느낌이 없다고 대답했다. 플라톤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간수가 스승을 가리키며 냉기가 심장에 이르면 숨이 멎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_ 치명적인 식물 「독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