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인가 애정인가, 엄마는 왜 이제 와 아버지를 죽인 걸까?
평범한 일상이라는 무대 위의 서늘한 가정애증극 혹은 오묘한 범죄희극
『엄마가 했어』는 총 여덟 편의 이야기로 이뤄진 연작소설이다. 동네에서 작은 선술집을 운영하는 엄마 모모코(「수치」 「자전거」), 아버지 다쿠토(「믹 재거 놀이」), 큰딸 도키코(「5, 6회」), 작은딸 아야코(「코네티컷의 분양 묘지」), 막내아들 소타(「엄마가 했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의 시점으로 각각 이야기가 전개되다 이 가족이 아닌 한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마지막 에피소드 「마음대로 보지 말 것」이 맨 처음의 「엄마가 했어」와 연결되는 구조다.
79세 노령의 엄마는 왜 이제 와 아버지를 죽인 걸까? 언젠가 벌어질 만한 일이었다는 양 충격과 경악도, 애도와 눈물도 없이 묘하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너희 점심 먹고 갈 거지?”라고 물으며 자식들의 밥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모를 현실감을 풍기기도 한다. 한편 생계를 꾸리고 자식을 챙기는 보통 엄마라는 이면에서 인간 모모코는 속내를 좀체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남편 다쿠토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나름의 교묘함으로 숨기거나 드러내며 평생 그 균형을 지켜온 모모코, 돌연 그녀를 극단으로 치닫도록 고조시킨 건 순간의 살의일까, 너무 깊었던 애정일까. 작가는 그 헤아림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다다미 여섯 장 크기의 방에 깔아둔 이불 위에 아버지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을 뻐끔 벌린 채, 5월 날씨에 맞지 않는 두꺼운 이불 밑에서 어깨와 팔을 내놓은 게 소타가 어릴 적부터 익히 알고 있는 그야말로 ‘곤드레 취해 잠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피부가 이미 차갑게 강직됐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혹시 장난치는 게 아닐까 했던 안이한 기대가 꼼짝없이 뒤엎어져 멍하니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꼭 자는 것 같지? 내가 눈을 감겨줬거든” 하고 엄마는 공치사라도 하는 투로 말했다. (10p)
아버지 다쿠토는 이렇다 할 돈벌이도 하지 않고 외도를 일삼으며 자신의 가족에게 소속감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그 한심함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가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특유의 가벼움으로 해결책을 내놓거나 이유를 알 수 없게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해서 자식들에게는 이상하게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나비처럼 팔랑팔랑 부유하며 가족에게 애증이라는 감정만 잔뜩 꽃피우게 하는 다쿠토에게도 자신만의 진실이 있다. 부인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그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을까.
겉으로 쓰이지 않은 언어로 진실을 알게 하는 이노우에 소설의 매력
작중의 현실 뒤에서 조용히 떠올라 읽는 이의 마음에 일으키는 작은 파장
소설 『종이달』의 작가 가쿠타 미쓰요는 “언어로 쓰이지 않은 것”이 이노우에 아레노 소설의 매력이라고 평했다. 작중 현실이 진행되는 와중에 그것과 별개로 다른 사실이 배후에서 떠올라 구름이 되어 양지였던 곳을 음지로 만들면서 그렇게 현실을 변화시켜버리는 게 이노우에 소설의 매력이라고.
고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탓에 집도 보다 저렴하고 좁고 불편한 곳으로 자주 옮겨야 했고, 게다가 그런 처지(라고 소타는 생각하고 있다)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끼쳐온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족만큼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그 점은 못마땅하기도 하고 기묘한 일이기도 했다. 소타에게는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모호함을 학습하며 성장해왔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24p)
엄마의 말이 안개처럼 실내에 퍼졌다. 가족에게는 익숙한 안개였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처리를 뒤로 미루면서 한편으로는 가족을 기묘하게 단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모든 게 이 안개 때문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삼십만 엔이 청구된 것도. 다섯 번인지 여섯 번인지 기억 못할 만큼 낙태를 했는데 아직껏 자신이 히라쿠의 2층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도. (48p)
그중에서도 『엄마가 했어』는 작가의 이러한 장기가 잘 발휘된 작품으로, 읽는 이의 마음에 어떤 서늘함을 남기는 색다른 가족소설이다. 79세 노령의 엄마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으로 거침없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다섯 인물의 일상에서 주요했던 순간들을 덤덤한 톤으로 현실감 있게 그려나간다. 그 묘한 차분함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 후 이들 가족이 어떻게 될지 하는 궁금증과 소탈한 일상적 유머가 한데 버무려져 흥미를 자극한다. 한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호한 안개 같은 부모와 각자의 음울함을 지닌 세 남매가 가족을 향해 품은 비틀린 감정 또한 몸집을 부풀리면서 가족이라는 관계망 아래 흐르는 치명적인 인간 감정에 대해 고찰해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