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 대부분은 길에서 줍거나
지나는 이들에게서 훔친 것들이니까요.”
시인 윤제림이 길에서 길을 찾은 100가지 이야기
윤제림 시인이 길에서 줍고 길에서 얻은 삶의 조각들, 『걸어서 돌아왔지요』를 소개합니다. 『미미의 집』부터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까지 7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뉴욕광고제, 한국방송광고대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는 시대의 카피라이터이기도 한 그이지요. 시인의 봄과 카피라이터의 씀이 다른 듯 맞닿아 있다 할 때, 그 이력에는 뜬눈으로 열린 귀로 살피며 지나온 길들이 있지 않으려나요. 그렇게 길 위에서 때로는 묻고 때로는 듣고 때로는 찾아낸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매주 한 편씩 써나가 100개의 공간이, 100가지 기억이 모였습니다. 성실한 걸음만큼 쓰는 일의 보폭 또한 꾸준했다는 뜻이지요. 시인을 낳은 곳과 키워준 곳, 오늘 사는 곳, 어제 머문 곳, 내일을 꿈꾸는 곳…… 임진강에서 제주까지 이 땅 곳곳의 기억이 겹칩니다. 길에서 썼으니 기행문이고, 걸어서 남기는 발자취이고, 돌아보고 돌아오는 성찰의 지도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초심을 확인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것입니다.
시인의 걸음은 참으로 구석구석 가닿습니다. 서초동 향나무에서 출발해 소월로, 해방촌, 연남동을 가리지 않고, 충주, 익산, 통영을 거쳐 바다 건너 제주까지도 거뜬하지요. 서로 안 닿는 길이란 없고, 걷고 또 걸으면 이윽고 만나리라는 길의 가르침을 새삼 일깨우면서요. 그렇게 이곳저곳 참으로 멀리 돌고 널리 둘러보지만, 걸음을 바삐 재촉하여 지나치는 속보는 아닙니다. 느긋이 돌아보고 한갓지게 머무는 산책이지요. 한번 왔다 가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지내고 살고 스미는 이의 마음으로요. 여정에는 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기억이 있습니다.
“제 글 대부분은 길에서 줍거나 지나는 이들에게 훔친 것들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이지만, 실은 거저 얻은 것 하나 없습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꽃에게도 제 이름을 물어봅니다. 꽃이 먼저 건넨 인사를 이름도 모르고서 무심히 받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제주도 성산포 가는 길에는 카페 간판 하나에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바다는안보여요’, 그 한마디에서 카페 주인의 꾸밈없는 성격을 가늠하고 솔직함의 매력을 곰곰 생각해보지요. 길마다 살피며 걷고 지나는 이마다 먼저 인사 건네는 그이기에 얻어낸 말들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알고 싶어하던 꽃이 ‘가우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일터에도 있고, 아침 산책길에도 피어 있는 꽃입니다. 날마다 마주치는 얼굴이지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봐야 할 만큼 무척 예쁜 꽃입니다. 무슨 꽃일까 궁금해서 제가 가진 식물도감, 화훼도감 모두 꺼내서 뒤져도 알 수 없던 꽃입니다.
인터넷 시대, SNS 세상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갸륵한 일입니다. 앱 하나가 참 많은 사람이 꽃과 인사하고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꽃의 얼굴을 보여주면 앞다투어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들, 그 어여쁜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저는 정말 간절히 알고 싶던 친구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가우라. 이제 그의 인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시인은 길에서 본 것들에 자신을 비춰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지요. 혹여 제자들에게 시원찮고 서투르게 가르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면 전전긍긍, 이윽고 ‘A/S 콘서트’를 여는 ‘서비스맨’이 되어야겠다 자처합니다. 매번 그만 맡아야지 결심하면서도 다시 서게 되는 주례 자리를 위해선 노심초사, 예비부부만큼이나 몸가짐을 챙기고 마음가짐을 가다듬고요. 쉬이 편견을 갖고 익숙한 소중함을 잊은 적은 없었나 부지런히 자문함은 물론이지요. 길에서 배운 것들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길의 부름으로 나선 걸음, 스스로에게 물음으로 던지는 일입니다.
길 위의 반성이란 밖을 돌아보는 일, 둘러보는 일, 돌보고 살피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지진이 있었던 경주에선 땅의 흔들림보다 클 마음의 흔들림을 걱정하며 짐은 나눠 지고 일은 거들자 제안하지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돌아오지 못한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슬픔을 직시하기 두려워 피하고 말았던 날들에 미안해하고, 제자들을 살리려 분투했던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 인정 소식에 안도합니다. 귀한 마음 가진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흥겨운 소리판을 벌이는 내일을 응원하기도 합니다. 곡진한 마음에서 비롯할 테지요. 이미 지나온 풍경에도 시인의 마음은 오래 머뭅니다.
우리는 행복한 관객이고 싶습니다. 사필귀정의 결말에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모두 한쪽을 바라보면서 어사출두를 학수고대합니다.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기다립니다. 흥부의 박에서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하면서 토끼도 자라도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추임새도 얼마든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좋-다’ ‘얼씨구’ ‘지화자’…… ‘그렇지’ ‘잘한다’ ‘이쁘다’. 절로 터져나오는 탄성이면 무엇이나 좋다고, 이자람씨가 새삼스럽게 가르쳐준 것들입니다. 그런 소리들, 어서 외치고 싶습니다.
─본문 중에서
길이 말을 걸어오고
풍경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표지에는 하이경 서양화가의 작품 <한강 둔치>(2020)가 함께했습니다. 일상 속 풍경에서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는 그림이지요. 한강변을 걸어가는 윤제림 시인, 혹은 소월로를 산책중인 김소월씨의 얼굴, ‘내 친구의 집’을 찾아 떠나는 코케 마을 아마드의 옆모습을 겹쳐봅니다. 그 모두를 길에서 만나고픈 것이 시인의 마음 아니려나요.
책 속에는 100개의 글이자 길이 있지만, 길이란 그 끝이 없는 법입니다. 길 위에 삶이 있다는 그 말, 사는 동안 우리 모두 길 위에 있다는 뜻으로도 읽어봅니다. “별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걸어야” 한다는, ‘아직은 행인’ 윤제림 시인의 자취를 따라 걸어봅니다. 여정은 언제나 길에서 시작하지요. 장소에 머물며 시간을 지내며 기억을 담아봅니다. 그리하여 우리, 걸어서 돌아오겠지요.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걷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가로열쇠’, 제 곁을 지나는 사람은 저를 위한 ‘세로열쇠’. 네거리는 ‘십자말풀이’ 난을 닮았습니다. 아니, 세상은 거대한 ‘숨은그림찾기 판’. 저는 지금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