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옥상에서 벌을 친다고?
책 첫머리에 실린 「오페라 가르니에와 파리의 벌꿀」이 남들은 잘 모르는 숨겨진 유럽 이야기라는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다. 프랑스 파리 9구에 있는 오페라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가극에 쓰이는 소도구, 특히 가구를 담당하던 그래픽 아티스트였던 장 폭통은 취미가 양봉이었다. 그는 처음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벌을 치려고 했으나 이웃들이 싫어해 파리 북부로 벌통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운반하는 2시간 동안 벌들이 죽을지 몰라 고심하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오페라 극장 옥상에 벌통을 갖다놓는다. 회사엔 나중에 꿀을 따면 오페라의 숍에서 팔면 이득이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그렇게 시작된 파리 도심의 벌꿀은 인기폭발이었다. 왜냐면 파리시내는 외곽보다 온도가 높고, 정원이 많아 꽃들이 다양해 고급 벌꿀이 생산되기 맞춤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성공 이후 파리의 민간 건물 옥상 위엔 우후죽순 벌통이 놓이기 시작했고 메이드 인 파리 벌꿀의 신화가 탄생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외교관이라는 직업상 한국의 상황만큼이나 늘 유럽의 변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는 왜 첫 저서에서 거대한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들에 집중하게 됐을까? 원래부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면모들에 관심이 많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근대 이후로 세상을 평정한 서구 문명권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타 문명과 별다를 게 없고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 근거들을 계속 발굴하다보니 이런 형태의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령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은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7월 14일로 정해졌고, 현대에 집권했던 영국의 모 총리는 미신을 믿었다. 사회주의 국가 동독에도 재벌은 있었고 소련에도 향수香水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리처럼 영어 사용 논쟁이 있었던 데다 프리메이슨이 다른 곳도 아닌 헌법에 등장했다.
이 책은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5개국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루며 목차를 나라별로 나누기는 했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국경을 넘나들고(가령 메르세데스 벤츠는 독일에서 태어나 알바니아에서 죽는다), 또 어떤 이야기는 목차와 관련성이 그리 크지 않다(테넷의 프리포트는 사실 프랑스의 이야기라기보다 스위스와 모나코가 주요 무대다). 그래도 국가별로 분류한 이유는 밥솥에서 인터넷 주소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망라하고 있기에 독자가 읽기 가장 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박학다식이 주는 즐거움
이 책을 읽는 묘미는 박학다식이다. 친구와 만나 “그런 거 알아?”라고 하며 이야기를 주도하기 좋은 소재들이 널려 있다. 압력솥의 원조는 어디일까. 정답을 말하면 17세기의 프랑스다. 그러나 그 과실은 영국이 차지했다. 현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드라큘라는 1897년에 나온 브램 스토커의 소설이 아니고, 아일랜드의 작가 셰리던 르 패뉴가 1871~1872년 『다크 블루』라는 잡지에 연재한 『카밀라』였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미남 ‘미스터 다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저자는 당시 영국의 훈남 이미지를 토대로 머리는 파우더를 칠한 흰색, 수염은 없고 귀족이므로 피부색은 창백하며, 형태는 긴 타원형, 뾰족한 턱과 작은 입을 추리해낸다. 시간을 건너뛰어 20세기로 오면 오늘날 보편화된 자율주행차의 시초를 캐들어간다. 독일의 에른스트 디크만스는 1980년대에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 우주공학 박사였던 그는 1970년대 말 기계에게 시각視覺을 가르치는 연구를 했고, 메르세데스 밴을 자비로 구입해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다시 16세기로 건너가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역 스트라스부르의 춤 전염병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여름의 스트라스부르의 한 마을에서 7월 14일 트로페아 부인은 거리에 나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남편은 그만 좀 추라고 간청했으나 부인은 남편을 무시하고 계속 춤을 췄다. 몇 시간이고 추다가 어둠이 깔리고 지치는 데다 배가 고파 트로페아 부인은 쓰러진다. 하지만 다시 이튿날이 되자 트로페아 부인은 거리에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흘간 춤을 이어가자 거리에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부인과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춤은 일주일간 계속됐고 결국 당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원인은 히스테리였고 치료는 ‘성당’이 맡았다. 하지만 전염은 점점 확대됐다. 곡물 곰팡이에 감염돼 그렇다는 분석부터 저조한 수확, 불안한 정치, 매독이 발작적인 춤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이어졌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뒷고기처럼 양은 적지만 오묘한 맛
이 책을 굳이 요리에 비유한다면 김해에서 유명한 뒷고기 같다. 고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고기를 도축하면서 양은 적지만 오묘한 맛이 있는 고기를 감추어 먹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책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유럽의 속살을 경험한 필자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유럽의 숨어 있는 역사를 재치 있게 담아냈다. 한 장 한 장 새로운 이야기에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덧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의 각국이 감춰놓은 고기 힘줄같이 질긴 속사정이 자연히 이해가 된다. 수많은 언어가 난무하는 복잡한 유럽의 속사정을 재미있으면서 본질을 꿰뚫는 메시지와 함께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추천사
이 책은 완전히 다른 유럽을 보여준다. 유럽판 『수호지』라고나 할까.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질투하고 탐내는 실제 유럽의 뒷사정을 이렇게 재미있고 유쾌하게 조명하는 책은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럽의 감춰진 이야기로 당신을 초청한다._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테라 인코그니타』 저자
저자는 2000년간 유럽에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났고,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 우리가 왜 유럽을 알아야 하는지를 특유의 박학다식과 위트로 풀어낸다. 내가 아는 한 저자는 이 작업을 가장 잘해낼 수 있는 한국 시민이다._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일본인 이야기』 저자
이 책은 유럽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과 이해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미 알던 것들 사이의 간극이 훨씬 더 촘촘해질 것이다. 그리고 읽기의 즐거움은 그냥 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이 책의 매력이다._황두진 건축가, 『가장 도시적인 삶』 저자
항의 차원에서 그녀는 교황에게까지 자신의 처우에 대한 항의 서한을 전달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재판을 통해 그녀는 수녀원으로부터 2000프랑을 받아냈으나, 이에 불복하고 1902년 한 번 더 2만 프랑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으로 인해 결국 수녀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터라 당장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했다. 그녀는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하고 한 포주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종국에는 매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경찰 기록에 등장한다. 1902년 12월 매춘 혐의로 체포된 그녀가 잠시 구금됐다는 기록이 있다. 1903년 1월부터는 일종의 애인 대행 일을 시작한다. 만나는 약속을 정하자고 신문에 광고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_26쪽
장소는 프랑스의 이지니쉬르메르, 때는 1982년 2월 7일 토요일 밤부터 2월 8일 일요일 아침 사이, 공수부대 출신의 사설보안업체 대원 및 사측 노동자 120명이 인구 3000여 명의 작은 마을 하나를 점거한다. 목표는 상당히 귀여웠다. 파업 노동자들이 점유한 카망베르 치즈를 탈환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름하여 카망베르 작전.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무려 75만 개의 카망베르 치즈를 구출해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테랑의 좌파가 정권을 잡은 지 9개월밖에 안 됐던 이 시기의 프랑스는 노동 시간 단축 문제로 매우 시끄러웠다. 유제품을 만들던 베스니에 그룹은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이 마을의 공장 근무 시간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협상이 잘 안 돼 2월 2일 아침부터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카망베르 치즈 300만 개를 가둬놓고서 말이다._95~96쪽
가령 자유 진영의 카터 전 대통령이 독재자 킬러라고 한다면 공산 진영에는 판다가 있다. 중국이 판다를 선물로 준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불운한 운명을 맞이했다.
1.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1972년 방중 시 판다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2. 에드워드 히스 영국 총리: 1974년 방중 시 판다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3.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 1971년 방중 시 판다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4.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 1980년 선물 받고 1982년 사임.
5.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 1973년 선물 받고, 1974년 임기 중 사망.
6.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2012년 선물 받고, 2015년 사임._121쪽
이번에는 소련의 1950~1970년대 우유갑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이른바 체제 경쟁에 돌입하면서 비단 군사력만 뽐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말 두 초강대국은 온갖 면에서 서로를 이기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유였다(여담이지만 소련 체제의 거의 막바지였던 1989년 당시 소련은 인당 우유 소비량으로 미국을 이겼다! 소련은 378킬로그램, 미국은 263킬로그램). ‘도대체 왜 우유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논문 소개부터 하나 하겠다. 페테르부르크의 국립고등경제학대학 카치트코바 교수가 작성한 「소련의 우유와 우유 패키징」이다. 또한 러시아 사람들은 지금보다 소련 시절 우유 품질이 더 좋았고 고급이었다는 인상도 갖고 있다._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