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계를 맛보는 기분
얼굴과 얼굴이 머무르는 기분”
서로를 마주할 때마다 선명해지는 생의 감각
문학동네시인선 154번째 시집으로 김향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펴낸다. 2013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후 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모아온 시편들에는 명확히 설명해내기 어려운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서로에게 가닿고자 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그러나 나를 살게 한 지표들은
실은 아름다운 느낌들이었습니다.
_‘시인의 말’에서
시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김향지가 주목한 단어는 바로 ‘느낌’이다. 1부 ‘느낌은 우주의 언어’, 2부 ‘한쪽 눈은 다른 세계를 봐요’, 3부 ‘밤을 빛내는 꿈’, 4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을 주듯’으로 이어지는 시들에서 시인이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구체적인 형태를 띤 것이 아닌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다. 김향지는 세심한 시선으로 세계의 미약한 기미들을 발견해내고, 그것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가만히 귀기울이고,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봄으로써만 감각할 수 있는 느낌들에 대해. 시인이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가만히 귀기울이면/ 들린다”(「살랑」)고 말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무언가’는 김향지의 시 안에서 때로 기분이 되고, 때로 빛이 되며, 때로는 음악이 된다.
휘청이는 기분
하나의 컵에 두 개의 빨대를 꽂고
같은 세계를 맛보는 기분
얼굴과 얼굴이 머무르는 기분
눈이 눈에서 떨어지며
다시 서로에게 속하지 못한 사이가 되면
빈 공간은 표정으로 채워진다
서투른 것들은 모두 떨어진다
누군가 내리는 소리가
온 마음을 메우고 있다
_「눈사람의 사랑」 부분
살랑을 위하여
서로에게 최대한
가볍게 실패하기 위하여
엉터리 입술로 살랑
발음하는 사이
색색의 손가락들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다
_「살랑」 부분
그런가 하면 시인은 지상과 우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감각과 이미지를 펼쳐놓기도 한다. 읽는 이의 감각을 뒤흔드는 이 구현(具現)의 향연은 언뜻 우리를 현실에서 유리시키려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눈앞에 마주한 당신에게 당도하기 위한 길고 긴 유랑의 궤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이 그녀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거리가 생기고 시간이 생겼으므로
쉬지 못한 구두처럼 나란해진 혼잣말들이
우주와 지구에서
서로를 별처럼 보는 밤
그녀가 우주를 연다
별들이 그녀를 안는다
_「우주의 사랑」 부분
초조함이 출렁이던 잔들
바다는 혼자 번식했다
본 적 없는 새로운 바다를 낳으면서
더욱더
낯선 바다가 되었다
비라는 비는 모두 우리 위에 모여 있었다
_「바다는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부분
그런데 이렇게 김향지의 시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인이 그려내는 세계가 마치 밤과 낮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인 것만 같다는 점이다. 아니, 시인에게 밤의 마음과 낮의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가 “눈을 뜨고 하는 말은 자주 틀렸다/ 눈을 감고 하는 말은 자주 잊었다”(「파라다이스」)라고 한탄하거나 “무언가를 평생 읽었어요/ 무언가를 잡고 놓쳤어요”(「무언가」)라며 회한에 잠기거나 “비장미가 부끄럽고/ 가벼움이 부끄럽고”(「살랑」)라고 자조하다가도, 이내 “떠나온 모든 저녁들은 아름다웠으니까. 오늘 저녁은 슬프지만 어쨌든”(「유니버스」)이라며 희망의 기미를 발견하고 “내가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파라다이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실은/ 아름다운 것을 늘 사랑했다는/ 기침 같은 고백일 수 있겠다”(「기침」)고 안도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다. 자조와 회한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기침처럼 튀어나오는 일말의 낙관처럼, 황량한 듯 보이는 세계에서도 타인에게서 희망의 빛을 발견해버리고야 마는.
이런 시인의 태도는 섣부른 비관도, 섣부른 낙관도 유보하는 조심스러움과는 또다른 형태의 신중함일 것이다. 어쩌면 김향지의 시가 우리의 마음을 깊이 건드리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만히 귀기울여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살랑」),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웃는 아이의 얼굴에서 신의 얼굴을 보면서도(「기침」), 여전히 “손은 안녕을 위하여/ 있다”(「안녕을 위하여 두 손」)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보고 싶은 것은 그가 오직 환한 낮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시집의 끝에 이르러 간절히 되뇌는 “적어도 너에게는 잊히지 않기를/ 지금 폭발하는 이 숲이”(「멸」)라는 말은, 세계를 돌아서 여기까지 온 유랑의 시간만큼,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단단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