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의 전쟁, 병법서, 무武를 낭자하게 논하다
중국 고대의 주색, 재물, 기氣를 에로틱하게 말하다
지식인의 문文에 대하여 독하게 비평하다
사마천과 왕궈웨이의 잊을 수 없는 삶을 기억하다
책 소개
『손자병법』 『논어』 연구의 권위자 리링의 잡문집이 출간됐다. 한국에서는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다』 이후 두 번째 잡문집이다. 중국에서 각종 도서상을 휩쓸고 정통 고전 학계의 격한 반발과 함께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집 잃은 개』의 저자인 리링은 고대 경전을 이데올로기화하는 움직임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고전 해석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을 종횡하며 고전 읽기의 깊은 맛을 선보여온 리링이 이번에는 자유로운 필치의 글로 독자들을 만난다.
동물원에 갇혀 지내던 사슴이 숲속을 그리워하는 느낌으로 써냈다는 이 글들은 그의 말대로 우리에서 나온 야생동물처럼 거침없고 경쾌하다. 그 소재 또한 전쟁, 도박, 마약, 욕, 동물, 인물 평설, 세평 등 경계가 없고, 그래서 학자가 아닌 작가 리링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난다. 서양 전쟁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리링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엿보이고,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학계와 출판계에 대한 글에서는 현실적 고민들이 드러난다. ‘도박’ ‘마약’ ‘욕’ ‘개’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릴 때는 상식과 편견을 비트는 글쓰기가 빛을 발하고, 사마천과 왕궈웨이를 사모해서 쓴 글들은 학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식견을 보여준다.
손자 전문가의 서양 병법 읽기
『손자병법』 읽기의 전문가인 리링이 이 책에서는 서양 병법을 논한다. 더 정확히는 ‘서양인들이 해석한 전쟁사’가 주제로, 동양 역사 연구자가 본 서양 역사 연구에 대한 해석인 셈이다. 그 일단을 보기 위해 선택된 자료는 『케임브리지 전쟁사』다. 그가 읽은 바에 따르면『케임브리지 전쟁사』가 본 세계 전쟁사 속에서 중국은 엑스트라고, 그가 연구하는 『손자병법』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서양이 우위를 점한 최근 500년이 2500년 전쟁사의 주축을 담당한다. 그럼 리링은 무엇을 위해 중국도 동양도 없는 전쟁사를 읽었을까. 그 500년간 우월을 점한 문화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서양은 500년 동안 나머지 역사와 세계의 나머지 절반인 동양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까.
리링의 해답은 간단하다. 능력중심주의와 ‘기술’. 이것이 중국의 병법과 제도를 앞질렀다. 그러나 기술은 돈이 있어야 하고 이 돈은 다른 나라에서 빼앗아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링은 이 ‘전쟁 기술’을 무슨 외과 수술마냥 깔끔한 것으로 여기고, ‘값싼 전쟁’을 치렀다며 자화자찬하는 서양의 해석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더구나 전쟁의 책임은 늘 강대국에 있었지 않은가. “춘추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었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전쟁은 죄악이고 서양이 자기 그림자를 지운답시고 벌여온 일들도 마찬가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병법은 ‘살인 예술’이고, 군인은 ‘살인청부업자’이며 테러리스트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병법을 연구한 리링의 눈에도 그러하다. 리링은 서양이 살인 예술로 세계 질서를 형성하고 살인청부업자는 경찰로 둔갑시키고 전쟁은 형벌인 양 굴면서 자신을 합리해왔다고 비판한다.
뒤집고 비트는 글쓰기
“잡문은 곧 잡문이며, 무엇이든 재미있으면 그걸 쓰고, 내용은 반드시 흉금을 털어놓아 솔직하고 통쾌해야 하며, 약간은 저속하고 약간은 천박하며, 오류도 튀어나오고 우스갯소리도 늘어놓는 것일 뿐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공자를 비유한 ‘집 잃은 개(喪家狗)’라는 표현을 자신의 논어 해설서에 붙임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답게, 리링은 글의 소재로 다소 의외적인 것들을 끌어온다. 도박, 마약, 동물(개), 화장실, 욕 등.
그중 하나이며 리링과 연이 깊은 ‘개’를 살펴보자. 리링은 개를 길렀던 경험을 들어 개와 인간의 차이를 살피는데, 그에 따르면 개는 사람을 적게 보아야 용맹해질 수 있으나 사람은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무서운 존재가 된다. 이른바 ‘큰 마을의 아기와 작은 마을의 개’다. 이리저리 떠돌며 빌어먹는 개는 짖는 재주를 상실하게 되지만 사람은 반대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사람을 교육할 때는 개를 기르듯 가둬 키워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렇게 하면 인간의 동물의 사나움을 갖게 되는데 이런 사나움은 결코 진정한 용맹이 아니며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을 가진 인간은 궁지에 몰린 초식동물이나 배고픈 육식동물처럼 지나치게 흉포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
리링은 여기서 개를 인간과 대조해도 보고 겹쳐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다른 소재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이거나 반대에 있는 것을 가져와 뒤집고 비틀어 보는 것이다. 도박과 마약에 대한 기호가 인류의 가장 저열한 근성이라면서 도박으로 인간 심리를 살피고, 마약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화장실의 발전을 보면서 중국의 4대 발명 중 하나인 종이를 비롯한 ‘문명’에 대해서 생각하고, 동물을 보면서는 동물 길들이기와는 다른 ‘사람 기르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장 저속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흥미를 버리지 못해 글로 쓰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가장 반대되는 것 중 홀대받는 것을 끌어와 설명한다.
역사적 글쓰기: 사마천과 왕궈웨이
리링은 사마천을 사모해 쓴 글에서 자신이 『사기』에서 영웅과 패자의 뒷면을 다루는 묘사를 특히 좋아한다고 밝힌다. 예컨대 사마천이 승자인 한고조 유방을 쓰면서는 그의 건달기도 다루고, 패자 항우에 대해 쓸 때는 영웅적 면모도 쓴 것이 좋다는 것이다. 리링이 글쓰기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사마천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빼놓지 않는다. 그런 수치와 울분이 사마천을 위대한 역사가임과 동시에 인간적 고통을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편 리링은 자신이 존경하는 왕궈웨이에 대해 쓰면서 그를 전혀 미화하지 않고 모든 면모를 다루려는 노력을 보인다. 왕궈웨이의 글에 몹시 탄복해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는 리링은 그의 죽음에 대해서 “머리부터 입수해 진흙탕 속에 처박혔을 것”이라고 묘사하더니 그가 ‘매국노’ 뤄전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그의 학문이 시대의 덕을 봤고 정치적 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등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인물에게 “그도 잘 모르는 ‘위대한 의의’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리링에게 사마천은 역사 속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리링이 왕궈웨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을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 인간을 얘기할 때는 그의 모든 면모를 다루고 영웅을 얘기할 때는 패자도 다루는 균형적 글쓰기를 말한다. 사마천과 왕궈웨이에 대한 이 글들은 결국 역사적 글쓰기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제목이 왜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인가?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홀로 마시니 서로 벗할 이 없네.
잔 들어 밝은 달 부르고, 그림자 마주하니 셋이 되었네.”
이 책의 제목은 이백의 유명한 명시 「달 아래 홀로 마시다」(한어 독음인 ‘월하독작月下獨酌’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책에 나오는 첫 글의 제목이기도 한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는 그 자체로 운치도 있고 이백의 싯구라는 면에서 그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떠오르게 하며, 그런 면에서 거침없고 솔직한 글을 지향하는 리링의 잡문과 어우러진다. 이것만으로도 이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충분한 이유가 될 법하다. 그러나 리링이 이 시를 가져다쓰는 방식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술병을 놓고 마주앉은 술꾼과 달, 그리고 (아마도 물에 비쳤을) 달그림자 이 셋은 리링에 의해 각각 ‘중국’ ‘서양의 현대화’ 그리고 ‘중국의 현대화’로 대치된다. 과거의 영광(태양)이 지고 지금 중국을 비추는 것은 ‘달’, 즉 서양에서 온 광명이다. 반면 중국의 현대화가 낳은 것은 어둠(그림자)이다. 이는 곧 리링의 현재 중국에 대한 해석이며 고전학자로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 그가 취하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듯 중국의 현재가 서양,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왔음을 아예 직설적으로 말하고 인정해버리며, 중국에 대해 아주 신랄하게 말함으로써 나르시시즘에 젖으려 하는 중국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국학은 ‘나라를 장차 망하게 하려는 학문’이다.” “중국에 천하를 위해 크게 행할 어떤 도덕이 있단 말인가?”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날이 서 있지만, 이처럼 냉철한 관점이 고전학자로서 리링을 특별하게 만들어왔다.
리링이 서양의 현대화를 ‘달’로 보았다고 해서 서양 자체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의 현대화를 ‘그림자’로 보았다고 해서 중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말한다. “달이 없으면 그림자가 어떻게 생기겠는가?” 중국에 생긴 그림자는 서양의 폭력이 중국에게 강요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과 서양에 대한 리링의 시선, 중국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고 중국 고전이 현대에도 신화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일임을 직시하면서도 서양의 우월함에 대해서도 역시 이념성을 부여하지 않는 그의 냉철한 관점을 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하나의 묘미다.