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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은어

저자
서한나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일
2021-07-08
사양
232쪽 | 133*205 | 무선
ISBN
978-89-6735-927-0 03800
분야
산문집/비소설
정가
15,000원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빠질 것이다.
해본 적 없는 말을 쏟아낼 것이다.”


읽고 나면 기어코 쓴 사람을 찾아내게 만드는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찾아내게도 만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듯이, 살지 않은 삶을 살아보려는 듯이 탐닉에 가까운 독서를 하게 만든다.
『사랑의 은어』는 지난 몇 해간 쓰인 산문들을 엮은 서한나의 첫 단독 저서다. 대전에서 잡지 『보슈BOSHU』를 만들며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공저 『피리 부는 여자들』(BOSHU, 2020)과 『한겨레』 칼럼 ‘서울 말고’, 메일링 서비스 ‘잡문프로젝트’를 발행하는 동안 써온 글들이 그렇게 읽혔다.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고(임승유), “잠을 못 잤다”(이슬아)는 추천의 말들이 증언하듯, 독자는 어떤 열렬함 속에서 그의 글을 만나왔다.

“글을 쓰면 삶이 두 번째가 되고 그저 체험할 것이 된다.”(230)

지겨운 쪽이든 그리운 쪽이든, 익숙하게 여겨온 것들은 낯선 모습을 하고 이 책에 다시 나타난다. 그 낯섦에 따라붙는 기이함과 정다움은 늘 보아왔지만 짐짓 못 본체 지나온 것들을 작정이라도 한 듯 불러다놓고 주시함으로써 저자가 만들어낸 감각이다. 오늘의 한국이라는 비애와 부조리, 잊힐 수 없는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동요를 차곡차곡 가라앉힌 다음 그가 다른 무엇으로 길어 올린 말들은, 일단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은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번에 알아들을 경험으로 제시된다. 쓰는 사람들 입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던 은어는 더 넓은 세계에서 인식되고 회자될 때 비로소 그것이 은어였음이 자명해진다. 또 바로 그 순간부터 더는 은어가 아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 바로 그런 역설의 운명을 지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굳이…… 싶은 모든 것을 하게 하고”(231)

글이 된 삶이 재현이자 환상이라면,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글이 독자를 응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먹게 하는 일도. 『사랑의 은어』에는 많은 장소와 인물이 등장한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25) 싶은 장소들의 무서움, 추함, 광기. 이해되지 못한 채 견디어진 세계를 기어코 살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그 잡스러운 세상에서 한없이 무거운 것이 어떻게 한없이 가벼워지는지, 한없이 가벼운 것은 또 어떻게 모든 것을 짓누를 수 있는지―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지속되는지를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상함 거대함 지난함에 부딪혀 간과되고 포기되고 망각될 뻔한 사랑을 건져 올린다. 사라지려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보이지 않게 됨에 저항한다. 일순간의 위력에 제압될 뻔한 오래된 진실, 허술한 장면 아래 잠재하는 과정의 견고한 힘을 드러냄으로써. 단지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기에 이 책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닐 이유가 없고, 우리가 아닐 이유도 없다. 구체성은 은어일지언정 사랑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언어를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똥집에서 우러난 경험!”(177)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독자를 부추겼던 바로 그 방식으로 익숙한 순간들을 다시 살아내며 자기를 발견하고 사랑을 혁명으로서 경험하는 과정을 적어 내려간다. “나를 제때 변호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말없이 웃던 시간이 모여”(12) 쓰게 되었다는 글은, “신이 나면서도 당혹스러웠”(12)던 이 세계와의 불화를 돌파해나간다. 어려움과 불가능함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화해가 필요 없는 세계와 결별하고 당연한 세계를 재창조함으로써.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글은 독자의 삶에 작가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동시에 이 세계에 그의 독자를 등장시킨다. 사랑하는 두 여자는 내밀한 둘만의 세계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세계를 부수고 나온다. 혼자서 느낀 위화감의 맥을 끊고 그 안에 흐르던 것을 밖으로 넘치게 한다. 만나고 스며들며 여기 쓰인 이야기를 보라고 말하는 대신, 이것을 경유해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타나는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진실임을 굳게 믿어준다.
바로 여기서 어떤 독자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서한나가 될 것이다. 생각이 읽힌다는 감각에서 생각을 내맡긴다는 감각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가 살고 싶어할 때 우리도 살고 싶어지고, 그가 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도 사랑에 빠지며, 그가 허벅지에 번지는 황홀의 극치를 라듐이라고 말할 때 우리도 그것에 피폭된다. 작품에 독자적인 생을 부여한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조금씩 생겼다”(162)
“시간들을 뚫고”(195)

이 특별한 이중 동일시는 조건을 탁월하게 조명하면서도 조건을 초월할 때 가능해진다. 무엇이 거부되는지, 어떻게 부정되는지는 거부하고 부정해야 할 것 자체보다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세계를 더 드러낸다. 어떤 성별, 어떤 계급을 가진 이들은 의심도 불안도 없이 누려온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목적을 압도하는 선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날것의 현실을 잡아다 앉히고 말을 퍼다 부으며 저자가 발 디딘 곳은 그 같은 현실이 주어지기 전부터 존재했고 사라진 이후에도 존재할 자기 삶, 그만의 고유한 세계다.
그 세계는 동세대 감수성이나 로컬의 구수함 같은 범주에는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청년 여성의 삶과 중노년 여성의 삶, 태어나지 않은 여성과 죽은 여성의 삶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196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와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서한나를 다른 많은 작가와 구분 짓는 글의 인상은 이런 차이를 날카롭게 인식한 상태에서 공통을 꿰어 관통할 줄 알고, 그 안에서 “천당도 지옥도 다 여기에 있다고 재미있지 않냐고”(231)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읽는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언어로 그 발견을 활자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조명된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저자가 내어놓는 것은 글이 된 삶이다. 그가 놓인 삶의 조건들, 그것이 표현된 방식, 그리고 이 책이 소설 아닌 수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독자는 세상에 없는 책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비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칼로 베고 살로 안아낸 현실이 미혹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이 사랑 자체이기 때문임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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